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산업재해 사망률 수치가 국격을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가 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과 비임금 노동자들이 처한 ‘권리 밖 노동’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삼겠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제가 (장관 자리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도 말했다.
이재명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에 취임한 김 장관은 지난 29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진행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장관으로서 첫 번째 책무라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장관은 “이재명 정부에서 산재 사망률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노조 조직률이 얼만큼인지 등과 같은 노동의 가치는 국내총생산(GDP), 경제성장률과 대등하게 인식될 것”이라며 자신의 임기 동안 “중대재해 수치가 꺾이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김 장관은 29일 오전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산재 사망사고를 감축하지 못하면 “직을 걸겠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전날 모두발언에서 포스코이앤씨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 사고를 언급하면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아닌가”라며 강도 높게 지적했다. 이재명 정부에서 산재 사고 예방 등 노동자 보호가 주요 국정 과제가 될 것임을 시사하는 장면이었다.
김 장관은 연말 안에 정년 연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겠다며 정년 연장이 임기중 첫 사회적 대화 과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정년 연장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노동시장 격차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세대 연대적 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김 장관은 철도기관사 출신이자 철도노조·민주노총 위원장 등 노조 활동가 출신이다. 취임하자마자 경기 남양주에 있는 건설 현장을 불시에 찾아 안전 점검을 하는 등 ‘현장형 장관’ 특기를 드러내고 있다. 다음은 김 장관과의 일문일답.
-취임한 지 일주일 정도가 흘렀다. 소회는 어떤가.
“노동자에게 나랏일을 맡겨주셔서 감사드린다. 무거운 책임감과 잘해야 한다는 두려움을 매일 느끼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직을 걸겠다”는 발언까지 했다. 어떤 문제의식이나 책임감에서 나온 발언인가.
“산재 현장을 가보면 우리는 운이 좋아서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덤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보면 일터에서의 죽음을 막지 못하면 직을 건다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제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통령께서 산재 근절로 1시간 넘게 국무위원들과 토론한 건 대통령의 국정 철학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본인이 산재 노동자 출신이고 민주노총 출신 노동부 장관을 앉혀 관심을 보인다는 차원이 아니다. 대통령은 산재 사망률을 낮추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경제·산업 지표가 된다고 인식한다. 그동안 국격을 평가할 때 부차적으로 밀렸던 과제를 최상급으로 올려놓은 것이다.”
-산업안전과 관련해 제도적으로 시급하게 도입해야 하는 것은.
“중대재해를 줄이기 위해 우선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지 말아야 한다. 재해자의 불완전한 행동을 원인이라 하지만 그건 결과다. SPC 시화공장에서 발생한 산재도 저임금 장시간 체제라는 구조 속에 벌어졌다. 지배구조의 문제도 있다. 회전체에 윤활유가 자동 분사되는 장치가 고장 났으면 경영책임자가 즉각 교체해야 하는데 그럴 권한이 없다. 투자 책임은 그룹사 차원에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리된 지배구조가 노동자를 죽음 속으로 밀어 넣었다.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구조를 바꾸고 중대재해가 줄어든다. 두 번째는 일터 민주주의다. 노사가 중대재해 예방의 주체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노동자에게 3권을 줘야 한다. 어떤 것이 위험한지 알 권리, 노사 안전보건체계 등에 참여할 권리, 작업중지권 등 예기치 못한 사고가 났을 때는 피할 권리를 뜻한다. 이것이 노사 공동의 이익 아닌가.”
-노조법 2·3조 개정안(노란봉투법)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했다.
“아주 중요한 한 발을 내디뎠다고 본다. 이제 우리의 사고는 노조법 2·3조 개정 이전과 이후로 달라져야 한다. 이전에는 어느 기업에 속해야만 노조원이 될 수 있고 기업별 노사관계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노동자의 노동조건이 기업별 노사관계를 뛰어넘어 산업 차원에서 결정돼야 한다는 걸 선포한 것이다.”
-법안이 공포되면 시행까지 6개월간 준비해야 한다. 어떻게 조율하고 타협할 것인가.
“한국의 노사관계가 격렬한 이유는 대화 자체가 불법이 됐기 때문이다. 하청노동자들은 원청 사업장에서 원청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는데 원청과 교섭하려고 하면 이 자체가 불법이 되니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 양태가 격렬하고 돌아오는 손해배상 청구 금액이 많으니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로 갔다. 2009년 쌍용차 노동자들의 비극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대화 자체가 불법이어선 안 된다. 사업장에서부터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는데 노·사·정이 모여서 무슨 타협을 하겠나. 밑에서부터 신뢰 자산이 축적돼야 중층으로 올라오고, 그다음에야 최고위급 사회적 대화의 분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경제 위기와 관세 협상 등을 이유로 개정에 반대한다.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지 말자. 노란봉투법이 없다고 경제가 좋았던 적 있었나. 경제 위기가 격렬한 노사 갈등으로부터 왔나. 격렬한 노사 갈등은 결과다. 쌍용차처럼, 한국옵티칼하이테크처럼 ‘먹튀’ 자본이 나가버린다. 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가 지금 600일 가까이 공장 옥상에 올라가 있는데 (기업은 공장에) 불이 났다는 이유로 폐업하면서 교섭조차 안 하고 떠나버린다. 이게 원인 아닌가. 올라가 있는 사람이 왜 저렇게 격렬할까만 얘기해선 안 된다. 경제 위기의 근원은 중진국형 추격자 모델이 한계에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과 함께 하는 성장으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하청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이 좋아진다고 해서 원청의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어떻게 얘기할 수 있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한국은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지적하는데, 재계에서도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년 연장과 주 4.5일제에 대해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다.
