복기와 횡단, 미래를 여는 두 개의 공약 실행 열쇠

2025-04-17

12·3 이후 탄핵을 둘러싼 치열한 갈등의 시간은 막을 내렸다. 이제는 선거의 시간이다. 선거 국면이 본격화되면 곧 공약을 ‘생산’하는 시기에 돌입할 것이고, 대선이 끝나 새 정부의 가치 방향이 결정되면 ‘공약 실행’의 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과거와 달리 대선 이후 공약 실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 허니문 기간도 없어지고, 심지어 ‘승리한 후보가 다시 실패하길 바라는’ 식의 정서에서 ‘묻지마 반대’가 불거질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약 실행에 사소한 결함이 있거나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면 큰 정치적 갈등으로 번질 위험이 크다. 설익은 정책은 아예 실행해보지도 못하고 좌초할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 초기의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정책이 그 사례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생산된 공약의 ‘실행력’을 높이기 위해 두 가지를 새롭게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복기(復棋)’적 관점이다. 영화 <어바웃 타임>을 떠올려보자. 타임슬립 능력을 가진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로, 그는 첫눈에 반한 여인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 다양한 선택을 시도하며 현재를 바꾼다.

국정이나 시정, 그리고 정치·공공기관 운영 같은 공적 영역에서도 이런 ‘시간여행’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타임머신 정책학이라 해도 좋다. 바둑을 둔 뒤 한 수 한 수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듯, 과거 정책의 결정 과정을 되돌아보며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면 과연 같은 판단을 내렸을까, 아니면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을까”를 질문해보는 것이다. 특히 실패했다고 지적받은 정책일수록 ‘복기’가 필수적이다.

실패한 정책 복기, 탈진영 공약을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보수·진보라는 거대한 축을 ‘횡단’하는 접근 혹은 관점이다. 여성주의 담론 등에서 자주 언급되는 ‘transversal(횡단)’ 개념을 떠올려보자. 이는 고착된 경계나 차이를 무조건 지워버리거나 하나로 통합하기보다, 서로 교차·연대·협력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현재 우리 사회는 좌우, 보수·진보, 여야 갈등이 심화해 양극적 사고에 빠지기 쉬운 구조다. 이제는 자기 입장을 지키면서도 반대편의 합리적 정책 요소를 과감히 수용해 정책과 공약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정책적 대립은 정치적 대립과 달리 하나가 완전히 옳고 다른 하나가 완전히 틀리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내가 서울시교육감으로 10년을 보내면서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고 아쉬워한 적이 많다. 수많은 내부 검토와 전략적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 때로는 ‘장고 끝에 악수’였다는 생각이 든 적도 있다. 돌이켜보면 반대편의 합리적 주장까지 과감히 수용했다면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와 반성도 남아 있다. 나는 미래세대인 학생들이 하는 토론에서도 이런 관점이 사고력을 증진시키고 과거와 미래를 보는 인식 지평을 확장한다고 말해왔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복기적 관점과 횡단형 접근이 절실했던 대표 사례다. 2017년 ‘6·19 대책’과 ‘8·2 대책’을 시작으로 2021년까지 총 26번의 대책이 발표됐지만, 부동산 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했고 국민에게 깊은 좌절과 분노를 안겼다. 2030세대가 느낀 상실감은 이들이 보수화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정책 담당자들은 과도한 비난에 할 말이 많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시점으로 돌아간다고 가정하면, 다른 전략적 선택과 정책 조합을 고민해볼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예컨대 보수 진영은 전통적으로 시장 자율성과 공급 확대를 중시해왔고, 진보 진영은 공적 규제를 주된 수단으로 삼았다. 그러나 ‘복기’와 ‘횡단형 접근’을 통해 단순 대립을 넘어서 두 가지 정책 수단을 유연하게 조합하려 했다면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흑묘백묘’의 지혜처럼, 시장과 규제를 적절히 융합하고 변화된 현실을 반영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때도 유동성, 대출, 세금, 정책 포퓰리즘, 반대 정당의 비토 등 여러 복잡한 변수가 얽혀 있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25만원 아닌 100만원 지원도 가능

민주당이 민생 지원을 명목으로 추진한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안’과 정부의 거부권 행사도 살펴보자. 국민의힘은 이를 “나랏빚만 늘리는 포퓰리즘”이라 비판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선별해 더 두껍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한된 재원을 고려하면, 이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중상층 이상의 가구에는 25만원이 소비 진작 효과를 크게 일으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다시 ‘횡단형 접근’을 떠올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전 국민에게 100만원을 지급하되, 연말정산 시 소득 1억원 이상자는 세금으로 이를 상쇄한다”는 구상은 어떨까? 이는 진보적 정책 틀 안에 보수 진영의 합리적 비판을 반영한 ‘역-역소득세(negative-negative income tax)’ 아이디어다.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 형태로 지원금을 지급하되, 고소득층에게선 다시 회수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선별적 복지’의 합리성까지 수용하게 된다. 이 방안은 재정 부담과 형평성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함께 고려하며, 보수가 우려하는 국가 재정 안정과 저소득층에 대한 두꺼운 지원을 진보적 틀 안에 녹여낸 횡단형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탈진영 실용’이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가고, 경계를 가르는 이런 관점과 접근은 공약 개발·실행 과정뿐 아니라 인재 등용 폭을 넓히는 데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다. 적대적 진영 정치가 격화된 지금도, 반대편의 아이디어를 과감히 수용하면 같은 정당 내 반대파나 전 정부 인사들까지 포용할 수 있는 문이 열린다.

윤석열 정부는 이제 역사의 한 장으로 넘어갔다. 그 과정에서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이를 단순 승패의 관점으로만 해석하지 않길 바란다. 과거의 실패와 반대편의 실패에서 동시에 배우면서, 미래 정책 지평을 넓혀가자. 보수는 진보의 실패에서, 진보는 보수의 실패에서 배우면 된다. 최소한 자신과 노선을 함께했던 전(前) 정부의 실패라도 반추해봐야 한다. 이런 독일 속담이 있다. “강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에서 배우고, 더 강한 사람은 타인의 실수에서도 배운다.” 우리도 이 지혜를 적극 활용해 더 강하고 더 나은 길을 열어가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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