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활약하다 지난해 국내 한화 이글스로 돌아온 ‘괴물 투수’ 류현진은 복귀와 동시에 한국프로야구(KBO) ‘1000만 관중’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KBO리그 통산 33번째로 100승 고지에 올랐고 28경기에서 10승 8패 평균자책점 3.87을 남겼다. 여전히 현역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면서도 2023년 9월 자신의 이름을 딴 류현진재단을 출범했다. 2022년과 2023년 소아암 환자를 위해 2년 연속 1억 원을 쾌척하는 등 그동안 ‘개인 자격’으로 기부를 해오다 좀 더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활동을 펼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강원 횡성 벨라45CC에서 열린 류현진재단 자선골프 대회는 재단의 활동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린 첫 번째 행사였다. 유소년 야구 꿈나무 육성과 희귀난치병 환아 지원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골프 대회에는 스포츠 스타, 기업인, 연예인 등 약 80명이 참가해 온정을 나눴다. 대회는 모 스포츠채널을 통해 녹화 중계됐으며 유튜브 채널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평소 취미로 즐기던 골프를 매개로 재단의 자선활동을 적극 홍보하고 대중의 관심도 끌어 모은 것이다. 앞서 류현진은 2013년과 2014년에도 자선골프 대회를 두 차례 연 적이 있을 만큼 일찍부터 골프에 애정을 보였다.
류현진이 꿈꾸는 2025년 새해 희망과 그가 생각하는 골프에 대해 들어봤다.
지난해 메이저리그에서 KBO로 돌아왔다. 되돌아본다면.
“한 해가 너무 빠르게 지나갔다. 돌아오면서 기대했던 것만큼의 개인이나 팀 성적이 나오진 않았다. 야구 선수에게는 개인 성적보다는 팀 성적이 우선인데, 그런 점에서 한화가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줄곧 바라왔던 대로 건강한 몸으로 국내에 복귀했고 개인 통산 100승을 돌파했다는 점에서는 충분히 만족한 해였다.”
아무래도 새해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은데.
“한화가 가을야구에 가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걸 달성한 후 다음 스텝을 밟겠다. 또한 지난 시즌처럼 부상 없이 선발로 등판했으면 한다. 30경기 등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단에서는 투수 엄상백과 내야수 심우준을 영입해 전략을 보강했다. 새로 지은 대전구장에서 맞는 첫 시즌이기도 하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
한미 통산 186승(한국 108승, 미국 78승)으로 200승에는 14승만 남겨두고 있다.
“당연히 기대된다. 긴장되는 순간일 것 같다. 개인 200승이라는 건 프로야구에서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선발로서 묵묵히 서 왔던 시간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하고 있고, 올해 달성한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연말이나 새해를 맞이하면서 항상 빼놓지 않는 나만의 루틴이 있나.
“특별한 건 없다. 크리스마스를 항상 가족과 지내는 정도다. 매년 11월 말부터는 한 해를 되돌아보고 다음 시즌 목표를 세우면서 그에 맞는 개인 훈련을 시작한다.”
“새해 목표는 한화의 가을야구 진출과 통산 200승 달성”
지난해 대선배로서 후배들 챙겨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100승 달성 후 후배들에게 소고기를 사준 것도 많이 이슈가 됐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선배들의 그런 모습을 봐왔다. 지금은 고참인 내가 당연히 후배들을 위해서 그런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일단은 선수들이 잘 따라주기 때문에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다.”
평소 후배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인가, 아니면 고민을 들어주는 편인가.
“잔소리는 아직 별로 해본 적이 없다. 더구나 지난해에는 돌아온 지 얼마 안 되니까 좀 지켜본 면도 없지 않다. 2025년부터는 조금씩 잔소리도 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어떤 부분에 대해 많은 말을 할 것 같나.
“팀이 가을야구에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다. 시즌 중에 팀 성적을 위해 필요하다면 후배들에게도 쓴 소리도 하고, 서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할 예정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후배는 누구인가.
“애착이 가는 후배라는 표현보다는 친한 후배가 좀 더 맞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투수들과 가깝게 지낸다. 특히 문동주랑 자주 시간을 보내고 많은 이야기를 한다.”
한화의 한국시리즈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은 1999년이다. 언제쯤 다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것 같나.
“앞서 말한 것처럼 일단 가을야구에 합류하는 게 우선이다. 우승은 모든 구단과 선수들이 원하는 타이틀이지만 일단 가을야구에 가야 한다. 그런 후 한 단계 한 단계씩 다음 목표를 설정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상을 수상했다. 좀 의미가 있거나 기억에 남는 상은 어떤 게 있을까.
“2006년 KBO에 데뷔하고 그해 신인상과 MVP(최우수선수상)를 받았을 때다. 뭐든 처음이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2024년 봄에 메이저리그 경기가 서울에서 열렸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은데.
“LA 다저스 선수들을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 특히 한국에서 보니 느낌이 새로웠다. 고척돔 시설도 훌륭했는데 옛 동료들 앞에서 우리나라의 야구가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뿌듯했다.”
