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6년, 전라남도는 2010~16년 포뮬러1(F1) 국제자동차경주대회 유치를 추진하며 “F1 대회는 (동·하계)올림픽, 월드컵 축구대회와 함께 세계 3대 스포츠 이벤트”라고 주장했다. 그보다 1년 앞선 2005년, 대구광역시 역시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유치전에 뛰어들며 비슷한 주장을 펼쳤다. 다만 F1 자리에 세계육상선수권을 대신 넣었던 게 차이다. 급기야 2013년, 광주광역시도 2019년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유치에 나서며 F1이나 세계육상선수권 대신 세계수영선수권을 넣은 같은 주장을 내놨다. 전 세계 중계방송 시청자 수, 총 관중 규모, 경제적 효과 금액 등 어떤 잣대를 갖다 대는지에 따라 답은 달라진다. 다만 이 모든 상황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팩트 하나는 분명해진다. ‘세계 양대 스포츠 이벤트’는 올림픽과 월드컵이다.
올림픽 메달 약속한 축구협회장
남자축구 줄이는 분위기 몰랐나
국제 네트워크 이상없나 손봐야
그렇다면 올림픽과 월드컵 중에서 ‘세계 최고 스포츠 이벤트’를 하나만 꼽는다면. 의견은 다시 분분해질 테다. 올림픽이 다양한 종목을 차린 호텔 뷔페식당이라면, 월드컵은 축구라는 단일 종목으로 승부하는 노포식당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메뉴 중에 겹치는 게 있다. 올림픽 축구. 그렇다면 축구까지 품고 있는 올림픽을 세계 스포츠 이벤트의 지존이라 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여기가 축구를 둘러싼 올림픽과 월드컵의 차별화가 시작된 지점이다. 차별화의 동인은 이들 대회를 주관하는 두 스포츠 단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의 힘겨루기다.
1896년 제1회 아테네올림픽 종목에 축구는 없었다. 테니스가 유일한 구기 종목이었다. 축구가 올림픽에 진입한 건 그다음 대회인 1900년 파리올림픽부터다. 이때도 시범종목이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올림픽이 돼서야 정식종목이 됐다. 1914년 FIFA는 올림픽 축구를 ‘세계아마추어축구선수권대회’라는 명칭으로 승인했고, 13개국이 출전했다. 명칭에서 보듯 프로선수는 출전할 수 없었다. 그 사이 FIFA는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모두 출전하는, ‘세계축구선수권대회’를 창설했다. 그게 월드컵 축구대회다. 제1회 대회가 1930년 우루과이에서 열렸다.
올림픽과 월드컵, 즉 IOC와 FIFA의 전략적 동행이 불협음을 낸 계기는 프로축구 선수의 올림픽 출전이다. 올림픽 상업화와 맞물려 IOC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LA)올림픽부터 프로선수에도 문호를 열었다. 월드컵에 밀린 위상과 인기를 만회하기 위해서다. 이에 FIFA는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선수 나이를 제한했다. 즉 23세 이하(U23) 선수만 올림픽 출전을 허락했다. 17세 이하(U17), 20세 이하(U20) 월드컵 등을 주관하는 FIFA가 ‘올림픽 축구=U23 월드컵’, 즉 연령별 대회 중 하나임을 분명히 한 거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부터 시행한 3명의 와일드카드(23세 이상 선수) 제도는 IOC와 FIFA가 찾은 최소한의 접점이다. FIFA는 이후 24개국이던 월드컵 본선 참가국 수를 32개국(1998년 프랑스), 48개국(2026년 북중미)으로 늘려갔다. 급기야 지난달 FIFA 이사회는 월드컵 창설 100주년인 2030년 월드컵 참가국 수를 64개국으로 늘리는 안을 내놨다.
지난 10일 IOC 집행위원회가 2028년 LA올림픽 세부 종목을 확정했다. 이에 따르면, 올림픽 남자축구 참가국 수는 16개국에서 12개국으로 줄었다. 반면 12개국이던 여자축구는 16개국으로 늘었다. FIFA는 “우리는 항상 여자축구가 지닌 힘을 믿었다. IOC 집행위 결정은 긍정적이다”라며 “풋살과 비치 사커도 올림픽 종목에 포함되도록 협력하겠다”고 환영했다. IOC는 남자축구에 관한 FIFA의 절대 우위를 인정하는 대신, 외연을 넓히는 실리를 선택했다. 그간 여성 또는 혼성 종목 수를 늘리며 ‘성 평등 올림픽’을 강조해온 IOC인 만큼 명분까지 덤으로 챙겼다.
지난 2월, 4연임에 성공한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의 주요 공약 중 하나가 “올림픽 메달 획득”이다. 한국 남자축구는 지난해 U23 아시안컵 축구대회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에 져 파리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메달 획득 공약은 올림픽 본선 9회 연속 진출이 무산된 데 따른 통렬한 반성의 후속 조처다. 시점이 참 공교롭다. IOC와 FIFA가 올림픽 남자축구 출전국 수를 줄일 걸 알면서도 내놓은 공약이라면 그 용기가 대단하다. 반면 저간의 흐름을 몰랐다면 축구협회의 국제 네트워크를 손봐야 한다. 이번 올림픽 세부종목 조정안 초안을 마련한 건 LA올림픽 조정위원회다. 위원 중에 낯익은 이름이 있다. 유승민 대한체육회장. 이를 알려주는 건 앞으로의 대처에 조금이나마 도움될까 싶어서다. 한국 남자축구가 올림픽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