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무장 해제된 아침 시간, 조간신문 어느 기업 광고에서 마주친 영희의 눈동자였다. 아, 영희! 어린 시절 그 추억의 영희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다. 참여하실래요? 빚더미를 안고 사느니 차라리 생명 베팅이라도 해서 기회를 찾으라는 유혹이 넘실거리는 세상, 게다가 추억의 영희가 손짓하며 오라는데. 쿵 소리를 내며 마음의 문이 닫혔다. 영희의 눈초리에 걸려들지만 않는다면, 둥글게 둥글게 춤을 추다가 정신만 바짝 차리면 일확천금을 손에 쥘 수 있는데, ‘한번 해봐?’하는 요행심을 물리칠 사람이 얼마나 되랴.
오랜 적대 정치의 끝판 비상계엄
국민을 망국 시나리오에 빠뜨려
조악한 기계로 변신한 정치인들
개헌 폭풍 일으켜 책임 추궁해야
그래, 영희와 손잡고 놀던 그땐 세상이 온통 지뢰밭인 줄 몰랐지. 그런데 어린 시절 그 영희도 영희의 유혹에 못 이겨 참여했을까? 아닐 거야, 아무튼, 나는 그런 세상을 조심스레 잘 걸어왔지… 안도하는데, 이번에는 무책임하다는 목소리가 뒤통수를 갈겼다. 왜? 참여는 자율적 선택이고, 자신이 책임지면 그만인데, 게임에 목숨 건 그 사람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 하면서 겨우 빠져나왔는데 다음 면(面)에서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계엄 관련 헌재 재판 기사였다.
요원, 인원, 의원이 헷갈렸다. 지시를 내린 사람도, 받은 사람도 그건지 아닌지 서로 엇갈렸다. ‘요원을 빼내라’는 소란죄이고, ‘의원을 빼내라’ 하면 내란죄에 해당하니 자꾸 확인할 수밖에. 요원, 인원, 의원이란 단어가 한 달여 대한민국 상공을 맴돌면서 술집 담화와 일상 대화에 내려앉을 거다. 탄핵의 그 누추한 동굴에서 누구도 벗어날 수 없다. 이 난국은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비자율적으로 빠져든 망국의 시나리오다. 차라리 오징어 게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일확천금 희망이 있고 영희의 눈초리에 걸려도 자기 책임이지만, ‘계엄에 참여하실래요?’는 질문이 아니다. 잠결이든 이성의 눈을 번쩍 떴든 상관없이 끌려 들어갔으니 말이다. 오겜 운영 대원이 말한다 - “당신은 계엄에 참여하셨습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적대 정치의 끝판이었다. 그의 독주 스타일이 공격 의욕에 충만한 민주당의 오랏줄을 자초했다. 자업자득이다. 양 진영의 사생결단 공격은 윤 정권만의 일이 아니다. 마치 아이언돔에 날아드는 수천 발 미사일을 요격하는 장면 같았다. 그게 불꽃놀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증오의 미사일은 시민들의 꿈의 화폭인 밤하늘을 들쑤셨다. 운동권 정치인들의 진출이 가시화되었던 노무현 정권 당시는 그러려니 했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너나 할 것 없이 깃발과 경광봉을 흔들어댄다. 좌우파가 서로 맞부딪힌들, 함성을 지르고 경찰과 무한정 대치한들 정치가 나아졌는가? 적대 정치가 더 견고해졌을 뿐이다. 외신들이 그토록 칭송해 마지않던 광장의 함성은 이젠 임계선을 넘어 민주주의를 죽이는 독(毒)이 됐다. 한국 정치는 이미 세계에서 보기 드문 ‘적대 정치’의 진열장, 국민만 괴롭다.
독주와 독선의 연작(連作)이었다. 노무현 정권 이래 지금까지 다섯 차례의 정권은 스스로 개방, 소통, 혁신을 내세웠지만, 폐쇄, 불통, 구태를 답습했다. 그걸 깨겠다고 의연하게 공언했던 정권들은 모두 구차한 변명과 함께 물러갔다. 정권교체는 언제나 피바람을 몰고 왔다. 청산의 정치로 희생된 사람이 부지기수다. 언제부턴가 유행한 ‘적폐 청산’은 현대판 유배형과 다름없었는데 수상한 혐의를 쓴 사람들이 감옥을 메웠다. 수많은 정치인과 인재들이 부정과 비리, 권력남용으로 무대에서 사라졌다.
진보, 보수 중 누가 더 책임이 있는지를 따질 계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기둥을 이토록 처참하게 파괴한 당신들을 단죄하고 멀리 삼수갑산에 귀양보내고 싶다. ‘정치의 사법화’를 즐겨 써먹고도 모자라 ‘사법의 정치화’를 역으로 획책하는 당신들의 음험한 수작이 대한민국을 망가뜨렸다. 탄핵 심판, 이재명 판결, 대선 정국이 겹친 한국의 봄과 여름은 이미 고갈된 정치 역량으론 감당 불가다. 다른 나라 같으면 이런 때에 ‘사회협약’이 출현하는데 한국 정치에는 그런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다시 피바람이 불고 많은 사람이 감옥을 향할 것이다. 정의의 이름으로 말이다. 한국의 정치는 악의에 찬 사람만이 살아남는 조악한 기계, 민주주의 가면을 쓴 전제정과 유사하다.
다짐하건대 개헌(改憲)이 살길이다. 오겜 영희의 유혹을 벗어날 탈출구가 개헌이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개헌 바람이 불었으나 대권 욕망에 묻혔다. 대통령 권한 규제, 국회의 입법 남용 방지, 중선거구제와 책임내각제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원로들이 한결같이 개헌의 절박성을 외치는 이 시국에 국민소환제? 동문서답이다. ‘87년 체제’가 군부독재를 벗어나는 헌법이었다면, 이제는 민주 독재를 막는 권력 견제와 분산형 헌법이어야 한다. 온 국민을 계엄 시국으로 끌고 들어간 여야(與野) 정치인들을 제대로 심판하고 규제하는 국민주권이 보장돼야 한다. ‘개헌에 참여하실래요?’ 영희가 묻는다면 그의 눈초리를 무릅쓰고 필자는 기꺼이 참여할 것이다.
송호근 본사 칼럼니스트, 한림대 도헌학술원 원장·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