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대가 올 2월부터 학부생 대상의 ‘기초학력 진단 평가’를 시행 중이다. 전공자율선택제로 입학한 공과대 신입생 외에도 특정 전공 진입을 희망하는 자유전공학부 재학생은 진단 평가에 응해야 한다. 기초학력 진단 평가 과목은 수학(수학Ⅰ·Ⅱ, 확률과 통계, 미적분), 과학(화학·물리·생명) 등으로 고3 학생 커리큘럼과 사실상 같다. 고려대 관계자는 “전공자율선택제 도입 및 학사 유연화에 따라 기초 학업 능력 충족 여부와 관련한 사전 진단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이 같은 평가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한 지방 국립대는 몇 년 전부터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기초학력 진단 평가’를 실시하고 해당 평가에서 하위 20%로 분류된 학생은 ‘선이수 과목’을 이수하도록 했다. 기본수학·기본물리학·기본화학과 같은 과목을 선이수한 후 수학1·2, 물리학1·2, 화학1·2 등을 추가로 이수하는 구조다. 해당 대학교 관계자는 “선이수 과목은 수학·물리·화학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난이도는 고교 과정에서 배우는 수준 정도”라고 말했다.
수험생의 학업 부담을 낮추기 위해 개정된 대입 개편안이, 고교 시절 물리·화학과 같은 기초과학 과목 미이수로 이어지며 기초과학 분야에서 심각한 기초학력 저하를 야기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각 대학들은 신입생 대상의 ‘기초학력 진단 평가’ 등을 통해 개별 역량을 평가한 후 사실상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공지능(AI)과 양자컴퓨팅 등 미래 기술을 선도할 우수 학생 육성이 시급한 상황에서 한국의 교육 제도는 완전히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실제 2026학년도 수능 접수 인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사회·과학탐구 영역 수험생 중 과탐 영역만 선택한 지원자는 12만 692명(22.7%)으로 사탐만 선택한 지원자(32만 4405명·61.0%)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과목별로 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국내 핵심 사업은 물론 양자컴퓨팅과 같은 미래 기술의 기초가 되는 ‘물리Ⅱ’를 선택한 학생은 6217명으로 전체 사회·과학 탐구 응시자 53만 1951명의 1.17%에 불과했다. 바이오나 수소에너지 등 미래 성장 사업의 필수과목인 ‘화학Ⅱ’를 선택한 학생 또한 6200명에 그쳤다.
최근 3년 새 이공계 기초 과목인 물리Ⅰ과 화학Ⅰ을 선택하는 학생도 급감하고 있다. 2023학년 수능 원서 접수에서 물리Ⅰ을 택한 수험생은 6만 8169명으로 탐구 과목 선택 학생 중 13.86%에 달했지만 2026학년 수능에서는 관련 인원은 4만 6943명, 관련 비중은 8.82%로 크게 줄었다. 화학Ⅰ 응시생 감소는 더욱 두드러져 2023학년도에는 7만 6802명(15.62%)에 달했지만 2026학년도에는 2만 6683명(5.02%)으로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현 고1 학생들부터 적용되는 2028학년도 수능부터는 고교 교육 과정의 ‘심화 수학(미적분2·기하)’이 출제 범위에서 제외되며, 과학탐구는 ‘통합과학’ 영역에서만 문제를 출제하도록 해 자연계 신입생의 기초과학 학력 저하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때문에 입시 업계에서는 2028학년도 입시에서 대부분 주요 대학이 별도 면접 등을 통해 과학 분야 ‘정성 평가’를 강화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지만 현행 입시 구조상 과학 부문의 기초학력 하락 추이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임성일 연세대 물리학과 교수는 “공학뿐 아니라 산업 분야에서도 반도체는 일반물리학, 2차전지는 일반화학이 필수”라며 “현재 기초과학 분야에서 대학교 1·2학년 학생의 수준이 떨어지는 편이며 대학원이나 산업계에서까지도 이와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한 이공계 대학 학부장 또한 “이른바 명문대 공대에서도 과학고·사립고·일반고 출신 학생 간의 학력 격차가 커서 1학년 대상의 수업에서는 난이도 조절이 쉽지 않다”며 “현행 입시 제도를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고등학교와 대학교 간의 교육 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으로 전망돼 고등교육의 주요 목표 중 하나인 ‘수월성’ 달성이 쉽지 않은 모습”이라고 밝혔다.
주요 대학의 이공계 학부 커리큘럼을 보면 고교 시절에 이들 과학 과목의 기초 지식을 습득하지 않았을 경우 기본 수업을 따라가기 힘든 구조다. 실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의 경우 물리학1과 물리학 2를 ‘필수 교양 과목’으로 분류했으며 화학1·화학2·생물학1·생물학2 등 7개 과목 중 2개 과목을 이수해야 한다. 이공계 학부생들이 느끼는 엄청난 학습량을 감안하면, 결국 이 같은 이공계 신입생의 낮은 기초과학 역량이 석박사 과정 이후에도 연구 성과 등에서 꾸준히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국가 전반에서 기초과학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초과학 역량 제고를 위해 대학 입시에서 과학 선택과목 반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을 제기한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대입 시험 범위가 갈수록 축소되며 변별력 확보를 위한 ‘킬러 문항’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반면 정작 중요한 기초과학 등은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있다”며 “이 같은 구조에서는 고교생이 대학 진학 이후 심화 학습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는 결국 국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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