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숙의 시가 있는 예술 기행] 고갱의 영혼, 타히티를 가다’ ②

2024-10-19

2. 보라보라섬으로  

 4월 27일 오전 9시, 나는 보라보라섬으로 가기 위해 작은 무레아 공항에 도착하니 내가 제일 먼저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발아래로 보라보라섬이 내려다보였다.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고운 물빛이다. 물빛이 5색, 혹은 7색이다. 신묘한 색조의 바다가 내려다보이자, 비행기 안은 온통 탄성을 지르며 너나없이 셔터를 누르느라 소란스러웠다. 

 나는 비행기에서 곧장 내리지 않고 승무원에게 비행기 조종사실에서 조종사와 함께 보라보라 섬에 온 기념으로 사진촬영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승무원이 안된다고 거절 하더니 다시 부탁을 하자 조종실로 전화를 해 캡틴과 통화를 하더니 조종실의 문이 열렸다.

나는 순간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한국에서 온 여행객이라고 소개하면서 캡틴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명함에는 간단하게 영문으로 내 소개가 되어 있어 그가 잔잔한 미소로 읽더니 일어서서 정식으로 인사를 하면서 자신을 이름 말한다. 우린 금새 활짝 웃으며 다정하게 기념촬영을 했고 그는 나를 포옹하면서 즐거운 여행이 되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이곳 타히티에 오기 전부터 관광 사진으로만 보았던 수상 방갈로 호텔 예약을 신청했지만 만실이어서 정원이 딸린 타히티 전통의 방갈로를 잡았다. 레몬상어와 만타가오리을 보기 위해 내일로 예약하고 해변을 산책했다. 

 다음 날 아침 2m 되는 레몬상어와 길이가 5미터 되는 만타 가오리를 만나기 위해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배로 갈아탔다. 보라보라섬의 물속은 황홀경을 펼쳐 놓아 말 그대로 바닷 속 에덴동산이었다.

나는 전문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상어와 가오리뿐만 아니라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을 보면서 스노클링을 했다. 온갖 물고기들과 놀다보니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어느 새 사라지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조용한 물속 세상에 빠져 들었다. 가이드가 내 이름대신 나를 ‘코리안 레몬 상어’라고 부르면서 “냠냠쩝쩝”하자고 손을 입에 대고 먹는 시늉을 해서야 주위를 살펴보니 우리 일행은 물속에서 모두 나와 배 위에 앉아 있었다. 점심으로는 타히티의 전통음식을 싸온 도시락을 먹고 전통춤을 배워 즉석에서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과 춤 경연을 벌였다. 가이드와 악단은 모두 프로였고, 만능 엔터테인먼트였다. 

 보라보라 섬의 첫날 밤, 호텔 정원은 커다란 자스민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나는 그 꽃가지를 꺾어 침대와 주방 곳곳에 장식하여 방안을 자스민 향기로 채웠다. 정원의 작은 연못에 수련화 세송이가 밤이 되자 활짝 피어 꿈결 같은 밤을 이루고 있어 수련을 보다가 두 손 모은 채로 눈을 감았다.

내가 한참동안 눈을 감았다 뜨니 옆방 여행객 영국인 남자가 미소 지으며 자스민 꽃을 들고 서있다가 나에게 준다. 나는 그 꽃을 다 받기가 왠지 쑥스러워 반을 덜어 그 영국인에게 다시 주니까 그 꽃을 받아 작은 가지를 하나 짧게 꺾더니 자신의 귀걸이를 빼고 그 꽃을 귀걸이처럼 구멍에 찔러 넣어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까르르 웃자 웃는 모습이 예쁘다며 칭찬을 해준다.

칭찬 한마디에 기분이 좋아져 내 짧은 회화 솜씨와 바디랭귀지를 동원하여 말을 하니 그가 본격적으로 자스민차를 만들어 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더 하자고 한다. 그래서 나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다가 영국의 다이애나를 좋아했는데 그가 몹시 보고 싶다고 말하자 많은 영국인들도 그녀를 못 잊어 한다고 한다. 내가 평소 즐겨듣던 그리그 페르권트와 바흐에 음악을 들으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 굿나잇이란 짧은 인사로 각 방으로 들어갔다.

밤에 핀 수련이 처음 본 여행객과 대화의 장을 펼쳐주더니 아침이 되니까 꽃잎을 닫고 묵언 수행중이다. 붓다가 남태평양 여기까지 어떻게 밀려왔을까 곰곰이 생각하면서 하루의 아침을 열었다.  