류현진은 지난해 3월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경기가 열렸을 당시 대전의 유명 제과점 성심당의 빵을 선물로 들고 나타나 화제가 됐다. 류현진과 4년간 한솥밭을 먹었던 LA 다저스의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류현진이 건넨 빵을 먹은 뒤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는 등 감동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여전히 MLB 선수들과 가끔 연락을 주고받고 있나.
“자주는 아니지만 토론토에서 뛰고 있는 저스틴 터너나 알렉 마노아 등과 종종 연락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다.”
커터, 슬라이더, 속구 등 다양한 구종을 가졌다. 위기 상황에서 가장 자신 있게 던지는 무기는 뭔가.
“상대 선수에 따라, 내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예전에는 체인지업이 내 무기라고 이야기했지만 지금은 체인지업이 잘 긁히지(‘긁힌다’는 공의 변화가 크고 제구가 잘될 때 쓰는 표현) 않을 때가 있다.”
류현진 하면 ‘강철 멘탈’이 떠오른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정신력은 어디서 나오나.
“위기 상황이라고 해서 특별히 달라지는 건 없다. 마운드에서는 늘 하던 대로 하려고 한다. 그런 점이 강한 멘탈의 비결이 아닐까 싶다. 무사 만루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냥 추가 실점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하고 던진다.”
주변에서는 하룻밤 사이 커터나 체인지업을 배웠다고 할 정도로 손가락 감각이 뛰어나다고 평가한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야구 천재인가, 노력파인가.
“천재는 절대 아니다. 노력을 많이 한다. 사실 난 손가락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짧은 편이다. 투수에게는 짧은 손가락은 단점이 될 수 있는데, 나에게 맞는 그립을 잘 활용하는 것 같다.”
등번호 99번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있다. 본인은 어떤 의미를 두고 있나.
“한화 이글스에 입단할 당시에는 15번이었다가 구대성 선배가 팀에 복귀하는 바람에 그 번호를 다시 드리고 난 99번을 선택했다. 남은 등번호 중에 맘에 드는 번호가 없었는데, 그 와중에 99번은 괜찮은 것 같아서 선택한 거다.”
야구를 하면서 항상 지켜온 나만의 습관이 있다면.
“아무래도 등판할 때 신경을 쓴다. 경기 전날은 9시간 정도는 충분히 자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까지 밝히긴 그렇지만 등판 전날 취침시간부터 등판하는 날 출근 시간, 훈련 시간 등을 정확하게 체크해서 진행한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벌이는 나만의 작은 의식인 셈이다.”
다저스 시절 선발 등판 때 감자탕을 자주 먹었다. 지금 최애 음식은 뭔가.
“여전히 감자탕을 좋아한다. 감자탕을 먹었을 때 경기가 잘 풀려서 하나의 루틴이 되었던 거다. 지금은 경기와 상관없이 감자탕을 자주 먹는다.”
맘먹고 삼겹살을 먹는다면 얼마나 먹을 수 있을 것 같나.
“난 생각보다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밥도 딱 한 공기, 고기를 몇 인분까지 먹었는지 정확히 따져보지는 않은 것 같다.”
“가정을 가진 후 아이들을 대하는 게 달라졌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내가 재단을 만든 이유다”
야구를 하면서 부상 등 위기도 있었다.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선 원동력은 뭐였나.
“내가 해야만 하는 게 뭘까 생각했다. 다시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마인드가 힘든 재활에 도움이 된 것 같다.”
야구 외에 가장 큰 관심사는 뭔가.
“재단을 통해 많은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픈 아이들에게도 힘을 주고 싶다.”
류현진재단은 지난해 5월에도 희귀난치병 환아 10명에게 장학금 총 1억 원을 전달했다. 류현진은 2023년까지는 소아암 치료비 명목으로만 기부를 하다 희귀난치병 아이들이 평생 병마와 싸운다는 걸 알게 된 후 기부를 결정했다. 류현진은 당시 “장기적인 치료와 입원으로 인해 학업이 단절되는 경우도 있다. 언어, 인지, 심리 등 특수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게 됐다”며 “희귀난치병 아이들을 위한 장학금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꾸준히 도움을 줄 수 있는 장학사업으로 매년 진행될 예정이다”라고 했다.
현재 유소년 야구계를 봤을 때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나.
“가장 중요한 건 야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거다. 그들이 마음껏 공을 던지고 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앞으로 우리 재단이 해야 할 일이다.”
2018년 결혼 후 1남1녀를 뒀다. 가정을 꾸린 후 가장 크게 변한 게 있다면.
“심리적인 안정감, 이런 것도 있겠지만 아이들을 대하는 게 달라진 것 같다. 아픈 아이들에게 특히 더 관심이 가고 도움을 주고 싶다. 내가 재단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자녀를 위해 이것만큼은 꼭 해주는 게 있다면.
“두 아이 모두 책을 읽어 주면서 재우는데, 큰 딸아이는 내가 재운다. 책 3권쯤 읽어주면 스르륵 잠든다. 쉴 때도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집에서 아내나 아이들을 위해 가끔 요리나 집안일을 하나.
