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채의 센스메이킹] 〈80〉딥시크가 던진 질문, 기술과 정치는 분리될 수 있는가

2025-02-12

'정치 얘기는 좀….'

딥시크(DeepSeek)의 공개 이후, 인공지능(AI) 관련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던 한 단체 채팅방에서 확인된 메시지였다. 보안과 데이터 수집 우려, 중국 공산당(CCP)과의 연관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자 일부 사용자들은 대화를 회피하려는 듯 이같이 반응했다. 지난주 28일, 트럼프 미 대통령은 딥시크의 릴리즈에 대해 '미국이 주도하던 AI 산업에게 명백한 'Wakeup Call(경각심을 주는 신호)'이라며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부 분석가들은 이를 두고 수익 중심의 기술 경쟁에서의 위기의식과 혁신 우선을 잊은 업계를 향한 자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해석했다.

그렇다면 질문이 남는다. 왜 미국 대통령이 특정 AI 모델에 대해 직접 언급까지 했을까? 기술 발전을 논할 때 정치적 맥락은 정말 제외할 수 있는가?

AI 기술은 단순한 산업적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안보·경제력·외교적 영향력을 좌우하는 전략적 자산이다. 예를 들어, 미 국방부의 프로젝트 메이븐(Project Maven)은 드론 영상을 통해 적의 위치를 자동으로 식별하는 기술을 제안했다. 다른 국가들도 AI를 활용한 감시 및 방어 시스템을 강화하고 있다. 또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필요로 하며, 각국은 이를 보호하고 통제하기 위해 데이터 주권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일반 개인정보 보호법(GDPR)을 통해 글로벌 기업들이 유럽 내 데이터를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사이버보안법을 통해 데이터 반출을 제한 중에 있다. 데이터는 이제 전략적 자원으로 자리 잡았으며, 이를 통제하는 국가가 기술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

무엇보다 AI 모델의 성능은 고성능 반도체 칩과 대규모 전력에 의존한다. 미국은 반도체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첨단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며 AI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려 하고 있다. AI 발전이 가속화될수록 에너지 자원 관리와 전력 공급망이 더욱 중요해진다. 다시 말해 AI는 산업 자동화, 금융, 의료,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며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국가 간 기술 패권 경쟁은 경제적, 정치적 주도권을 결정짓는 요소임을 뜻한다.

영국의 작가이자 기술 철학자 톰 채트필드(Tom Chatfield)는 그의 저서 'Wise Animals: How Technology Has Made Us What We Are'를 통해 기술이 인간의 사고, 행동, 그리고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키는 요소라 주장한다. 기술은 데이터 통제와 주권이라는 국가 전략에 깊이 관여하며, 정치적 의사결정에 따라 기술의 발전 방향이 크게 달라진다. 그는 인간이 기술을 통해 동반 진화(co-evolution)하며 새로운 존재 방식과 행동 체계를 형성한다고 설명하며, 이 변화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술은 우리의 미래 가능성을 열거나 닫는 문이라는 점에서 기술 발전에 대한 정치적 논의가 반드시 수반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고 지각하는지가 중요하게 다뤄지는 현상학과 실존주의에 천착했던 메를로-퐁티는 인간이 몸(embodiment)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며, 이 인식이 사회적 맥락과 구조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정치 역시 단순히 외부에서 작용하는 힘이 아니라, 삶의 지각과 의미 형성에 깊이 관여하는 현실적 요소다. 정치적 결정은 우리의 세계 경험을 재구성하며, 특정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만든다. 딥시크의 사례에서 사용자들이 정치적 논의에 불편함을 느끼고 회피하는 현상은 단순한 의견 충돌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AI 기술이 개인의 삶과 정체성을 재구성하거나 위협하는 방식으로 지각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따라서 우리는 단순히 기술의 기능적 발전만이 아니라, 그 기술이 어떤 사회적 경험과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정치적 논의는 기술 발전과 분리될 수 없으며,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 과정이다. 더 나은 미래는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손병채 ROC(Reason of creativity) 대표 ryan@reasonofcreativit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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