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10월 ‘통컵’이란 말이 발표됐다. 국립국어원이 새로 만들어 널리 알렸으니 ‘발표’가 맞다. 그 이전엔 없던 말이었다. ‘텀블러’를 대신할 수 있는 말을 찾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만들어진 시기가 분명한 낱말 가운데 하나가 됐다. 널리 알려지지도, 잘 쓰이지도 않는 건 아쉽다. 다행히도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엔 보인다. “굽과 손잡이가 없고 바닥이 납작한 큰 잔”이라고 풀이돼 있다.
‘통컵’이 ‘우리말샘’에도 오르고 시간도 적잖이 흘렀다. ‘통컵’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통컵’을 팔기도 하는 카페에선 더더욱 ‘텀블러’다. ‘텀블러’는 더 굳건하게 대세가 돼 간다. ‘통컵’은 미약할 따름이다. ‘통컵’을 처음 대했을 때부터 이 말을 애정하게 된 나는 마음이 쓰리다. ‘별다방’이란 별칭까지 갖고 있는 스타벅스 같은 기업들에서 ‘통컵’도 유통시키면 즐겁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면 내 입에도 ‘통컵’이 술술 붙을 것 같다.
말을 다듬는다는 목적으로 많은 말이 만들어졌다. 그중 ‘통컵’은 흔치 않게 직관적이다. 모르는 사람이 ‘텀블러’를 들면 컵인지, 뭔지 모르지만 이 말은 바로 어떤 컵일 것이라는 걸 짐작하게 한다. 통나무처럼 통으로 된 상태고, 무엇을 담는 통이란 이미지를 불러온다. 투박하게 들릴지 몰라도 그래서 정감이 간다. 몇 번 되뇌다 보면 금세 친근감도 생긴다.
화석처럼 돼 가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다. 뉴스의 문장들 속에도 작은 점처럼 어쩌다 박혀 있었다. “텀블러(통컵)에 물을 받아” “경품으로 통컵 3000개를 배부했다”처럼. ‘통컵’이 더 사용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