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이상 외국인 영주권자 대상 시행
수도권 전철 무임승차 누적 손실 53억원
“정책 재검토” VS “제도 단계적 개편”
한국에 들어온 지 올해로 30년 차인 중국인 왕명(65세)씨. 15년 전 영주권을 취득한 왕씨는 외국인 영주권자 대상 우대용 교통카드를 발급받아 수도권 지하철을 일정 구간 무료로 타고 있다. 왕씨는 “서울과 인천의 중국 마사지 가게를 오가며 일하고 있다”며 “지하철 요금을 조금이라도 절약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8년 전 영주권을 획득한 한국계 미국인 제니퍼 박(68세)씨도 우대용 교통카드를 쓰고 있다. 박씨는 “충전식 카드인데 유료 구간에서 돈이 다 떨어지면 나중에 차액을 추가로 내야 해 바쁠 땐 번거롭기도 하다”면서 “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카드와 같이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한 해 수도권 지하철에서 무임승차를 한 외국인 고령층이 8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 고령층의 지하철 무료 이용은 관련 제도가 시행된 지 9년 만에 6배가량 급증했다.
이로 인한 적자도 7배 늘어난 가운데, 외국인 무임승차 기준뿐 아니라 무임승차 제도 자체를 단계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일 세계일보가 수도권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와 서울시메트로9호선, 인천교통공사로부터 받은 ‘2016~2024년 외국인 지하철 무임승차 현황’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외국인 무임승차 인원은 2016년 13만4718명에서 지난해 80만3489명으로 9년 새 6배 수준으로 뛰었다.
이에 따른 손실금도 2016년 1억8261만원에서 지난해 12억1109만원으로 7배 가까이 증가해 누적 손실금만 53억원에 달한다.
수도권에서 외국인 영주권자의 지하철 무임승차가 가능해진 건 10년 전부터다.
2013년 한 화교단체가 “영주권자들이 국민의 4대 의무 중 병역 의무를 제외한 교육·납세·노동 의무를 이행하고 있는데도 서울시민으로서 누려야 할 복지 혜택에서 배제돼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며 서울시 인권센터에 개선을 요구했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은 “외국인 영주권자에게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하철 경로 우대 무임승차 혜택을 배제한 건 국제 규약과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차별 행위”라고 판단했다.
같은 해 외교부도 영주권자 등에 대한 무임 교통카드 발급을 요청하면서 서울시는 2015년 전용 무임카드 발급을 결정했다. 만 65세 이상 영주권자가 대상으로, 외국 국적의 동포는 제외됐다.
무임승차 혜택을 보는 외국인 영주권자 대다수는 중국인으로 추정된다.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연보’와 통계청 ‘이민자 체류실태 및 고용조사’ 등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외국인 영주권자 수는 18만5441명이다.
이 중 한국계 중국인을 포함한 중국 국적 영주권자는 6만7000여명으로 추산된다. 60세 이상 외국인 영주권자가 6만4000여명인 것을 감안하면 고령 영주권자의 상당수가 중국 국적일 가능성이 크다.
향후 외국인 영주권자와 만 65세 인구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여 이들의 지하철 무임승차 이용 역시 증가할 전망이다.
무임승차로 인한 수도권 지하철 적자만 한 해 4000억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연령과 영주권만을 기준으로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같은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서울시의회 이상욱 의원(국민의힘)은 “중국 등 다른 나라는 외국인 고령층에게 아무리 영주권자라도 무조건적으로 무료 승차 혜택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이는 상호주의 원칙에 어긋난 온정주의적 제도”라며 “외국 국적 동포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우리나라는 경제활동을 중심으로 외국인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만 65세 이상 어르신은 경제활동 인구로 보기 어려운 나이”라며 “한국의 외국인 및 이민 정책의 기본 원칙에 맞게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외국인 이주민에 대한 차별은 오히려 사회적 분열만 부추길 수 있다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과거엔 노동 인구 중심으로 단기 이주가 이뤄졌지만, 이젠 외국인 가족이 대한민국 일원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주장이다.
외국인 노인을 포함해 고령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선 결국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 자체의 단계적 개편이 선행돼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영주권자는 한국에서 경제적 기반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간주하고 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시대적인 조류와 한국의 경제 상황을 감안해 외국인이나 결혼 이민자, 이주자 등이 많아지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포용 범위와 제한 기준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외국인 노인을 포함해 국내 노인 인구 증가로 인한 사회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상징적으로 지하철 경로 우대 대상 연령을 높이거나 할인율 적용 등 제도를 단계적으로 조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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