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묘약’은 존재할까? 현재는 ‘없다’. 누군가 그걸 만들어낸다면 아마도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자가 되지 않을까. 그럼에도 사랑의 묘약은 ‘있다’. 오랫동안 사랑의 묘약으로 여겨져 왔던 것. 애정과 낭만이 듬뿍 담긴 사랑의 상징. 달콤함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매혹적인 물성.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초콜릿이다. 밸런타인데이나 크리스마스처럼 괜히 마음 들뜨게 하는 날들에 초콜릿은 언제나 연인들과 함께했다. 초콜릿 회사들의 마케팅 전략 혹은 상술이라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그 달콤한 낭만에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다. 초콜릿 브랜드 허쉬의 대표적인 상품 ‘키세스’(kisses) 이름이 키스하는 소리에서 따왔다는 이야기는 얼마나 솔깃하고 흥미로운가(허쉬에서는 키세스 작명과 관련해 여러 설이 있는데 이 이야기는 그중 하나라고 소개하고 있다).

초콜릿은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호불호 없이 주고받으며 즐길 수 있는 기호품이자 소박한 쾌락이기도 하다. 하지만 굳이 ‘사랑의 묘약’ 운운하며 에로틱한 의미와 연관 짓는 것에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연구자는 초콜릿의 주원료인 카카오에 포함된 성분 페닐에틸아민을 그 근거로 꼽는다. 이 성분은 도파민, 옥시토신과 함께 사랑을 느낄 때 분비되는데, 일명 ‘콩깍지’가 씌어 서로를 향한 열정이 분출되도록 만드는 작용을 한다. 혹자는 이 성분을 성욕과 관련된 물질이라고도 부른다. 이 때문인지 소위 ‘썸타는’ 사이에서 오가는 초콜릿엔 복잡미묘한 의미와 심도 깊은 해석이 얽히기 마련이다.
16세기 유럽에 상륙…‘원기의 원천’ 여겨
성욕·강정제 등 연계돼 상류층서 유행
초콜릿 산업이 발달한 20세기 들어 초콜릿은 사랑의 전령으로 전방위로 활약 중이지만, 사실 그 역할을 해온 것은 꽤 오래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들은 아즈텍 제국에서 황제와 귀족들이 마시던 카카오 음료, 즉 초콜릿을 스페인으로 가져갔다. 미지의 제국 아즈텍의 부유하고 강력한 왕이던 몬테수마는 정복자들을 위해 베푼 연회에서 카카오 음료를 엄청나게 마셨다. 용맹한 아즈텍 전사들 역시 카카오 음료를 마셨는데 이들에게 카카오 음료는 수천년간 전해져 온 원기의 원천이자 신비로운 약, 신들과 연결되는 신성한 음료였다.
스페인으로 건너온 초콜릿은 뛰어난 효능에 이국적인 맛, 여기에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미약(媚藥)으로 기능한다는 믿음까지 더해지면서 유럽 상류층으로 퍼졌다. 이탈리아 메디치가의 코시모는 초콜릿에 용연향, 바닐라, 재스민, 레몬 껍질 등 각종 재료를 혼합해 초콜릿이 주는 관능적 경험을 높이는 시도로 호응을 얻었다.
카카오, ‘콩깍지’ 유발하는 호르몬 함유
현대에는 가장 대중적인 연인 간 선물로

당시 유럽에서 초콜릿에는 성애와 연결된 의미가 부여돼 있었다. 특히 아침 식사로 침대에서 많이 마셨기 때문에 성적인 난잡함도 연상시켰다. 늦은 나이에 자손을 보고 싶은 이들에게 초콜릿이 강정제의 역할을 한다거나 초콜릿의 진한 액체가 정낭의 정자를 풍부하게 채워준다거나 의사가 발기 불능 환자에게 초콜릿을 자주 마시라고 처방하는 등 초콜릿의 성적 기능을 서술한 17~18세기 문헌도 여럿 있다(<신들의 양식, 인간의 욕망 카카오>에서).
미국의 부부 인류학자 소피&마이클 도브잔스키 코는 <신들의 열매, 초콜릿>에서 “스페인인들은 이 음료가 중앙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주는 신성한 의미를 박탈했으며 아즈텍과 마야에는 존재하지 않는 여러 가지 사악한 것들로 이 음료를 물들였다”고 썼다.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퐁파두르 부인은 소문난 초콜릿 중독자였는데 자신의 성 기능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초콜릿을 애용했으며, 카사노바도 여성들에게 초콜릿 선물하기를 즐겼다. 캐나다 언론인 캐럴 오프가 쓴 <나쁜 초콜릿>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나온다. “사드는 감옥 안에서 포르노그래피와 음란물을 저술하기 위해 힘쓰면서 ‘가루로 된 초콜릿과 모카커피 상자들, 카카오 버터 좌약, 크레모 쇼콜라, 초콜릿 정제, 큰 초콜릿 비스킷, 판형 초콜릿’ 등 다량의 초콜릿을 주문했다.”

유럽 사회에서 초콜릿의 중요한 상징성은 또 있었다. 바로 신분을 규정하는 수단이었다. 초콜릿을 마신다는 것은 특정한 계층에 한정된 문화였다. 커피나 홍차가 일반 대중에게 퍼져간 것과 달리 초콜릿은 19세기 후반까지 배타적 지위를 유지했다. 원료인 카카오뿐 아니라 설탕이며 계피, 바닐라 등 곁들이는 향신료는 비싸고 귀한 재료였고, 만드는 과정 역시 번거롭고 고됐기 때문이다.
독일의 문화사학자 볼프강 쉬벨부쉬는 저서 <낙원의 맛>에서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계몽주의가 번성하고 군주제와 교회의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관련 논쟁은 경제나 사회뿐 아니라 음식문화에서도 나타났는데, 그에 따르면 초콜릿은 남부 가톨릭 귀족층의 음식, 커피는 북부 프로테스탄트 중산층의 음식이었다. 즉 초콜릿은 앙시엥 레짐의 상징이었던 셈이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 <두 도시 이야기>에는 악인 에브레몽드 후작을 묘사하는 부분에서 초콜릿 한 모금 마시는데도 건장한 4명의 시중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설명이 나온다. 한 명이 초콜릿 주전자를 들고 오면 다음 사람은 초콜릿을 저어 거품을 내고, 세 번째 시종은 냅킨을 들고, 마지막 시종이 초콜릿을 따르는 거창한 과정이 필요하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코지 판 투테>에서도 귀족 자매의 하녀인 데스피나가 초콜릿 주전자를 들고 나타나 자신은 힘들게 초콜릿 거품을 내고 고작 냄새나 맡아야 하느냐며 신세 한탄을 한다. 당시 초콜릿을 마시는 계층을 바라보던 대중의 시선을 엿볼 수 있다.
20세기 들어 초콜릿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대중적 소비재로 자리 잡았다. 또 육체적·계급적 욕망을 넘어서는 다양한 의미와 상징도 부여받았다. 사랑과 감사의 정표이기도 하고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초콜릿 박스처럼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처럼 상상력 넘치는 개구쟁이 꼬마들의 기쁨이자 친구 역할도 기꺼이 떠맡는다. 자유와 풍요를 나타내기도 한다. 조지 오웰의 디스토피아 소설 <1984>에서 윈스턴과 줄리아가 섹스하기 전 나눠 먹던, 그 긴박한 상황 속에서 검게 빛나던 초콜릿처럼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도 떠오른다. 상대의 몸에 초콜릿을 발라 핥아먹는 파격적인 장면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