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수필] 앵두나무의 추억

2025-05-29

친구가 청실배꽃 사진을 여러 장 보내 왔다. 반가움에 보고 또 보기를 여러 번 했다.

푸른 빛의 처연함을 보여주는 배꽃과는 달리 앵두꽃은 그저 돌쟁이의 뽀얀 피부로 배시시 웃는 것 같은 모습이 다르다. 우리 집 앵두나무는 깊은 우물 옆에 서 있다. 익는 구분이 애매한 흰 앵두지만 같이 살며 지켜본 세월에 윤기가 날 정도로 금방 알 수 있던 앵두의 추억이 40년을 훌쩍 뛰어넘어 바로 엊그제 일 같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시댁에 처음 인사를 갔던 날 시어머님은 앵두나무 곁에 서 있다가 "어서 오너라" 한 말씀만 하셨다. 그이와 시어머니, 그리고 일을 돌보는 애, 그 옆의 꼬마가 앵두꽃과 어울려 모두가 하얗게 보이는 봄날이었다.

매일 지치도록 보던 봄꽃이건만, 그 꽃들과는 다른 다소곳함이 배어있었다. 그 봄에 결혼 후 신방으로 꾸며질 방이었는데, 살던 아래채 사람들의 이사가 늦어져 임시로 머문 방 창을 열면 바로 눈앞에 앵두나무가 보였다. 창가에는 연둣빛 콩나물 콩만 한 앵두가 달려있었다.

피난 짐 같은 혼수 보따리가 거실에 가득 쌓여있었는데 주문해 놓은 가구점에서는 언제 가구를 들일 거냐고 매일 전화가 왔으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소리 없이 대문만 드나들 뿐이었다. 메주콩만한 앵두가 우윳빛으로 변해 가는 무렵에야 신방이 꾸며졌다. 길지 않았지만, 신방에 들기까지 지루했던 그 기간, 앵두나무를 보는 것은 큰 위안이었다.

어느새 초록 잎 사이에 빼곡히 박힌 앵두가 진주처럼 빛나고 있었다. 옆의 빨간 보리수 열매와 함께 따서 큰 유리 항아리에 술을 담아 광으로 옮겼다. 해마다 담근 술이 반쯤, 혹은 가득 담겨 있는 항아리들 옆에 나란히 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오빠가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외출준비를 하던 꼼꼼한 시어머님은 기어이 당신 손으로 주전자에 술까지 담아놓고 가셨다. 아버지 같은 오빠들은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놓였는지 기분 좋은 모습으로 작은 주전자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금방 술이 바닥났다. 한 주전자, 두 주전자… 줄어든 술 항아리.

오빠들을 술꾼으로 알면 어쩌나? 헤픈 며느리로 알면 어쩌나? 나무라시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분명 어머니 몫인 광 열쇠, 끼니때마다 필요만큼의 쌀과 부식을 내주시고 문에는 항상 자물쇠를 잠그는 광에 몇 번을 드나들 것인가?

겁이 나서 큰 바가지에 물을 받아 설탕을 한 움큼 넣고 저어 술 항아리에 부었다. 진분홍에서 연분홍색 색깔 술이 되었다. 광 문을 자물쇠로 잠근 다음 열쇠는 제자리에 놓아두었다. 한참 뒤, 술이 필요한 때에야 부패한 술 항아리를 발견하고 원인을 궁금해하셨지만, 얌전한 며느리로 자리매김 해가는 나를 의심하는 빛이 조금도 없으셨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지 30년 가까이 지났다. 앵두나무가 있던 집도 떠나왔다. 당연히 해마다 거르지 않고 담던 앵두 술도 떨어진 지 오래다. 그때 어머님은 정말 술이 부패한 원인을 모르셨을까? 궁금해서 고개를 갸웃해 본다. 이젠 나도 며느리를 맞은 지 오래된 시어머니가 되었다. 우리 며느리라면 그 상황이 될 때 어떻게 했을까? 앵두꽃같이 소박하고 조용한 며느리가 생각나는 날이다.

△이용미 수필가는 <수필과비평>으로 등단 했다. 저서로는 수필집 <그 사람> <창밖의 여자> <물 위에 쓴 편지> 등이 있다. 행촌수필 회장, 수필과비평 전북지부장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진안문학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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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gigo@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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