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2.0 시대가 되면서
기후변화와 관련된 일들이
축소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외오염관세법처럼
자국 산업 보호 제도로
우리를 압박하는 것이다
미국의 역내 산업 보호가
오히려 역외 국가들의
환경규제가 될 수 있다
트럼프가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우리가 하던 대로
기후위기 대응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또한 기후테크와 같은
미래 기술 투자·선점으로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이끌 힘을 키워야 한다
요즘 뉴스를 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 한마디가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다. 하루가 멀다고 예측하기 힘든 정책을 쏟아내니 말이다. 오늘은 또 무슨 소리를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난 어릴 때부터 ‘트럼프 카드’ 게임을 좋아해 트럼프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다. 아마 많은 분이 알고 있겠지만 트럼프 카드는 원래 카드 게임에서 특정 슈트나 카드가 가장 우위를 가진다는 개념에서 유래했다. 이후 트럼프라는 단어는 정치, 비즈니스, 일반적인 상황에서 ‘결정적인 강력한 무기’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확장되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적인 관련은 전혀 없지만 지금 그의 행보를 보면 카드 게임의 이름처럼 국제사회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기후 문제도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는 순간부터 전 세계는 기후변화 대응이 후퇴할 것이라는 깊은 우려를 내비쳤다. 아니나 다를까 취임하자 곧바로 파리협정에서 탈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일부에서는 유엔기후변화협약까지 탈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지금까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많은 투자 및 기반시설 구축을 해온 한국의 처지에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그럼,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몇 가지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얘기해 보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은 잊지 못할 기록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취임식은 원래 내셔널몰로 연결되는 의사당 앞 야외무대에서 성대하게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취임식 당일 영하 13도까지 떨어지는 북극발 한파가 예보되면서 급하게 실내 중앙홀로 장소가 변경되었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실내에서 열린 것은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취임식 이후 40년 만이었다고 한다. 안 그래도 기후변화를 싫어하는데 이번 일로 더 싫어하겠는데라고, 속으로 웃은 기억이 있다.
하지만 바로 이게 현실이다. 본인이 아무리 싫어하고 정치적으로 완벽히 다른 견해를 갖더라도 기후변화는 진행 중이다. 그가 어떤 판단을 하고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기후는 바뀌고 있고 인류 피해는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한 점이다. 대통령 결정으로 연방정부의 계획은 바뀔 수 있겠지만 실제 기후변화 피해를 감당해야 할 주정부, 지방자치단체, 시민사회는 기후변화 대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금 당장 탄소 배출을 줄이더라도 올여름 더 강력한 허리케인은 올 것이고 더 뜨거운 폭염이 미국을 덮칠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으로서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정책 유혹으로 기후 리스크에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는 허리케인 한 번으로 기업이 문을 닫게 될 수도 있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후변화는 실존적 위협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미 탄소배출 통제 완화 예상은 착시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트럼프 정부의 큰 특징 중 하나는 환경규제 완화이다. 특히 탄소 배출, 즉 기후변화 유발물질에 대한 통제가 느슨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다른 국가에 치명적인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는 미국의 해외오염관세법(Foreign Pollution Free Act·FPFA)같이 새로 준비 중인 법안의 진행 과정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해외오염관세법은 미국이 수입하는 제품의 생산 과정에서 배출한 오염물질량을 기준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이다. 이는 사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와 유사한 개념으로, 고탄소 배출 제품의 수입을 억제하고 국내 산업의 경쟁력을 보호하며, 글로벌 환경 보호를 촉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 법은 공화당에서 발의했지만, 민주당 또한 국익을 위한 법안으로 인식하고 있어 통과 가능성이 높다. 현재 적용 대상 제품을 알루미늄·시멘트·유리·수소·철·비료·철강 등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지만 아직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오염을 일으키는 물질의 오염집약도(제품 생산 시 발생하는 오염물질 배출량을 가격·판매량 등 특정 기준으로 나눈 값)에 대한 세부 기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입법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사실 미국이 준비 중인 해외오염관세법은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과 자국의 산업 보호를 동시에 고려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매일같이 주장하는 관세장벽처럼 자국의 산업을 중요시하고 있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이 법을 통해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 경제적 부담을 부과해 글로벌 공급망에 친환경 생산 방식을 촉진하는 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된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탄소 감축 노력이 부족한 국가와 기업에 경제적 불이익을 줄 것이기에, 중국·동남아·인도 등 석탄 기반 산업 중심 국가들이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재생에너지 및 청정기술 도입을 가속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나 기업 차원에서 CCUS(탄소 포집 및 저장), DAC(직접 공기 포집), 수소 에너지, 전기차와 배터리 등의 분야에 기술 투자 확대를 고려할 가능성 또한 커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장기적으로 해당 국가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이바지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나아가 미국의 해외오염관세법이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와 함께 글로벌 탄소가격 책정(carbon pricing) 시스템 구축을 촉진하는 효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국가의 산업을 우선시하는 정책이기에 글로벌 측면에서 긍정적인 면만 있지는 않다. 미국의 경우 해외에서 수입되는 고탄소 제품(철강·시멘트·비료·유리 등)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에 역내 저탄소 제조업이 가격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지금 트럼프 정부에서 폐기하려 하는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대체해 미국 내 친환경 기술 개발 및 일자리 창출에 이바지할 것이라 본다. 이에 반해 미국과 거래를 진행 중인 글로벌 공급망의 국가들은 상당한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중국·인도·동남아 등 신흥국에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업들은 당장 탄소를 줄일 수 있는 인프라가 없기에 비관세 장벽을 통한 무역 불균형이 발생할 수 있다.
한국,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해야
결국 탄소집약적 산업 비중이 높은 대미 수출국은 강하게 반발하며 국제 경제 질서에 추가적인 갈등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진행 중인 트럼프의 관세 인상에 중국이 미국 제품에 대한 보복관세를 발표했듯이 해외오염관세법이 시행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마지막으로 우려되는 점은 탄소세를 산정하는 배출량의 측정 기준이다. 측정 기준이 모호하거나, 특정 국가 또는 기업에 유리하게 설정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미국이 자국산 제품과 수입품의 탄소 배출 기준을 다르게 적용할 때 환경을 보호하려는 목적보다 자국 산업 보호 목적이 크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2.0 시대가 되면서 많은 변화가 예고된다. 앞서 얘기했듯이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이 축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기후공시 또한 중단될 위기에 처해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와 관련된 각종 규제도 완화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외오염관세법처럼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제도가 등장해 우리를 압박해 올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인지해야 한다. 미국이 역내 산업 보호를 위해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역외 국가들의 환경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트럼프가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우리가 하던 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현실적인 전략을 수립해 나가야 한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위기를 실존적 위협으로 인지하고 멈추지 말고 가야 한다. 공시의 유무와 상관없이 기업의 물리적 리스크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경제적 이익을 좇는 집단에서는 투자금에 대한 안전성 강화를 위한 다른 제도를 꺼내 들 수밖에 없다. 이름만 바꾸는 것이다. 정부는 탄소중립 정책을 더욱 강하게 이끌어야 하며 유럽·일본·중국 등 글로벌 공급망 다각화를 유도해 각종 규제에 대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이 잠깐 멈춘 시간에 기후테크와 같은 미래 기술 투자 및 선점을 통해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이끌기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바뀌어 가는 지구 환경 변화의 바람에 돛을 달고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는 미래라는 더 큰 바다로 나아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