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사연 ‘의료개혁 방안’ 보고서
소청과 등 레지던트 충원율 저조
피부·안과… 인기 과목에만 몰려
비수도권 필수의료 전문의 부족
“행위별 수가제 보상체계 근본 원인
국민 중심 두고 패러다임 전환해야”
전공의, 국가상대 손배소 첫 변론
“사직서 수리 금지 직업 자유 침해”
한국의 보건의료체계가 ‘의사 인력의 불균형’, ‘왜곡된 의료 전달체계’, ‘불공정한 보상 구조’라는 삼중고에 빠져 복합 위기를 맞이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의·정 갈등 이후 두드러진 지역·필수 의료 공백이 더 심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구조적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6일 보건복지부 의뢰로 국책연구기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공개한 ‘국민중심 의료개혁 추진방안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연구진은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여러 위기가 중첩된 복합 위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구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와 의·정 갈등 위기를 겪으며 다양한 측면에서 연속적으로 위기가 중첩된 상황으로, 다차원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연구진은 가장 심각한 위기로 필수의료 인력의 절대적 부족을 꼽았다. 의사들이 인기 과목에 쏠리면서 필수의료 공백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공의 레지던트 1년차 충원율은 영상의학과,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등 ‘인기과’가 100%를 기록했다. 반면 소아청소년과 26.2%, 심장혈관흉부외과 38.1%, 방사선종양학과 38.1% 등은 충원율이 저조했다.
지역 간 의료 불균형도 문제다.
수도권의 필수의료 전문의 수는 인구 1000명당 1.86명이지만, 비수도권은 0.46명에 불과해 4배가 넘는 격차를 보였다. 지방의 환자들이 수도권의 대형병원으로 모이는 ‘원정 진료’도 흔하다. 최근 복귀 방침에 따라 속속 수련병원에 지원 중인 사직 전공의들도 수도권 대형병원과 인기과에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곡된 의료 전달체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중증·희귀질환 진료에 집중해야 할 상급종합병원들에 환자들이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경증 외래환자의 비중이 지속해서 늘었다. 상급종합병원의 외래 급여비 점유율은 2019년 9.8%에서 2023년 14.6%로 증가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행위별 수가제 기반 보상체계를 지목했다.
국내 수가제도는 진찰료, 입원료 등 모든 개별 의료 행위마다 단가를 정해 지불하는 행위별 수가제를 근간으로 한다. 행위별 수가제는 의료 행위가 많을수록 수익이 증가하는 구조로, 과잉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연구진은 해결책으로 ‘국민중심 의료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환자에게 적절한 병원으로 안내하는 ‘의료 길잡이(내비게이터)’, 환자 부담을 덜어주는 ‘간병 국가 책임제’, 퇴원 후 회복과 재활을 돕는 ‘급성기 이후(아급성기) 의료’ 등을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국민의 건강과 의료 이용 경험을 중심에 두고, 제도와 자원의 구조를 재설계하는 국민 중심 의료개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지난해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전공의들이 정부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이 위법하다며 제기한 퇴직금·위자료 청구 사건의 첫 변론기일이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사직 전공의 측은 정부가 각 수련병원에 전공의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린 것은 헌법상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해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또 전공의 측은 ‘집단 사직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 “전공의들의 사직으로 회피 가능 사망률이나 일반 사망률이 높아지지 않았다.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정부 측은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은 의료법상 요건을 갖춰 적법하고, 강제근로 금지 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맞섰다.
장한서 기자 jh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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