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법 개정, 경제와 노동의 상생발전 기회로

2025-09-02

지난 8월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조법 2·3조 개정안”은 노동과 경제, 그리고 우리 사회 전체의 질적 변화를 예고하는 사건이다. 법률은 시대적 변화를 담아내야 한다. 이번 노조법 개정은 단순한 조문 수정이 아니라 산업구조 변화와 노동시장의 격차 문제에 대응하는 큰 제도적 발걸음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개정법은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를 바로잡는 데 초점을 두었다. 원청이 근로조건을 사실상 결정하면서도 법적 책임을 회피하던 구조와 노동조합이 일부 비근로자 참여를 이유로 지위를 부정당하던 현실, 경영상 결정을 이유로 단체교섭이 차단되던 관행이 이제 변화의 길목에 섰다. 더불어 노동쟁의의 범위도 정리해고나 안전보건 문제까지 확장된다.

특히 손해배상 청구 제한이 주목된다. 과도한 손배소로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고 조합원 개인이 생계 위협을 받던 문제가 반복되었다. 개정법은 불법행위를 무조건 면책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정당한 활동과 과도한 제재 사이의 균형을 맞추려 한다. 이는 노사 모두에게 안정된 협상 환경을 제공하고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길이다.

이번 변화는 국제적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실질적 사용자에게 교섭 책임을 부과할 것을 권고해 왔고, 글로벌 기업들 또한 공급망 전반의 노동권 보장을 ESG 경영의 핵심 지표로 삼는다. 우리나라가 이번 노조법 개정을 통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제도를 마련한 것은 노동권 보호를 넘어 국가 경쟁력을 지키는 일이다.

지역 차원에서도 의미가 크다. 전북을 비롯한 지방 산업 현장은 원·하청 구조가 깊다. 특히 제조업·건설업·서비스업에서 원청이 근로조건에 실질적 영향을 주면서도 교섭 책임을 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법이 정착된다면 지역 중소기업과 하청 노동자들도 더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고, 기업은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경영을 이어갈 수 있다. 노동과 경영의 신뢰가 확보될 때 지역경제는 건강하게 성장한다.

새로운 제도가 뿌리내리려면 후속 조치가 중요하다. 정부는 시행 준비 기간 동안 노사와 함께하는 TF를 운영하며, 판례와 현장 의견을 토대로 세부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원청의 사용자성 판단 기준, 교섭 절차, 쟁의의 범위 등은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혼란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현장 중심의 매뉴얼 마련과 노·사·정 상설 소통창구 운영이 필수적이다.

전북지방 고용노동청과 노동위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 주요 기업의 사례를 점검하고 필요시 교섭 컨설팅을 제공해야 한다. 원·하청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모범사례를 만들어낸다면, 이는 전국으로 확산될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단순히 법의 조문이 아니라, 실제 산업현장에서 새로운 관계 문화를 만드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교섭이나 무제한 파업을 걱정한다. 그러나 정부가 밝힌 대로 불법행위에 대한 면책은 아니다. 책임 있는 대화와 타협이 우선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노사 양측의 태도다. 경영계는 자율과 책임을 바탕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노동계 역시 권리를 지키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노사관계는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와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번 개정은 ‘투쟁의 법’이 아니라 ‘대화의 법’, ‘상생의 법’으로 기능할 가능성을 열었다. 정부와 노사가 이 기회를 살린다면 노동시장의 격차를 줄이고 우리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는 토대가 될 것이다.

이제 공은 노동·경제 현장으로 넘어왔다. 제도가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신뢰이다. 정부의 세심한 지원, 노사의 책임 있는 자세, 그리고 사회 전체의 성숙한 시민의식이 함께할 때, 이번 개정은 진정한 성장의 법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전북을 비롯한 지역 산업 현장에서도 이 변화를 발판 삼아 노동과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길을 열어가야 한다.

김병기 전주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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