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대학포럼] 〈197〉문턱사회의 그림자

2024-11-20

동화책 속의 많은 이야기는 역경을 이겨내고 사랑하는 공주나 왕자와 결혼한 주인공이 이후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행복한 마무리를 읽는 우리 역시 행복감으로 책을 덮곤 한다. 현실도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어렵고 힘들었던 일을 이겨내고 원하던 목표를 달성한 이후의 이야기도 동화처럼 행복하게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안다. 하나의 역경을 이겨내고 원하던 목표를 달성해도 그 이후 또 다른 역경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마도 동화책 속의 공주나 왕자도 행복하게 결혼했지만, 그 이후 또 다른 현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단지 이야기가 거기서 끝났을 뿐.

수능시험이 끝났으니까 조만간 합격자 발표가 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와 학원가에는 우리 학교 또는 우리 학원에 다녔던 누구누구가 어디에 합격했는지 현수막이 붙을 것이다. 그런데 궁금하지 않은가. 그렇게 떠들썩하게 대학에 갔는데 이후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졸업은 했는지, 졸업 후 진로는 어떻게 됐는지 등에 대해서는 알려지는 게 거의 없다. 소식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대학 입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부문에서 문턱을 넘는 데만 집중하는 '문턱사회'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어느 학교에 합격하고, 어느 회사에 합격하고, 외국 유수의 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고 등 수많은 문턱넘기가 조명되지만, 그 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다들 관심이 없다. 마치 동화 속 공주와 왕자 이야기처럼. 그러다 보니, 다들 합격하고 문턱을 넘는 데만 전력을 다한다.

합격이라는 문턱을 넘은 이후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지도 않고 준비도 하지 않는다. 문턱을 넘는 데 이미 너무 많은 기력을 쓴 탓에 지쳐서 앞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거나 위로 더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준비나 대비가 안 돼 방황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올해도 어김없이 몇 년 전 외국의 유명대학에 진학했다며 주위를 떠들썩하게 했던 학생이 은근슬쩍 국내로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유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제적을 당해 국내로 돌아오는 학생들을 보통 '리터니'(returnee)라고 한다. 합격이라는 문턱을 넘는 데만 집중했을 뿐, 문턱을 넘은 이후에 대해서는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벌어지는 일이다. 국내 모 유명기업에 합격했다며 주위의 부러움을 샀던 지인의 자녀도 3년 만에 퇴사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문턱사회의 가장 큰 그림자이자 폐해는, 동화책 속의 이야기들처럼 행복한 마무리만 고민할 뿐, 그 이후에 대해 준비를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고등학생에게는 대학교 합격이 최우선이고, 취업준비생에게는 취업에 성공하는 것이 최우선일 뿐이다. 합격한 이후 어떻게 수업을 따라갈지, 취업에 성공한 후 어떻게 일을 해나갈지에 대한 준비가 거의 없다. 우수한 학생을 선발한 줄 알았던 대학은 수업을 못 따라오는 학생들로 골치를 앓고 있고, 능력이 뛰어난 줄 알고 뽑았던 신입직원은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우리 사회 대부분이 문턱사회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학교 합격하면 그만이고, 취업에 성공하면 그만이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그만이고, 정규직이 되면 그만이고, 학위를 받으면 그만인 사회. 문턱을 넘은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도 고민도 별로 하지 않는 사회. 이제는 문턱을 넘는 것에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 문턱을 넘은 이후의 과정에 더 높은 가중치를 두고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때 반짝했다가 사라지거나 평범해진 천재를 보는 것만큼 흔한 일도 없다는 말이 지나가는 말로 들리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영재나 천재가 가진 능력을 문턱을 넘는 데 다 사용하게 만들어 정말로 능력을 보여야 할 순간에 평범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곰곰이 고민해볼 때다.

김윤식 경상국립대학교 교수 yunshik@g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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