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란 잎으로 거리를 아름답게 단장하기 전, 은행나무는 불청객인 열매를 길에 떨군다. 버즘나무(플라타너스)는 큼지막한 잎으로 그늘을 넓게 드리우지만, 낙엽일 때에는 그런 미덕이 번거로움을 준다. 버즘나무는 또 수피가 덜 깔끔하다. 장점만 지닌 가로수는 없는 듯하다.
서울 거리에서는 이팝나무, 느티나무, 회화나무, 백합나무(튤립나무)도 자란다. 가로수로 선택받지 못했던 수종이 소나무다. 가로수의 요건이 더울 때 그늘을 제공하고 추울 땐 햇살이 길에 비치도록 하는 낙엽수라는 것인데, 소나무는 여름 그늘이 덜 짙고, 겨울에는 햇살을 차단하는 침엽 상록수여서다.

다른 나무보다 비싼 데다 가로수로 가성비도 낮은 소나무를 택한 이는 정동일 전 서울 중구청장이었다. 2006년 7월 취임한 그는 바로 다음 달 은행나무와 버즘나무 등 기존 가로수를 점차 소나무로 교체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중구는 2007년 봄부터 소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반대에 부딪혔다. 구의회는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소나무는 도심에서 자랄 수 없기 때문에 나무 학대라는 비판 기사가 나왔다.
중구는 관내 입주 기업과 기관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서울시가 기증한 소나무도 받았다. 자매도시 속초에서 무상으로 소나무를 기증받았다. 2007년 여름에 약 300그루로 시작된 소나무 가로수는 이제 약 2200그루로 늘었다. 소나무는 중구 가로수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하며, 중구의 상징이자 명물로 자리 잡았다.
마포구도 소나무 가로수를 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름드리 버즘나무를 모두 베어내는 등 막무가내 실행 방식으로 질타를 받았다. 중구의 사례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소나무의 진가는 겨울에 드러난다. 눈이 내려앉은 소나무는 서울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 작곡가 레스피기가 칭송한 ‘로마의 소나무’처럼.
백우진 경제칼럼니스트·글쟁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