“시즌 중에는 쉽지 않지만 비시즌에는 많이 도와주려고 한다. 육아뿐만 아니라 가끔 청소나 빨래도 도와준다.”
가장 잘 하는 요리가 있다면.
“고기 굽기와 라면! 집에서나 후배들과의 식사에서나 고기는 항상 내가 굽는다.”
아내와는 가끔 골프를 하나. 누구 실력이 더 좋나.
“아내는 골프장보다는 연습장에서 연습을 좀 더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웃음) 아마추어는 기본이 잘 잡혀 있어야 한다.”
손가락 감각을 타고 났다고 하는데 그런 재능이 골프를 배우는 과정에서도 도움이 됐나.
“전혀! 야구와 골프는 너무 다르다. 골프는 너무 어려운 운동이다.”
골프를 치면서 99타를 친 적도 많을 텐데, 등번호 99와 연결이 되나.
“아니다. 전혀 연결 안 된다. 그냥 그것보다 잘 치고 싶을 뿐이다.(웃음)”
“퍼팅과 장타 중 하나만 고른다면 퍼팅…티샷 때는 여전히 떨려”
지금은 어느 정도 실력인가.
“그날그날 컨디션에 따라 너무 다른 스코어를 가진 아마추어 골퍼일 뿐이다. 잘 칠 때는 80대 초반 정도 치지만 못 칠 때는 엄청 못 친다. 중간이 없다. 야구 선수들은 시즌 중에는 골프를 거의 못 치고 비시즌에만 치는 ‘겨울골퍼’이기 때문이다. 1년 중 6~7개월은 골프채를 못 잡는다. 계속 연습하고 실전 라운드도 해야 실력도 나아질 텐데 겨울에만 치니까 매년 비슷한 자리를 맴돈다. 야구 시즌 끝나고 처음 골프채를 잡을 때는 90타를 치다가 야구 시즌이 시작될 때쯤엔 80타를 친다.”
베스트 스코어는.
“80타 밑으로는 한 번도 못 내려갔다. 80타는 30번 정도 쳐봤다.(웃음)”
골프의 신이 장타와 퍼팅 능력 중 하나만 준다면.
“당연히 퍼팅이다. 장타는 아무 소용없다.”
드라이버 샷 비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드라이버를 일단 살기 위해 좀 살살 때린다. 대략 240m 정도 나가는 것 같다. 근데 공이 정확하게 갈 때보다 다른 홀로 갈 때 더 멀리 나가는 것 같더라.(웃음)”
야구에서는 최강 멘탈인데, 골프 칠 때는 어떤가.
“티샷 할 때는 여전히 긴장되고 떨린다. 야구보다 어렵다.”
투수 출신 중 박찬호와 선동열의 골프실력이 뛰어나고, 윤석민은 프로가 됐다. 은퇴 후 골프에 전념하고 싶은 생각이 있나.
“전혀 없다. 난 야구 쪽으로 뭔가 계속 발전시키고 싶다. 아무래도 내가 잘 할 수 있는 부분이 야구이기 때문이다. 골프는 그냥 취미로만 즐기려고 한다.”
야구 선수들을 보면 투수 출신들이 타자에 비해 골프 고수가 많다. 왜 그런 것 같나.
“아무래도 타자들은 타격 폼을 망가트리지 않으면서 스윙을 하려다 보니 투수에 비해 스윙을 확실하게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투수들은 편하게 스윙하다 보니 잘 치지 않나 싶다. 근데 살아 있는 공을 치던 타자들은 가만히 죽어 있는 공을 못 치면 엄청 속상해 한다.(웃음)”
이와 관련해 골프 고수인 박찬호도 나름의 분석을 한 적이 있다. 박찬호는 “투수들은 한 발을 축으로 공을 던지는데 골프 스윙도 이와 비슷하다. 그래서 투수들이 좀 더 골프에 유리한 것 같다”며 “투수들은 또한 손끝 감각이 발달해 있는데 이 역시 골프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야구 선수 중에서는 누가 골프 최고수로 알고 있나.
“야구계의 어마 무시한 소문으로는 SSG 랜더스 투수 노경은 선수가 가장 잘 친다는 얘기를 들었다. 현역 선수 중에서는 아마 1등 아닐까 싶다.”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그려본 적이 있나.
“생각 안 해봤다. 아직 선수로서 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 때문에 지금은 선수의 삶에 대해서만 생각하려고 한다. 제2의 인생은 닥치면 그때 생각할 예정이다.”
10년 후 류현진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음, ‘열심히 살고 있지?’, ‘잘 하고 있지?’ 이 정도 아닐까.”
자선골프 대회는 계속 이어나갈 계획인가.
“당연하다. 2회, 3회, 4회, 10회 계속해서 꾸려나갈 거다. 나의 작은 자선활동이 선한 영향력이 돼 더 크게 뻗어나갔으면 한다.”
PROFILE
출생: 1987년 | 프로 데뷔: 2006년 | 소속: 한화 이글스
주요 경력: KBO 108승, MLB 78승,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
2024년~ 한화 이글스
2020~2023년 토론토 블루제이스
2013~2019년 LA 다저스
2006~2012년 한화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