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고 맞서는 안성재 셰프의 모습은 단연 인상적이었다. 지난 10년간 공고하게 쌓아온 백종원 신화에 가해진 최초의 균열처럼 보였다. 그동안 그의 권위에 도전해 성공한 사람이 있었던가? 평론가든 동료 유명 방송인이든 컨설팅을 의뢰했던 식당 주인이든 모두 시청자들의 비난 속에 나가떨어졌다. 아마도 안성재는 백종원에 당당히 ‘아니라’고 맞선 뒤에도 악마화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인물일 것이다. 백종원이라는 권위의 성벽에 그어진 의미 있는 균열. 그것은 확실히 신선했다.
공익 추구하는 방송인 서사
이윤 좇는 사업가 현실과 충돌
불일치 털고 대중은 환상 깨길

그토록 단단했던 백종원의 신화가 무너지고 있는 요즘 모습은, 지난 10년간 그의 성공 신화에 기쁘게 동참했던 우리를 당황스럽게 만든다. ‘빽햄’ 세트 논란, 농지법 위반 의혹, 원산지 표기 오류, 지역 축제 위생 문제까지. 한때 국민 요리사로 추앙받던 그의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위선적인 사업가로 뒤바뀌고 있다.
이 상황이 안타까웠는지 커뮤니티에 올린 누군가의 글이 눈에 띄었다. “그래도 전 백종원님 덕에 혼자 살 때 라면·냉동식품 덜 먹고 요리해 먹을 수 있었어요.” 여기에 동조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이 소소한 고백들은 ‘백종원 내러티브’의 시작점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2015년경 시작된 백종원의 서사는 ‘권위를 버린 소탈한 전문가’였다. 그는 설탕 사용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주고 요리에 서툰 이들에게 정겨운 사투리로 손쉬운 레시피를 알려주었다. 비평가의 권위가 쇠퇴하고 대중의 개인 취향이 절대기준으로 자리 잡던 시대의 변화 속에서 성공한 사업가라는 배경이 더해지며 신선한 엘리트로 급부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방송의 천재였다. ‘골목식당’에서 멘토라는 새 이미지를 장착했을 때 그는 방송의 문법을 완벽히 활용하는 탁월한 커뮤니케이터의 면모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설탕 한 줌’처럼 때로는 어르고 때로는 달랬다. 경기 탓, 입지 탓을 하던 식당 주인들에게 그는 추상적인 손맛 대신 합리적인 성공 원칙을 강조했다. “메뉴를 단일화하고 국산재료를 사용하며, 가격은 내려서 박리다매로 하라”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산이라는 키워드는 애국심과 연결되고, 가격 인하와 메뉴 단일화는 탐욕을 버리고 소비자 우선적인 가치를 담은 메시지로 읽혔다. 이런 식으로 작은 식당들을 살리며 그는 ‘공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보기 드문 사업가’라는 서사를 우뚝 세웠다.
그러나 성공한 이미지는 성역화로 이어졌고, 방송은 그에게 세상의 여러 문제를 해결할 만능 솔루션이라도 되는 듯 의존했다. 지자체 축제, 지역 상권과 청년 일자리, 심지어 범죄 청소년 갱생 프로젝트까지 맡겼다. 팬들은 거대한 이미지의 성벽 안에서 백종원을 지키려 했고, 그의 서사를 위협하는 사소한 불신들은 묻혔다. 골목상권을 지킨다는 그가 정작 골목에 확장하는 프랜차이즈나, 그 식당들의 실제 음식 품질에 대한 의심 같은 의문들 말이다.
아마도 ‘성공한 사업가가 방송인으로 변신해서 사회의 공익을 위해 착한 컨설팅을 한다’는 데서 그의 서사가 끝났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누누이 “자신은 방송인이 아니라 사업가”라고 강조했다. 문제는 방송 천재로 일궈온 서사와 사업가로서의 정체성이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공익을 강조하는 방송과 이윤을 추구하는 사업이 일치하지 않는 순간부터 균열은 시작됐다. 사업은 공익적일 수 있지만 공익은 사업의 근본이 아니다.
방송인 백종원과 사업가 백종원의 서사는 자꾸만 어긋나기 시작했다. 가르침과 상생의 가치를 담았던 골목식당의 히트 상품이 그의 새로운 프랜차이즈로 둔갑하는 것에 대한 윤리적 찜찜함이 쌓여 갔다. 이윽고 대중들은 이제 더 이상 그 불일치를 견디지 못하고 그의 내러티브를 새롭게 쓰기 시작했다. ‘선한 영향력’ ‘공익을 추구하는 사업가’라는 그의 영웅적 서사는 폐기됐다. 대신 ‘결국은 그도 특별할 것 없는 장사꾼이었다’라는 인식이 현재 그의 이미지가 머물러 있는 곳이다. 그리고 ‘그때는 옳았지만 지금은 틀리다’는 안티 신드롬이 시작됐다.
자신의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이건 우리 음식이 아니야!”라고 책임을 점주에게 돌리는 그에게 이제 시청자들이 “이건 우리가 알던 백종원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듯하다. 물론 식당의 잘못이 점주 개인만의 잘못으로 돌릴 수 없는 것처럼, 백종원의 현재 상황은 미디어와 대중이 한 덩어리가 되어 우상화했던 오류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방송을 중단하겠다”고 하면서 사업가 백종원의 서사를 새롭게 쓰겠다는 그의 시도는 성공할 수 있을까? 이 서사가 백종원이 자신 내부의 불일치를 극복하고, 대중들은 완벽한 영웅에 대한 환상을 내려놓으며 끝나길 바란다.
이윤정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