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돈 달라고? 너무 나간 트럼프 정부

2025-04-16

마흔한 살의 부동산 사업가 도널드 트럼프는 1987년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보스턴글로브에 자비로 전면 광고를 실었다. 제목은 ‘미국이 자국을 방어할 능력 있는 국가들을 방어하기 위한 지불을 중단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공개서한’이었다.

이듬해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윈프리는 이 광고를 언급하면서 트럼프에게 “미국 외교 정책을 비판했는데, 당신 같으면 무엇을 다르게 할 건가”라고 물었다. 트럼프는 속사포처럼 답했다.

“미국 덕분에 세계는 평화와 번영”

이젠 각국이 비용 지불해야 주장

과연 미국은 손해만 봤는지 의문

“적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대화하지 않으니. 문제는 동맹이다. 동맹이 적정한 몫을 지불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일본에 가서 물건을 팔려고 해보라.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들은 여기 와서 자동차를 팔고, VCR을 팔고, 우리 기업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 나라를 두드려 패고 있다. 이건 자유무역이 아니다. 쿠웨이트에서는 가장 가난한 사람이 왕처럼 산다. 그런데 우리한테 돈을 안 준다. 우리 덕에 석유를 파는데, 왜 이익의 25%를 안 주냐.”

“대선에 출마할 거냐”는 윈프리 질문에 트럼프는 “아마도 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잠시 뒤 “우리나라가 계속 갈취당하면 출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을 것”이라며 “나는 출마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했다.

이날 뱉은 말을 트럼프는 이미 이뤘거나 이루려 하고 있다. 갈취, 동맹, 적정한 몫. 트럼프 세계관을 보여주는 세 키워드는 40년쯤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취임하자마자 동맹을 포함한 세계 대부분 국가를 상대로 보편·상호·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게 대표적이다.

세 키워드로 트럼프 2기 무역정책을 유려하게 설명하는 참모가 있다. 스티븐 마이런(41) 백악관 경제자문 위원장이다.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코노미스트다. 지난해 트럼프 당선 직후 내놓은 ‘국제 무역 체계 재구성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 보고서에서 1985년 프라자 합의와 같은 일명 ‘마러라고 합의’를 통해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해소하고 제조업 유턴을 도모하자고 제안하면서 유명해졌다.

마이런은 허드슨연구소 연설에서 미국이 ‘안보 우산’과 ‘준비자산’이라는 공공재를 제공한 덕분에 세계 평화와 경제 번영이 가능했다고 규정했다. 두 공공재를 운영하는 비용이 큰데 지금까지는 미국인의 희생으로 감당했지만, 앞으로는 외국 정부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들이 무임승차해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안 미국은 무역적자, 강(强)달러로 인해 제조업이 몰락하고 중산층이 무너졌다고 주장했다. 공공재를 계속 사용하려면 이제라도 미국의 짐을 나눠서 져야 한다고 했다.

마이런은 노골적인 ‘답안지’를 내놨다. 외국 정부가 미국의 부담을 분담할 수 있는 5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첫째, 미국 관세에 보복하지 말고 받아들여서 미국이 공공재를 운영할 수 있도록 재무부에 세수를 공급할 수 있다. 둘째,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해 불공정하고 해로운 무역 관행을 멈출 수 있다. 셋째, 미국산 제품을 더 많이 구매해 방위비 지출과 조달을 늘려 미군의 부담을 덜어주고 미국에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넷째, 미국에 투자하고 공장을 지을 수 있다. 미국에서 생산하면 관세를 맞지 않는다. 다섯째, 그냥 재무부에 수표를 써서 보내면 글로벌 공공재 운영자금 조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수표는 미국인들이 현금처럼 쓰는 지불 수단이다. 추가 설명은 없었지만, 이유 불문하고 그냥 돈을 주는 방법도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마이런의 가설 곳곳에서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가령 기축통화 지위는 누리면서 달러 약세를 유도해 무역적자를 없애겠다거나, 제조업 유턴을 위해 관세를 부과할 필요가 있다면서 동시에 국가별 협상을 통해 관세를 깎아주겠다는 식으로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미국이 관세를 매겨도 보복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건 다른 나라의 주권국으로서 지위를 무시하는 듯한 태도다.

마이런의 연설을 들으며 물음표가 생겼다. 준비자산과 안보 우산은 공공재일까. 성공한 대외 정책의 산물로 보는 게 적절하지 않을까. 미국이 비용을 지불하기만 했을까. 이를 기반으로 패권국으로서 군사적·경제적 영향력을 세계에 투사하면서 국제 질서를 만들고 운영하지 않았나.

미국 지도자들의 문제의식과 고통에는 공감한다. 중국이 패권에 도전하는 가운데 위기에 대응할 수 없을 정도로 쇠락한 제조업과 위기의 중산층 일자리를 걱정할 것이다. 문제는 맞았지만, 그 답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같은 대처는 목표 달성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국이 우려하는 바로 그것, 영향력 상실과 쇠락을 가속할 위험마저 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