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잼버리처럼 되면 안 된다”···APEC 숨은 영웅

2025-11-02

이병희 황리단길상인연합회장 인터뷰

“바가지요금 없애자”···10~30% 할인

“APEC 계기로 세계적 도시로 발돋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폐막 전날인 지난 31일 경북 경주시 황남동 황리단길.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골목을 이병희 황리단길상인연합회장(36)이 천천히 걸었다. 그는 골목 곳곳을 둘러보며 불편을 겪는 상인은 없는지, 통제 구역에 놓인 안내 표시는 잘 유지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폈다. 올해로 연합회를 이끈 지 5년째인 그는 이번 APEC 정상회의 기간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

“APEC 기간 경주시 경제정책과·관광컨벤션과·환경정책과 등 관계 부서 공무원들과 매일같이 소통했습니다. 공무원들이 해결할 수 없는 민원을 민간 차원에서 즉시 해결하려고 노력했어요.”

APEC을 앞두고 황리단길에는 외신과 국내 기자단, 각국 수행원들이 몰렸다. 이 회장 역시 상인 대표로서 여러 일정에 협조했다고 한다.

“김혜경 여사가 황리단길을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고 관광 설명을 준비했습니다. 하지만 막판에 일정이 취소됐다는 소식을 들었죠. 그래도 혹시 몰라 끝까지 현장을 정비했습니다. APEC이 단순한 국제회의가 아닌, 경주의 브랜드를 다시 세계에 각인시킬 기회로 삼으려고 했어요.”

행사 준비가 마냥 순탄했던 건 아니다. 경비 강화로 인한 통제 구간이 늘면서 상인들의 불만도 터져 나왔다.

“행사의 성공도 중요했지만, 상인들의 일상과 지역경제 활성화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도로 통제로 내국인 관광객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진작부터 있었고, 일부 점포는 실제 재료 수급에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상인들로부터 수십건의 민원 문자를 받았어요.”

이 회장은 “중재자 역할이 가장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공무원과 상인, 관광객 사이에서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상인들과 함께 바가지요금 근절은 물론, 가격 인하 운동에도 나섰다.

“가격정찰제는 물론, 관광객 부담을 덜기 위해 평소보다 10~30% 가격을 인하한 가게도 많았습니다. 음식점과 소품점, 숙박업소 등 생각보다 많은 점포가 자발적으로 동참했어요. 관광객 입장에서는 가격 투명성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이번 행사 기간 ‘황리단길은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조금이라도 생겼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준비 기간의 한계에 대한 아쉬움도 내비쳤다.

“인천 등과의 경쟁 속에 개최지가 생각보다 늦게 확정되다 보니 준비 시간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에요. 그래도 모두가 ‘잼버리처럼은 안 돼야 한다’는 마음으로 움직였습니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경주시와 상인들은 협업 체계를 구축했다. 황리단길 일부 상인들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경찰들을 자발적으로 격려하기도 했다.

“어느 가게에서는 ‘고생 많으신 경찰분들, 편하게 가져가세요’라며 과자와 음료를 내놓더군요. 그 모습을 보며 ‘이게 바로 경주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이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APEC이 끝난 뒤의 경주를 더 길게 바라봤다.

“베트남 다낭이 APEC을 계기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듯이 경주도 1000년 고도의 이미지를 넘어 세계적인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구 25만명 남짓한 소도시지만 잠재력은 충분합니다. 이번 APEC이 그 첫걸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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