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1기 재임 시절 미국의 한국산 상품에 대한 수입규제가 2배 급증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핵심 품목의 대미 수출 규모가 커진데다 트럼프 대통령이 더 강력한 무역정책을 예고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들이 관세 폭탄과 비관세 장벽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일 KOTRA에 따르면 트럼프 1기 마지막 해였던 2020년 말 현재 미국이 한국에 적용한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 긴급수입제한(세이프가드) 등 수입규제 조치는 총 46건으로 집계됐다. 트럼프 1기 출범 전인 2016년 말(23건)과 비교하면 4년 만에 2배나 늘었다.
2020년 말 기준 미국 정부가 주요국에 부과한 반덤핑·상계관세 건수를 따져보면 한국은 중국(225건)과 인도(58건) 다음으로 가장 많았다. 당시 트럼프 정부가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였다는 점과 인도가 개발도상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주요 경제국 중에서는 한국에 가장 많은 제재를 부과한 셈이다. 한국 입장에서 봐도 전 세계 26개국 가운데 미국이 적용한 비관세 장벽이 가장 많다.
최근에도 미국의 수입규제 조치가 상승세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증가율에서 큰 차이가 난다. 바이든 행정부의 수입규제 조치는 4년간 19.6% 수준이다. 트럼프 1기인 2017~2020년 미국이 한국을 상대로 제재를 위한 신규 조사에 나선 건수도 22건에 달한다.
반덤핑관세는 통상 수입품이 자국 제품보다 낮은 가격에 판매되는 경우에 부과한다. 상계관세는 수출국 정부·기관이 수출 기업에 불공정 보조금을 지급할 때 수입국에서 수출 기업에 부과하는 관세다. 이들 모두 국내 산업 보호를 위한 대표적인 수입규제 조치다. 세이프가드는 특정 상품 수입이 급증해 국내 산업에 피해를 줄 때 해당 품목의 수입 물량을 제한하는 조치로 2017년 미국이 용량 10kg 이상 한국산 대형 세탁기에 대해 연간 120만 대 초과 시 50%의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10~20%의 보편관세 부과와 60%의 대중 관세 등 1기 때보다 한층 더 강화된 무역정책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2기 초대 재무장관으로 지명된 스콧 베센트는 미 상원 인사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무역정책에 탄소세 도입을 포함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 1기 때 자주 쓰이다가 바이든 정부에서 적용 빈도가 줄었던 특별시장상황(PMS) 규정 역시 2기에서 적극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PMS는 수출국 내 과잉 생산, 보조금 지급 등 특별한 시장 상황으로 인해 조사 대상 기업이 제출한 자료만으로 정상 가격을 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할 경우 수입국이 재량으로 정상가치를 산정하는 것이다. 고율의 반덤핑관세 부과를 위한 근거로 활용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트럼프 신행정부는 반덤핑 신규 조사나 연례 재심에서 PMS를 활발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공급망상으로 중국과 접점을 가진 품목을 대상으로 제3국의 보조금 혜택이 수출국 내 제조기업에 제공되는 ‘초국경 보조금’을 이유로 한 상계관세 부과에도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대미 무역 흑자가 크게 증가한 것도 문제다. 트럼프 1기 정부 마지막 해인 2020년 166억 2000만 달러였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지난해 556억 7000만 달러로 3.4배 불었다. 15대 주력 수출 품목으로 좁혀봐도 2020년 이후 자동차(194억 1000만 달러)와 일반기계(66억 9000만 달러), 반도체(34억 2000만 달러) 등에서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대폭 늘었다. 모두 트럼프 신행정부의 자국 내 생산주의 정책의 영향권에 있는 품목들이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통상정책에 새로운 수단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트럼프 1기 정부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할 것은 분명하다”며 “보편적 관세는 주요국을 대상으로한 협상 카드로 쓸 가능성이 높은데 무역규제와 비관세장벽도 (협상카드로) 함께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