 4월 29일(월), 오후 1시쯤 보라보라 산악 사파리 투어에 나섰다. 먼저 727m 오테마누산 첫 봉우리에 올라 햇살에 반짝이는 앞바다가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높은 산봉우리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멋진 풍광에 취해 있는 나를 위해 가이드가 전통악기 우크렐레라로 연주를 해줬다. 내 몸은 음악에 맞춰 어제 배운 타히티 전통춤이 저절로 튕겨 나왔다. 내가 웃으면서 어설픈 춤을 추자 티 없이 맑고 고운 타히티의 처녀가 동영상을 찍어주어서 평생 추억으로 남을 춤을 간직 할 수 있었다.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해변을 돌고, 곡예처럼 운전하는 4륜 차를 타고 산 중턱에 당도하자, 1942년에 미군이 설치했다는 거대한 해안포와 무기고가 있었다. 1941년 12월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전쟁의 한 페이지를 본 셈이다. 일본군이 이곳 에덴동산까지는 진출하지 못했단다. 

 간단한 손 공예로 된 기념품을 몇 개 사고, 사파리 투어를 마치고 바닷가 숙소로 돌아왔다. 석양에 해상 제트스키를 즐기고 싶어 해안가를 기웃거렸으나 오늘은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하여 실망하고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4월 30일(화) 아침에 보라보라 공항으로 가는 선착장으로 갔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다시 바다의 에덴동산 풍경이 펼쳐졌다. 초록의 진주를 품은 보라보라섬과 신비한 바다색에 취해 정신이 몽롱했다. 상공에서 보라보라섬과 타히티 본섬 사이에 몇 개의 섬들도 산호초에 둘러싸여, 보라보라섬에 견줄 만큼 아름다웠다. 그 섬에는 아직 수상 방갈로나 리조트가 건설되지 않아서 관광객이 없단다. 

 12시 30분, 이륙한 지 한 시간이 지나 타히티 본섬 파페에타 공항에 도착하니 민박집 주인이 나를 데리러 왔다. 민박집은 원룸 아파트로, 방과 거실과 주방이 넓었다. 민박집 주인 메라니는 전직 방송국 앵커였는데, 나의 내일(5월1일) 투어를 알선하기 위해 사방에 전화했으나 노동절이라 관광회사는 물론 공용버스도 운행이 안 된다고 했다. 

 아뿔싸! 마지막으로 기대했던 고갱 박물관마저도 확장 공사 중이라 2025년 8월에나 재개방된다고 한다. 실망감이 너무 커 전날 메모한 시를 다듬었다.  

 “(…)이건 아니다/ 꿰어놓은 문명의 누더기 위에 / 미소를 그리는 일은 / 가식이고 거짓이다 / (…) 남태평양 섬나라 타히티에 가 / 강렬한 태양 아래, / 다 벗어 던지고 사는 저 순수 / 영혼의 밑바닥을 그리자 (…) 빨강, 노랑, 녹색의 원색을 보라 / 눈 감으면 환하게 피어오르는 영감을 / 이대로 놓칠 수 없다. / 원주민과 어울려 뒹구는 나날들 / 타히티 하늘 아래 고갱의 태양은 / 오늘도 저물 줄을 모른다.” 「폴로네시아에는 고갱이 산다 ?고갱에게 타히티에서 5」 (부분) 

 오후 3시,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타히티 관광청을 찾아갔다. 나의 절박한 사정을 들은 관광청 직원이 여기저기 전화하더니, 어느 관광회사가 내일 관광객 4명이 모집되는 조건으로 산악 투어를 하겠다고 한다. 

 저녁 6시 반쯤, 부둣가 고급 식당에서 모처럼 비프스테이크를 즐기는 데, 이 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늘씬한 아가씨가 서빙해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목소리가 남자였다. 이 섬에는 여장한 남자가 많단다. 

 다음 날 아침 9시, 타히티 산악 사파리 투어를 나 말고 한명만 모집되어 나는 두 사람의 비용을 더 내고 투어에 나섰다. 작은 섬이지만 2,241m의 오로헤나산은 높기가 하늘 같았다. 산 사이에 3~4개의 흰 물줄기를 쏟아내는 폭포를 보며, 나는 보라보라섬에서 가이드에게 배운 우크렐레라의 리듬에 맞춰 타히티 민속춤을 한판 흔들어 댔다. 

 나는 오후 3시쯤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선착장으로 나갔다. 나는 배 타기를 좋아하는 데다, 무레아섬의 월광의 밤을 잊지 못해 다시 한 번 완행 페리를 타고 무레아섬을 돌고 타히티 본섬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배 갑판은 축제장처럼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왁자지껄했다. 저녁에는 해안가 식당에서 독일인 크루즈 항해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타히티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즐겼다. 

 5월2일 아침 8시, 호텔에서 예약한 택시를 타고 공항에 도착했다. 

 9시 30분, 비행기가 파페에타 공항을 이륙하자, 물동이 모양의 타히티가 내려다보였다. 이브가 에덴동산을 떠날 때 이런 심정이었을까. 기내에서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쉬움을 고갱과 천경자 화백의 그림으로 달래며 다시 ‘티아레’ 하얀 꽃을 귀에 꽂아 본다. 

 강민숙 <시인,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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