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전기 수요와 공급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력 소비가 많은, 즉 수요가 높은 지역에는 전기요금을 더 비싸게 받고, 발전소가 있는 지역에는 전기요금을 낮춰주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는 것이 제도의 취지이죠. 그런데 최근 영국이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도입하려다 이를 중단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영국의 사례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시장 효율화·균형 발전 효과에도 ‘로또 전기료’ 비판 극복 못해
가디언, 파이낸셜타임스(FT)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이달 10일(현지 시간) 지역별 도매 전기요금제(Zonal Pricing) 도입을 중단한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이 제도는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의 각 지역별 공급과 수요에 따라 발전 사업자로부터 사들이는 전력 구매 가격을 차등화 한다는 것인데요. 전국에 동일한 요금을 적용하고 있는 현행 제도와는 차이가 큽니다.
지역별 요금제는 송∙배전 비용을 가격에 반영해 전력 시장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역 균형 발전에도 이점이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힙니다. 상대적으로 발전소가 많은 지역의 전기요금을 낮춰 공장의 지역 이전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죠. 영국에서도 이와 같은 이유로 지역별 요금제 도입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영국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습니다. 먼저 ‘어디는 싸고, 어디는 비싼 전기요금은 불공정하다’는 저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큽니다. 이와 관련해 영국 내에서는 ‘에너지 요금도 우편번호 로또(post-code lottery)가 될 수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고 하는데요. 우편번호 로또는 사는 지역에 따라 의료 등 복지 혜택이 다른, 일종의 ‘복불복’ 상황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네요. FT에 따르면 일부 가구의 경우 전기요금을 최대 300파운드(약 55만 8500 원) 더 많이 내야 할 수도 있다고 전문가들이 지적했습니다. 산업계에서는 단순히 전기요금이 싸다는 이유로 기업이 공장 이전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국 정부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국 정부 “지역별 요금, 재생에너지 확대에도 불리”
주목할만한 점은 영국 정부가 지역별 요금제가 재생에너지 확충에도 불리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입니다. 지역별 요금제 도입 근거 가운데 하나가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분산에너지 확충인데,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겁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사가 사업을 하려면 가격이 일정해야 하는데, 가격을 차등화 한 지역별 요금제는 발전사업자로서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미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가 몰려 있는 곳의 전기요금을 인하하면 발전사의 수익이 감소할 것이라는 추산도 포함됐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만큼 재생에너지 투자가 위축되게 되고, 영국의 재생에너지 확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죠. FT는 “(지역별 요금제가) 신규 풍력 발전소의 투자 유인을 저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짚었습니다.

도입 초기 단계, 적합한 ‘기준' 마련부터
영국뿐 아니라 영국의 최대 재생에너지협회 리뉴어블UK에 따르면 실제로 전기요금 차등화 제도를 도입한 유럽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도 정책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하네요. 이에 따라 노르웨이 정부는 전기요금이 높은 지역에 대해 일부 고정 요금 계약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또 지역 균형 발전 효과, 즉 낮은 전기요금을 활용하기 위해 공장이나 데이터 센터가 이전하는 사례도 아직까지는 미미한 상황이라는 지적 역시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전기요금 지역별 차등요금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습니다. 지난해 6월부터 시행된 분산에너지법은 지역별 차등요금제 시행 근거를 담고 있죠. 이런 측면에서 해외 사례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전기요금이 높아지는 수도권의 경우 역차별 논란이 일었고, 수도권에 있는 중소기업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습니다. 지역들도 차등요금제 도입에 따른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