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마신다는 것은 인간 생명과 직결된 가장 기본적인 행위다. 그래서 국민은 안전한 물에 대해 높은 기대와 요구를 가지고 있다. 오염으로부터 깨끗한 상수원을 보호하고 취수원을 제대로 관리하며, 수준 높은 정수 처리와 안전한 관을 통해 공급되는,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먹는물 정책이 마련되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기대와 다르다. 우리는 상수원에서 미량유해물질이 검출되거나, 수돗물에서 소독부산물, 탁수, 유충 등이 발견되는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접한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지표수, 즉 강물을 원수로 사용하기 때문에 오염 가능성이 있지만 정수 과정을 거치므로 인체에는 문제가 없다”고 설명하며, 향후 관리대책을 발표해 왔다.
하지만 국민의 먹는물에 대한 불안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된 수돗물 내 잔류의약물질 검출 사례만 봐도 그렇다. 농도는 낮지만, 검출되는 의약품의 종류와 빈도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특히, 분해되지 않는 ‘좀비 발암물질’로 알려진 과불화화합물(PFAS)은 열에 강하고 물이나 기름이 스며들지 않는 특성 때문에 산업 및 생활제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필연적으로 물에서도 검출된다. 전문가들은 이 물질로부터 먹는물의 안전을 확보하려면 고도 정수 처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미국은 과불화화합물 수질 기준을 4ppt로 강화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70ppt를 유지하고 있다.
여름철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총트리할로메탄도 걱정이다. 정수 과정에서 소독 부산물로 생성되는 이 물질은 수온이 높아지면 농도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서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그거 수돗물 문제잖아. 안 마시면 되잖아? 어차피 정수기나 생수 마시는데.” 그러나 수돗물은 정부가 법에 따라 국민에게 공급하는 공공의 식수다. 직접 음용률이 낮다고 해도, 정수기나 끓인 물도 결국은 수돗물을 원수로 한다. 먹는물의 중심에는 여전히 수돗물이 있다.
대부분 문명국가는 수돗물 공급을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로 한다. 국민의 공중보건과 위생을 위해 수돗물의 수질 안전성과 공급 안정성 확보는 국가의 기본 책임이다. 깨끗한 하천을 상수원으로 지정하고 보호하며, 정수처리 기술을 개선하고 노후 상수관을 교체하는 등의 관리가 이뤄진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필수 기능이며, 수돗물 수질 관리는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공공 사안이다. 국민의 생명과 건강에 위협이 되는 징후가 있다면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그렇다면 지하수는 안전할까? 병입수 형태로 판매되는 먹는샘물은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여러 우려가 존재한다. 환경부 조사 결과, 먹는샘물의 수질 기준을 위반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산업단지 인근 지역의 지하수 오염은 특히 심각한 수준이다. 중금속, 염화유기용제 등 유해물질이 검출되고 있으며, 이 중 염화유기용제는 발암물질로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위험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시민들은 “어떤 물을 마셔야 하나”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그러나 정부의 신뢰할 만한 대응은 찾기 어렵다. 산업의 고도화, 인구 고령화, 기후위기 등 복합적 요인으로 먹는물 관리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는 근본적인 정책 전환과 실효성 있는 관리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방적인 정책 수립과 시행을 넘어, 국민과 소통하며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먹는물 정책이 필요하다.
먹는물을 위협하는 요인은 다양한 경로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사전 예방적 차원의 정책을 마련해야 하고, 국민의 인식을 높이고 스스로 대응할 수 있도록 상시적인 소통체계를 갖춰야 한다. 그 전제는 수질오염 실태와 정부의 대응 현황을 국민이 균형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또한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국민 불안을 낮추기 위해 오염물질 수질 기준을 재설정해야 한다. 과불화화합물 기준치를 미국처럼 강화하고, 먼저 기준을 높인 뒤 목표 시점을 정해 점진적으로 맞춰가는 것이 필요하다. 여름철 총트리할로메탄의 경우, 한시적으로 강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오염물질의 발생 자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 필요하다면 대국민 캠페인을 통해 생활 속 실천을 이끌어야 한다. 과불화화합물이나 잔류의약물질은 산업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배출되고 있다. 산업계는 대체물질로의 전환을, 시민은 유해물질이 포함되지 않은 제품을 선택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이 모든 노력을 이끌고 견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