“첫 번째 사회적 대화는 정년 연장이 될 것이다. 길게는 박근혜 정부 당시 공무원연금법 개혁 때부터 짧게는 지난 정부 3년 동안 미뤄졌던 과제다. 연말까지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한다. 공무원 중에도 이제 퇴직하면 소득 크레바스에 빠지는 사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자칫 잘못하면 세대 갈등을 유발하고 일자리 격차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득 공백을 메우려나다가 노동시장 격차를 심화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세대 연대적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년 연장의 혜택을 보는 계층이 좁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년 연장도, 주 4.5일제도 그런 점이 분명히 있다. 거시적으로 보면 부모는 정년을 연장했는데 자식은 취직을 못 하면 그 연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연금을 받더라도 비용 대다수가 자녀 양육비에 들어갈 것이다. 모든 정책이 당위와 명분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행 과정에서 왜 안 되는지에 천착해야 한다. 제가 박사도, 관료 출신도 아닌데 대통령이 이 자리에 보낸 건 정책 실행 과정에서 디테일은 어디서 생기는지를 아니까 그런 것 아니겠나.”
-비임금 노동자가 늘고 있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논의 방향도 여러 갈래다.
“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역점을 둘 것이 비임금 노동자 문제다. (비임금 노동자를 가리켜) 지난 정부에선 ‘노동약자’라고 했는데, 이는 ‘노동강자’가 따로 있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어 잘못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권리 밖 노동’이라 칭하고 싶다. 고용과 자영의 벽이 허물어지는 시기에 근로기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어려운 문제다. 근로자 추정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가 있는데 고민해보겠다. (MBC 기상캐스터) 고 오요안나씨 사건도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실질이 있는데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 여부가 게이트키퍼가 돼 버렸다. 실질에 대해선 한 발도 들어가지 못하고 근로자성 여부만 다투다가 흐지부지되면 안된다. 또 ‘일터 기본법’(일터 권리 보장을 위한 기본법)을 제정하는 방향도 있다.”
-근본적으로 비임금 노동자도 근로기준법 안에 포괄하는 것이 맞는다는 주장도 있다.
“구체적 방안에 대해선 고민이 필요하다. 나는 실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담론 투쟁에 빠지지 않고 실제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것부터 빠르게 하겠다.”
-매주 산업현장 불시 단속에 나서고 있다. 현장을 많이 찾는 이유가 있나.
“현장에서 그 일을 했던 사람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다. 제가 남양주 건설 현장에 갔더니 안전 난간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왜 그랬나? 몰라서? 비용 때문에? 시공 때문에? 어쩌다 보니?’ 이런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후에 그 현장에 안전 난간이 설치됐다는 보고를 받았는데, 원청에서 안전관리 비용을 빼고 주니 하청이 안전 난간을 설치하지 못했던 것이다. 앞으로 공사비를 설계할 때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안전관리 비용은 반드시 포함하고, 최저낙찰제를 하더라도 안전관리 비용은 빼지 않도록 하는 등 하나씩 바꿔나가야 현장 점검의 의미가 있다.”
-임기 동안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산업재해 감축이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터에 나왔다가 비명횡사하는데 다른 노동정책이 뭐가 필요하겠나. 국무회의에서 싱가포르 사례를 언급했다. 싱가포르도 2005년만 하더라도 산재율이 높았는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국가가 됐다. 싱가포르는 ‘WSH(Workplace Safety and Health·작업장 안전 및 보건)’ 기준을 두고 있다. 정부 최고 책임자가 산재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주무장관이 자기 직을 걸고 하겠다고 하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본다. 단순히 수치를 낮추는 게 아니라 정말 죽고 다치는 일이 줄어들어야 한다.”
-산재 사고에 있어 한국 사회가 악화해왔다고 평가하나.
“계속 반복됐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떤 시스템이 작동이 안 됐다는 것이다. 제대로 원인을 파악해 범부처 협업으로 대책을 만들면 결과가 나올 것이다. 개인적인 목표가 있다면 최소한 임기중에 중대재해 수치가 우하향하는 모습이라도 보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유형의 산재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수치를 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것이 장관으로서 첫 번째 책무라 생각한다. 권리 밖 노동을 폭넓게 보호하는 것이 두 번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