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엔 사람들이 꽤나 많았다. 붉고 노란 잎들이 햇살에 출렁거릴 때마다 연신 휴대전화의 카메라를 켜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올해 가을 산행은 강원도 고성군 화암사에서 올라가는 성인대 쪽으로 동선을 잡았다. 성인대로 가는 길은 해발 600m 비교적 낮은 산이지만, 오르는 길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가파른 오르막을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올라야 정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드디어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우뚝 솟은 울산바위가, 동쪽으로는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막힘없이 보여 가파른 오름길에 대한 보상을 해준다. 그 통쾌함에 이 코스를 좋아하는 등산객도 꽤나 많다.
하지만 나의 산행 목적은 조금 다르다. 이 자연의 웅장한 경치도 좋지만, 나는 산속 야생화 찾기가 더 재미있고 신이 난다. 여기저기 보이는 하얀 꽃 구절초, 가을 국화 쑥부쟁이와 벌개미취, 철 지나 꽃을 피운 가을 두메부추까지. 게다가 이번 산행에서는 정말 오랜만에 활짝 핀 투구꽃(사진)을 본 게 정말 좋았다.
생긴 모양이 전투에 나갈 때 쓰는 투구를 닮아 투구꽃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 야생화는 서양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수도사의 후드(mookshood)’라고 불린다. 그런데 이 투구꽃이 우리에게 더 잘 알려진 건 독 때문이 아닐까 싶다. 뿌리와 줄기에서 추출되는 아코니틴 몇 그램으로도 인간의 심장이 멈출 수 있다고 하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이 맹독의 투구꽃이 인도의 자연치유법에서는 화살 등에 찔린 상처와 염증·구토·설사를 치유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그래서 전쟁 중에 투구꽃을 지니고 다녔다.
사실 거의 모든 식물이 만들어내는 화학적 성분은 독도 되고 약도 된다. 식물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어용으로, 또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만들기 때문이다. 투구꽃이 만들어낸 것이 독이 될지, 치유가 될지, 그건 우리의 마음에 달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어쨌든 너무 예쁜 보랏빛 투구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오경아 정원디자이너·오가든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