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간에 깨서 왔다 갔다 할 필요 없이 지금 (지하) 주차장에 가요. 푹 잘 수 있게."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한 18층 아파트에 사는 4살 어린이 올렉산데르 레셰트닉이 최근 어느 날 저녁 부모들에게 했다는 이야기다.
휴전 협상이 공전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 주요 도시를 겨냥한 러시아군의 대규모 야간 공습이 수위를 더해가면서 일반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져 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CNN 방송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최근 몇 주간 매일 같이 자폭 드론(무인기)과 미사일을 활용한 공습을 진행 중이다.
하루 최다 479기의 드론과 미사일을 날리는 등 규모도 이례적으로 큰 편이다. CNN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대대적이었던 공습 중 7건이 최근 4주 사이에 몰려 있다고 짚었다.
전시경제로 전환한 러시아는 이란에서 도입한 샤헤드 자폭 드론의 대량생산 체계를 완비한 상황이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 소속 러시아 전문가 크리스티나 하워드는 러시아가 매달 2천700기의 샤헤드 드론과 방공망 교란용 디코이(기만체) 드론 2천500기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숫자는 러시아가 하룻밤에 300기 이상의 드론을 날리는 행위를 더 자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전역을 한 번에 때리는 대신 하루는 키이우와 오데사를 노리고, 이튿날은 제2 도시 하르키우를 겨냥하는 등 방식으로 공격을 진행 중이다.
키이우 소재 싱크탱크 라줌코우 센터 소속 전문가 올렉시 멜니크는 "이곳저곳을 조금씩 겨냥하는 대신 공습을 집중시킴으로써 충격량과 심리적 측면에서 최대 효과를 거두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민간인을 겨냥해 공습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측은 최근 4주 동안 이러한 공격으로 어린이를 포함, 최소 154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밝혔다. 민간인 부상자도 900명이 넘는다.
서방 전문가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의 저항 의지를 약화하고 휴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해 공습을 강화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최대 무기 공여국이었던 미국의 입장이 모호해지면서 가뜩이나 난감한 처지가 된 우크라이나는 방공망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낮에는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사로 일하고 밤에는 고층 건물 꼭대기에서 대공용 기관총을 잡는다는 유리 추마크 판사는 "드론이 훨씬 많아졌다"면서 "물론 많으면 많을수록 대응하기는 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러시아가 날리는 자폭 드론들은 레이더를 피해 저공 비행하던 과거와 달리 상공 2∼5㎞로 날아오기에 기관총으로 쏘아 맞히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가 가진 대공 미사일 숫자가 많지 않다는 점을 알고 일부러 레이더에 걸리는 고도로 드론을 날려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14일 언론 브리핑에서 "이란 샤헤드 드론 격추를 위해 미국이 제공하기로 했던 방공 미사일 2만기가 이스라엘을 위해 재배치됐다"며 "이는 엄청난 타격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올렉산데르의 어머니 크리스티나 레셰트닉은 공습이 거세지면서 4살과 8살, 11살인 세 아들이 매일 밤 자동차 트렁크에서 잠을 청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이런 일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일상이 되었다는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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