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트럼프의 네오 팍스아메리카나

2025-01-31

지난 2020년 재선 실패 후 숙고의 4년을 보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취임했다. 그의 취임식을 실리콘밸리에서 지켜봤다. 네 차례 형사 기소에도 불구하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슬로건을 다시 내걸고 압도적 지지로 당선된 트럼프는 4년 전에 비해 무엇이 다를 것인가?

그는 이전보다 더 거침이 없고 자신감에 차 있다. 그는 숙고의 시간 동안 과거를 반추하면서 재집권할 경우 누구도 넘보지 못할 미국을 만들겠다는 비전과 전략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는 취임식에서 지난 7월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총알이 귀를 관통한 암살 시도를 언급하고, 하나님이 미국을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자신을 구했다고 말했다.

세계 최고 국가 건설하겠다고 천명

실리콘밸리 테크 개척자들과 협력

첨단 분야에 정통한 머스크 등 발탁

중국 추격 따돌리고 1등 유지 목적

트럼프는 취임사에서 야망은 위대한 국가의 생명선이며, 미국은 프런티어 정신으로 탐험하고, 건설하고, 혁신하고, 창업하고, 개척하여 이룩한 국가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불가능한 것을 가장 잘해낸 나라가 미국으로, 부와 영토를 늘리고, 기대치를 높이고, 깃발을 들고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성장하는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겠다고 천명했다. 이른바 네오 팍스아메리카나 시대다.

트럼프는 추격자 중국을 따돌리기 위해 가용자산을 활용해 경쟁력을 먼저 높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미국 행정부의 규제와 관료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정부효율부(DOGE)를 만든 이유다. 중국 딥시크 쇼크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인공지능(AI) 기술은 정부의 행정 프로세스를 자동화하고 합리화할 수 있을 만큼 발전했다. 행정부를 포함해 AI 기술을 모든 분야로 확산하려면 대규모 데이터센터 인프라에 선투자를 해야 한다. 트럼프는 이런 전략적 과제 수행을 위해 첨단 기술로 세상을 실제로 바꿔본 실리콘밸리 테크 개척자들을 다수 발탁됐다.

일론 머스크가 대표적 인물이다. 그는 스페이스X를 창업해 미국의 우주 및 방위산업 경쟁력을 끌어올렸을 뿐만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글로벌 저궤도 위성 통신시장을 개척했다. 스페이스X의 장외시장 가치는 한 달 전 3500억 달러(약 503조원)로 삼성전자(356조원)를 훌쩍 뛰어넘었다. 항공기, 선박, 군사용 통신 등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머스크는 이 외에도 2017년까지만 해도 대량 생산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던 테슬라를 세계 최고의 전기차(EV) 회사로 만들어 미국 제조업의 희망을 보여줬다. 또한 오픈AI를 창업하고 이후 이와 경쟁하는 xAI를 창업했다.

올해는 중국이 세계 제1의 제조국가가 되겠다는 야심을 천명한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당시 이 정책집의 공동 저자였던 칭화대 교수로부터 이 책을 받았을 때 과연 중국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까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이제 중국은 반도체, 소프트웨어 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산업에서 제1 또는 제2의 위치에 올라섰다. 군함을 AI로 설계하는 등 중국의 방위산업도 AI로 고도화되고 있다. 중국의 추격을 봉쇄해야 하는 트럼프의 입장에서 머스크는 우주, 방산, 통신, AI와 제조업 모두를 커버하는 보기 드문 전문가다. 그에게 정부효율부(DOGE)의 공동수장을 맡기는 트럼프의 속마음이다.

마크 앤드리슨은 드러나지 않은 채 트럼프에게 조언하는 실리콘밸리 테크 개척자다. 그는 1993년 인터넷 시대가 시작될 때 최초의 웹 브라우저인 모자이크를 공동 개발한 후 넷스케이프를 공동 창업했고 이후 이 회사 동료들과 라우드클라우드를 공동 창업해 HP에 인수시켰다. 페이스북에 엔젤 투자한 후 이 회사 이사가 되었으며 오랜 동료인 벤 호로비츠와 2009년 앤드리슨 호로비츠(a16z)를 공동 설립했다. 15년 만에 실리콘밸리의 대표적인 벤처 캐피털 회사로 급성장한 a16z의 자산(AUM)은 작년 5월 기준으로 4200억 달러가 됐다. 앤드리슨은 트럼프에게 AI와 국방, 암호 화폐 정책 수립에 조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가 취임식 바로 다음 날 깜짝 발표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보면 그가 실리콘밸리 테크 개척자들의 조언을 받아 기존과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프로젝트는 앞으로 4년간 5000억 달러를 들여 오픈AI, 오라클, 소프트뱅크 그리고 아랍에미리트(UAE)의 MGX가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계획이다. 당장 1000억 달러를 투입하며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 시스템도 동시에 구축한다. 여기엔 매년 5조 달러의 비용이 드는 미국의 비효율적인 헬스케어를 AI로 바꿀 계획도 들어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과 헬스케어 사업을 하고 있는 오라클이 들어와 있는 이유다.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는 정부 예산이 투입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정부가 투자하면 규제와 책임, 관료주의적 프로세스 때문에 속도가 느려진다는 것을 안다. 중국보다 우월한 미국의 경쟁력은 실리콘밸리 혁신자본주의 생태계를 통한 전 세계 민간 자본의 대규모 유치와 빠른 집행이다. 같은 돈이라 해도 그 돈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가치와 유통 속도 다르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경제학을 벗어난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다. 내부 성장과 해외직접투자가 정체된 우리나라에서 한정된 국부에서 세금을 마냥 늘리는 것이 옳은 전략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명예교수(초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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