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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시인 변완수 선생이 쓴 〈한국 어문(語文)을 고발함〉이라는 책을 거듭 읽고 있다. 공부 많이 하신 지식인들이 쓴 책이나 글에서 잘못 쓰인 우리 글과 말의 사례를 하나하나 찾아내서 조목조목 고발한 준엄한(?) 책이다.
나 같은 글쟁이에게는 꼭 필요한 회초리 같은 책인지라, 여러 번 정성껏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운다. 주위의 문인들에게도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의 표지에는 “우짜다 우리 말이 요 꼴이 됐능교? 이 모두 한글 전용 군자의 공이로소이다” “이 책은 한 외로운 언어순정주의자(言語純正主義者)의 탄원서다”라고 적혀 있다. 저자의 서문은 한결 절절하다.
“우리 어문의 타락상이 하 분키로 부득이, 실로 마지못해, 이 통분(痛憤)의 글을 쓴다.”
작심하고 쓴 저자의 용기를 존중하지만, 많은 논쟁을 불러오거나 아예 무시당할 것 같은 걱정도 든다. 가령, 저자는 우리 말과 글이 타락한 원인은 한글 전용 때문이라고 고발한다. 어조도 매우 격정적이다.
“이 모든 문제의 장본(張本)은, 넓은 의미로, 한글 전용에 있고, 그 장본인은 다름 아닌 한글 전용론자(專用論者)들이다. 우리 선인(先人)들이 수천 년간 써오신 한자(漢字), 우리의 그 국자(國字)를 짓밟고 한글 전용 광란(狂亂) 반세기에 남은 것이 무엇인가? 우리 민족 문화는 쇠진(衰盡)하고 단대적(斷代的) 비극을 초래했을 뿐이다. 한글 전용은 우리 민족 문화의 난적(亂賊)이다.”
물론, 공감 가는 견해이기는 하지만,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은 아니다.
나는 이민 오기 전에 잠시, 한 미술대학에서 한국미술사 강사 노릇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수강생들이 공교롭게도 한자를 배운 적이 전혀 없는 학생들이었다. 그런 학생들에게 미술사를 가르치려니 강의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강의 때마다 문교부의 언어정책을 원망했던 악몽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글전용을 전적으로 반대하지 않는다. 반대할 수 없다.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국민의 대부분이 한글 전용 세대인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더구나 “한글이 한국어인가?”라는 저자의 문제 제기에 이르면 더욱 동의하기 어려워진다.
하지만, ‘문해력 저하’ 논란이 심각한 최근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문해력이란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문자의 이해와 활용 능력을 의미한다. 한국 국가평생교육진흥원에 따르면, 국민 5명 중 1명은 충분한 문해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심각하다. 예를 들어 보자.
“심심한 사과? 난 하나도 안 심심한데”
“고지식? 지식이 높다는 뜻?”
“우천시 장소 변경 예정? 우천시가 어디 있는 도시냐?”
이 책의 저자 변완수 선생 같은 전문가들은 이런 기막힌 현상이 한글 전용의 부작용이라고 강력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으로 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실제로 학자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의 70% 이상이 뜻글자인 한자에 온 낱말이라고 본다.
그러니 한자를 모르고는 우리의 정신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한글은 영어의 알파벳 같은 ‘발음기호’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이렇게 토대가 허약해진 어문(語文) 환경에 일본말 찌꺼기가 아직 상당히 남아 있고, 영어를 비롯한 외래어가 무분별하게 밀려들어 오고, 거기에 정체불명의 신조어, 줄임말, 비속어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니 우리말 사랑 지극한 이들이 피눈물로 비분강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좋은 글, 건강한 문장이 많아져야 한다. 품격있고 바른 글, 아름다운 문장의 문학작품이 많이 나오기를 빌고 또 빈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