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가 비상계엄보다 세다 [기자수첩-정치]

2025-01-22

尹, 자유 외치는 입만 있고

자유 느끼는 감각은 상실했나

아마 내 또래가 학교에서 '싸대기'를 맞은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말 안 듣는 아이들이 얄미웠겠지만 선생님은 시뻘건 얼굴로 아이들 뺨을 쳐올리곤 했다.

교복을 벗고 군생활을 마무리할 즈음 학교 체벌이 금지됐다는 얘길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머리 길이, 교복 수선을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는 얘기도 그즈음 들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우린 기성세대가 선물해 준 더 큰 자유를 누리며 컸다. 덕분에 배낭을 메고 세계를 누빌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비칠까 싶어 뚝딱거렸고, 그들은 개의치 않고 자연스러웠다. 진정한 자유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10여 년이 흐른 요즘, 밋밋한 머리색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낀다. 예전엔 억눌린 자유를 머리에 색을 입혀 표현하는 친구들이 적잖았다. 최근 들어선 대학가에서도 형형색색의 머리카락이 귀한 느낌이다.

이따금 개그 소재로 활용되는 어린 친구들의 숨김없는 화법도 마찬가지다. 저런 말을 어떻게 하나 싶다가도 비장함과는 거리가 먼, 동그란 눈동자가 깊숙하게 자연스럽다.

자유가 만연한 이 시대에 자유를 시도 때도 없이 강조했던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큰 형님' 미국이 민주주의를 앞세울 때도 윤 대통령은 자유에 방점을 찍었다. 윤 정부 대외정책 '3대 비전'의 첫머리를 자유가 꿰찼을 정도다.

윤 대통령은 연초 만년필로 작성했다는 '국민께 드리는 글'에서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는 가짜 민주주의"라고 했다. 해당 글에서 자유는 24번 등장한다. 민주주의(19번), 법치(18번)보다 많은 횟수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도 자유 때문이라고 했다. 자유를 좀먹는 거대 야당에 맞서기 위해 군 병력을 동원했다는 설명이다. 자유라는 '목적' 달성을 위해 자유와 동떨어진 '수단'을 활용한 셈이다.

모든 정치 활동 금지, 언론 자유 억압, 파업 의료인 처단 등을 골자로 하는 포고령은 또 어떤가. 몇 번을 읽어봐도 자유와는 무관하다.

오히려 자유로웠던 것은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일선 병력이었다. "무릎 꿇고 계엄을 만류"하고 "대원들이 명령을 안 따를 것"이라던 핵심 지휘관들은 실제 상황에서 윤 대통령 지시를 앵무새처럼 읊었다.

하지만 현장 지휘관들은 하달된 지시를 실현 불가능하다며 주저했고, 일선 병력은 계엄 반대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상관의 명령일지라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자유가 그들에겐 있었다. 자유가 명령보다, 비상계엄보다 셌던 것이다.

윤 대통령은 헌재 탄핵심판에서 국회 CCTV 영상을 보고 "군인들이 본청사에 진입했는데 직원들이 좀 저항하니까 스스로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더 들어갈 수 있는데도"라고 말했다.

해당 영상에는 윤 대통령이 그토록 갈망하는 자유 대한민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명령과 무관하게 '민간인에게 해를 입혀선 안 된다'는 자연스러운 결론은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

자유로운 그들이 없었다면, 윤 대통령이 항변하는 "초단시간 계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윤 대통령이 가장 고마워해야 할 대상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계엄군 오명을 쓴 장병들에게, "반란군의 자식들"이란 비판에 시달린 군 가족들에게, 윤 대통령은 어떤 말도 남긴 적이 없다.

대신 비상계엄을 준비·실행한 국방장관 및 장성들의 구속을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했다. 탄핵 반대집회에 참가한 청년에게선 "희망을 봤다"고 했다. 자유를 외치는 입만 있고, 자유를 느끼는 감각은 상실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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