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자동차 강점 집중…한국판 '문샷 프로젝트' 추진해야"[서울포럼 2025]

2025-04-29

“반도체, 5·6세대 이동통신(5·6G), 로봇, 자동차,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포함한 소비자 가전, 조선업 등 한국이 가진 강점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분야들을 바탕으로 ‘문샷 프로젝트(달에 로켓을 발사하듯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에 도전하는 혁신적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합니다.”

서배스천 스런 스탠퍼드대 교수는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경쟁 시대에 직면한 한국에 기존의 강점을 바탕으로 AI를 접목해야 한다며 이같이 조언했다. 그러면서 “차세대 산업·가정용 로봇 개발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위계 극복해 해외 두뇌 유치해야”=혁신의 방향을 제시한 스런 교수는 이를 풀기 위한 핵심 키워드로 ‘인재’를 꼽았다. 스런 교수는 “AI의 성공 3요소는 사람, 컴퓨터 자원, 데이터”라며 “한국은 가장 먼저 해외 인재 확보를 위한 문을 넓히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뇌급 인재 확보야말로 전장에 오르기 위한 최소 조건이라는 것이다.

스런 교수는 한국이 AI 시대의 승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냉철한 지적과 함께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이 외국인 전문 인력을 유치하기 위해 2023년 첨단전문인력비자(E-7-S)를 도입했지만 이를 통해 입국한 해외 인재는 수십 명에 불과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외국 고등교육 인재 유입 비율이 가장 낮은 편”이라고 지적했다.

스런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첨단전문인력비자로 국내에 체류하는 해외 인재는 지난해 11월 기준 38명에 불과하다. 그는 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고급 전문 인력 유치를 위해 2019년 도입한 두바이의 ‘골든비자’를 예로 들면서 “해외 인재를 위해 문호를 더욱 개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스런 교수는 한국이 외국인 인재에게 빗장을 열고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이유로 엄격한 상명하복 문화를 언급했다. 그는 “한국은 ‘엄격한 위계질서(firm hierarchies)’를 갖고 있다”며 “미국은 젊은 사람들이 승리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고 보상도 크다.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AI 분야에서는 최고의 데이터를 가진 자가 승리한다”면서 ‘디지털 석유’로 통하는 데이터 확보도 중요한 과제로 짚었다. 스런 교수는 “한국에서는 정부가 일부 데이터를 매우 엄격하게 통제한다”며 “데이터 측면에서 정부가 익명화된 의료 데이터나 공공 기록 등 더 많은 데이터를 개방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빅테크 경쟁 구도 속 활로로 주목하는 ‘주권 AI(소버린 AI)’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세상이 매우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건 좋은 일”이라며 “기술을 물리적인 국경 기준으로 나누려는 시도는 최선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진정 중요한 것은 AI를 범용화해 실제 비즈니스 가치로 전환하는 일”이라면서 “이 같은 변화는 반드시 글로벌 단위의 규모에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율주행차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런 교수는 한국이 이 분야에서도 적극적인 개척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시장을 선도하는 가운데 독일은 구식 규제와 비즈니스 모델에 발목이 잡혀 있다”며 “자율주행, 나아가 자율비행은 세상을 바꿀 기술이다. 한국도 당장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가 모든 걸 바꿀 것…서울포럼 참석 기대”=첨단기술의 발전 과정을 핵심적 위치에서 관찰해온 스런 교수는 AI의 무한한 잠재력에 주목했다. 그는 “향후 10년 동안 AI가 모든 것을 바꿀 것”이라며 “대표적인 예는 디지털 트윈이다. 누군가의 행동을 1년 동안 지켜본 AI가 앞으로의 모든 행동과 말을 100% 예측할 수 있는 시대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은 공장 등 실제 대상을 디지털 공간에서 똑같이 재현해내는 기술이다. 스런 교수는 이 기술이 공장·도시 등 비생물 영역을 넘어 인간에게도 그대로 재현될 수 있다고 예측한 셈이다. 그는 “이건 무서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스런 교수가 글로벌 AI 연구의 최고 석학으로 떠올랐던 건 웨이모 프로젝트 등 자율주행 분야에서의 대체 불가한 전문성 때문이다. 스런 교수는 구글의 비밀 연구실로 통하는 ‘X’를 이끌 당시 웨이모를 개발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현재의 자율주행 기술 수준에 대해 그는 “웨이모의 자율주행 기술은 현재까지 나온 대부분의 AI보다 훨씬 어렵다”며 “여기서 나타나는 오류(환각)는 실제로 사람을 해치거나 목숨을 위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AI는 인간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개선될 것”이라며 “지금도 이미 웨이모는 인간 운전자보다 8배 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스런 교수는 구글을 퇴사한 뒤 온라인 교육 플랫폼 유다시티, 항공택시 기업 키티호크 등을 설립해 활동하다가 최근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는 오랜 동료인 에릭 슈밋 전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정체를 숨기고 추진 중인 스텔스 스타트업 ‘후글리’를 준비 중이다. 외신에 따르면 이 스타트업은 틱톡의 대안이 될 가능성이 있는 콘텐츠 관련 기업이다. 이와 관련해 스런 교수는 구체적으로 사업 내용을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AI 업계에서 가장 큰 성공 사례 중 하나는 콘텐츠 분야”라고 전했다. 콘텐츠 강국인 한국 시장에서도 가능성을 보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물론 그렇다”며 “한국은 독특하고 매우 강력한 미디어 환경을 갖추고 있다. 콘텐츠 기획, 후반 작업, 개인 맞춤화 등 거의 100가지 방식으로 AI를 접목할 수 있다고 본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기 집권 후 미중 갈등 격화 등 글로벌 분화 조짐이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면서도 우려를 드러냈다. 스런 교수는 “솔직히 말해 AI 산업이 이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을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다만 미국 행정부의 여러 직관적인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스런 교수는 서울포럼 2025 기조강연을 위한 방한에 큰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한국인들은 미국인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개방적”이라며 “서울포럼에 올 수 있게 돼 매우 기쁘다”고 말했다. 스런 교수의 공식 방한은 2016년 이후 약 9년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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