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재는 모방하고 무역에선 아픈 곳만 골라 때린다. 미국과 통상 전쟁 중인 중국의 전략이다. 2018년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전쟁을 시작한 이후 벌인 미국의 제재와 무역 위협 방식을 중국이 고스란히 흡수해 맞대응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현지시간) AP통신은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미국에 반격하기 위해 미국의 전술서(playbook)를 빌려왔다”며 “미국의 제재 방식을 정교하게 모방해 그대로 미국에 적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희토류가 대표적이다. 중국은 지난 9일 중국 이외 지역에서 자국산 희토류를 0.1%라도 사용해 영구자석 등을 제조할 경우 정부의 수출 승인을 받도록 했다. 희토류 채굴 및 제련, 자석 제조, 2차 자원 재활용 기술을 활용해도 허가가 필요하다.

미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규제대로라면 한국 스마트폰 제조사가 중국산 희토류가 포함된 제품을 호주에 수출하려면 중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글로벌 기술 공급망 전반에 중국이 통제권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제재는 사실 미국의 ‘외국 직접 생산 규정(Foreign Direct Product Rule)’을 차용한 것이다. 미국은 지난 수십년간 외국 기업이 미국산 장비와 기술을 사용해 만든 제3국 제품까지 통제해 중국 등을 제재해왔다. 바이든 행정부가 미국산 반도체 장비와 기술에 대해 벌인 대중 제재가 대표적이다.
닐 토마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연구원은 “중국은 최고로부터 배우고 있다”며 “중국은 미국의 조치가 자신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제약하는지 경험한 뒤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의 ‘벤치마킹’은 처음이 아니다. 2020년 중국 상무부가 시작한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목록(Unreliable Entity List)’은 미국 상무부의 ‘수출 통제 목록(Entity List)’을 본뜬 것이다. 중국은 이를 통해 특정 외국 기업의 중국 내 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2021년에 제정된 ‘반(反)외국 제재법’은 중국 외교부나 정부 기관이 비우호적인 개인·기업의 비자를 취소하고 자산을 동결할 수 있게 했다. 미 국무부·재무부가 벌이는 제재와 유사하다. 당시 중국 관영 매체들은 이 법을 “외국의 제재와 간섭에 맞서 적의 방법으로 적을 치는 것”으로 평가했다.
중국의 이런 기조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국의 관세 위협 이후 더 활발해지고 있다. 2월 미국이 중국에 10%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은 즉시 미국의 캘빈 클라인과 토미 힐피거를 보유한 PVH 그룹, 생명공학 기업 일루미나 등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리고, 중국 관련 수입·수출 및 투자를 금지했다. 3월엔 미국 10% 추가 관세에 맞서, 중국이 미국 항공우주ㆍ방산기업 15곳을 수출통제 리스트에 올렸다.

무역 거래에선 미국이 취약한 곳을 ‘원점 타격’ 중이다. 중국 세관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달 1280만t의 대두를 수입하며 9월 최대 수입량을 경신했다. 하지만 이전까지 최대 수입원이던 미국산 대두는 지난 5월 이후 4달째 중단 중이다. 미국의 빈자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로 대체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압박해 온 러시아산 원유 불매 요구에도 중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지난달 중국은 러시아로부터 829만t의 원유를 수입했다.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17.5%로 1위다. 쉬톈천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러시아산 원유 수입 증가는 미국과 회담을 앞둔 중국의 ‘저항적 행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맞불 작전이 마냥 유리하지만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제레미 다움 예일대 폴 차이 중국센터 선임연구원은 AP에 “미국과 중국 모두 ‘국가 안보에 대한 포괄적 관점’을 채택해 (경제 등에서) 서로를 제한하고 있다”며 “표면적으론 공평해 보이지만, 하향 경쟁에선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