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으려는 자, 뚫으려는 자…미·중 반도체 전쟁사

2025-09-02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려는 행동은 오히려 그를 더 빨리 달리게 만든다” (5월21일 중국 관영매체 ‘차이나데일리 홍콩’)

중국의 클라우드 컴퓨팅 기업 ‘알리바바’의 자체 인공지능(AI) 칩 개발 소식으로 관련 업계가 소란스럽다. 알리바바의 새로운 칩은 AI 칩 시장의 ‘절대 강자’ 엔비디아의 H20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다만 업계에선 “미국 제품에 필적할 칩을 만들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월스트리트저널)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미국이 반도체 수출 규제를 본격화하며 중국과 반도체 전쟁을 벌인 지 6년이 지났다. 알리바바의 AI칩 개발은 이 전쟁이 어디쯤에 이르렀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의 첨단 기술에 닿기엔 “갈 길이 멀지만” 중국은 이 도전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막으려는 미국’과 ‘뚫으려는 중국’의 6년간 대결을 돌아본다. 간략하게 짚어보는 ‘미·중 반도체 전쟁사’다.

■미·중의 봉쇄와 반격

미·중 반도체 전쟁은 2019년 5월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중국 기업 화웨이를 거래제한 블랙리스트(엔티티 리스트)에 올리며 시작됐다. 미국에겐 자국 기업과 화웨이 간 거래 차단은 물론 대만 TSMC 같은 타국 기업과 화웨이 간 거래까지 가로막은 결정적 무기가 있었다. 미국의 기술·소프트웨어·장비가 사용됐다면 해외 기업 제품이라 해도 미국의 수출통제 규제를 받도록하는 FDPR(해외직접생산품 규칙)이다. TSMC에 반도체 공정을 기대고 있던 화웨이에겐 날벼락이었다. 화웨이의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글로벌 AP(스마트폰용 반도체) 점유율이 5분의 1토막이 났다. “반도체가 석유와 비슷한 영향력을 갖고 있음이 드러난 순간”(정인성 작가·‘반도체의 제국’ 저자)이었다.

미국이 포문을 연 까닭은 무엇일까. 1960년대부터 반도체 산업을 일군 미국의 지위를 중국이 넘보고 있는 것이 근본 문제였다. 2014년 중국 정부는 ‘제조 2025’를 선언하며 그 일환으로 반도체 굴기를 본격화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말기였던 2017년, 백악관은 이 같은 ‘중국의 도전’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당시 발표된 백악관 보고서는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 등을 지적하면서 동맹국과 함께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를 강화할 것을 주장했다.

일단 전쟁을 시작한 미국은 거침이 없었다. 조 바이든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후 미국의 수출 통제 기조는 오히려 강화됐다. 화웨이를 비롯한 일부 기업에 국한됐던 제재는 중국 첨단 반도체 산업 전반으로 확대됐다. 엔비디아의 고사양 AI칩 중국 수출이 금지된 것도 이때다. 다만 바이든 정부는 산업정책을 병행했다. 자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을 유치하기 위해 ‘칩스법’(반도체 및 과학법)을 만들고 거액의 보조금을 약속했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미국 내 투자 계획을 내놓는다.

중국은 맞불을 놨다. 2023년 여름, 반도체 업계는 이른바 ‘화웨이 쇼크’로 떠들썩했다. 미국의 촘촘한 수출통제에도 불구하고 7나노미터급 스마트폰용 반도체(AP) ‘기린 9000s’가 등장한 것이다. 수율(정상작동되는 양품 비율)이 낮다는 약점이 있었지만 ‘7나노 공정’ 성공 자체는 중국의 반도체 자립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다. 이후 바이든 정부는 제재를 한층 강화한다. AI칩에 탑재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중국 수출까지 가로막았고 수출 금지 반도체 장비 목록도 추가했다.

■복잡해지는 미·중 반도체 전쟁

최근 들어 미·중 반도체 전쟁의 양상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지난 4월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칩 H20의 수출까지 막았다가 3개월 만에 풀며 관련 매출의 15%를 받는 ‘수출세’ 개념을 도입했다. 칩스법 보조금 예산을 줄이는 등 야금야금 모은 재원은 희토류를 무기화한 중국에 맞서 미국 내 광물 사업에 쓸 가능성이 거론된다.

반면 중국은 국영·민간 기업에 H20 사용 자제령을 내렸다. 중국 관영매체들은 H20에 위치추적·원격종료 기능이 포함된 ‘백도어’(비밀 접근장치)가 내장돼 있을 가능성을 적극 보도하고 있다. ‘H20 공격’은 미국산 반도체의 자국 내 점유율을 제어하는 동시에 자국산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일종의 양동작전이다.

미·중 반도체 대결 속에서 한국은 ‘낀’ 처지다. 지난달 29일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법인을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명단에서 제외키로 한 사건이 한국의 처지를 잘 보여준다. 대중국 수출규제를 확대해온 미국은 한국 기업이 중국 공장에 미국산 제조장비를 비교적 자유롭게 들일 수 있도록 했으나(VEU 부여), 이제는 개별 허가를 받도록 했다. 미국이 대중국 수출규제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유탄’을 맞은 격이다.

미·중 반도체 전쟁이 장기화하는 지금, 한국의 전략은 어느 때보다 치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는 현지 투자를 압박받고 있고, 중국엔 여전히 거대 시장이 있다. 한국이 ‘슈퍼 을’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제언해온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반도체 삼국지’ 저자)는 “반도체 분야에서 핵심적인 원천 기술을 갖기 위해 국가 차원의 장기 연구·개발 프로그램이 이어져야 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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