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와 ‘사라진 나비’

2025-03-10

지난주는 온통 트럼프, 트럼프, 트럼프로 가득 찬 나날이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모욕에 가까운 면박을 주며 백악관 밖으로 내쫓더니,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우방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더니 “관세가 (미국의) 4배”라며 돌연 한국으로 화살을 돌렸다. 자고 일어나면 밤새 트럼프가 터트린 ‘폭탄’이 수습해야 할 잔해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나비’였다. 웬 나비? 그렇다. 날개부터 몸통까지 새하얀 빛을 띤, ‘웨스트 버지니아 화이트’라는 우아한 이름을 가진 나비. 트럼프가 만든 혼란 속에서 이 나비의 사진을 보았을 때, 마음이 환해지는 걸 느꼈다.

그다지 밝은 소식은 아니었다. 미국에 사는 이 나비는 20년간 개체 수가 98%나 줄었다. 사이언스지에 수록된 뉴욕 빙엄턴대 연구자들의 논문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의 나비 개체 수가 5분의 1 이상 줄어들었다. 기후변화, 서식지 파괴, 살충제 사용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도대체 나비와 트럼프가 무슨 상관인가? 나비의 날갯짓이 예상치 못한 파급력을 가져온다는 ‘나비효과’에 빗대기에 트럼프가 벌이는 짓은 작고 가볍지 않다. 차라리 용이 내뿜는 화염에 가깝다. 하지만 초강대국의 대통령 트럼프가 가져올 효과 가운데 20~30년 후 나비의 멸종과 같은 결과를 부를 만한 것도 분명 있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파리협정을 두 번째로 탈퇴했다. 이런 행보는 시대 역행적일 뿐 아니라 ‘지구 역행적’이다. 유엔이 폭염과 혹한 등 기상이변이 폭증하는 임계점인 지구 온도 ‘1.5도 상승’까지 20년도 안 남았다고 경고한 가운데, 기후위기를 부정하고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미래와 환경을 고려하지 않는 트럼프의 행보는 전 지구적 악영향을 끼친다.

‘녹색 정책’에 가장 앞서가던 유럽연합(EU)이 후진 기어를 넣기 시작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이 규제 완화에 속도를 낸 가운데, 유럽 기업 지원을 위해 미국에 보폭을 맞춘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기업의 사회적·환경적 영향에 대해 보고토록 한 ‘지속 가능성 보고 지침(CSRD)’ 적용 대상을 대폭 줄였다. 약 5만개로 추정되던 적용 대상 기업의 80%에 의무를 면제했다.

자동차 탄소배출 규제도 완화하고 나섰다. EU는 올해부터 이산화탄소 배출 상한선을 2021년 대비 15% 낮추고 이를 어길 시 g당 95유로의 과징금을 매길 계획이었지만, 시행을 3년간 유예했다.

규제 완화가 다가 아니다. 미국이 러시아와 밀착하며 80년간 지속된 유럽과의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일으키면서, 유럽은 ‘안보 홀로서기’를 위해 방위비 증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EU 정상들은 방위비 증액을 위해 8000억유로(약 1259조원)의 자금 동원 방안에 합의했다.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무총장은 “러시아군이 진군하는 동안 미국이 지켜보고만 있다면, 녹색 전환에 대한 자금 지원은 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기를 사는 데 돈을 쓸 것이냐, 미래를 위해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돈을 쓸 것이냐? 트럼프가 만든 관세전쟁·안보 위기 앞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일이 됐다. 이것이 트럼프가 끼친 장기적으로 가장 큰 해악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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