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다음에 또 놀러 와.”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빠에게 해맑게 인사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은 이 광고는 바쁜 현대인들의 웃기지만 슬픈 현실을 담고 있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하루 중 가족과 보내는 시간은 평균 13분,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단 6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아이들이 어린이날 받고 싶은 선물 1위는 부모님과 보내는 시간이라고 답했지만, 일 중독에 빠진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가족과의 시간은 늘 뒤로 밀려나고 있다.
필자 역시 같은 상황이다. 일이 없어도 일을 만들어야 하는 직업 특성상 늘 분주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었고,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보상은 먼 훗날 나에게 또한 아이들에게 분명히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아빠를 귀찮아하는 둘째 딸을 보면 이런 삶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 신나게 놀다가 곤히 잠이 들면, 늦게 들어온 아빠가 이불을 걷어 안고, 뒹굴면서 잠을 깨우니 불편하고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 듯해 괜스레 서운함을 느낀다.
맞벌이를 하던 아내가 한 달 동안 휴가를 받았고, 가족끼리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제안했다. 가장 바쁜 10월이었지만, 한 달은 어렵다고 하여 보름으로 합의했다. 우리는 목포에서 큰 여객선에 차를 싣고 제주도로 향했다. 어릴 적 제주도에서 아버지를 만나러 배를 타고 간 기억이 나지만, 어른이 되어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비행기를 자주 탔다.
제주도에서의 보름은 매우 여유로웠다. 아침에 밥을 먹고 낮잠을 자고, 숙소에서 직접 요리를 하며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었다. 이른 아침, 해변을 걷기도 하고, 바다를 비추는 햇살에 출렁이는 윤슬을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정신없이 물놀이도 했다. 주인집 고양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장난치다가 저녁노을을 만나러 아이들과 손을 잡고, 목마를 태워 오름에 올라 멍하니 하늘을 쳐다봤다. 붉게 타오르는 하늘을 보며 밤을 간지럽게 하는 풀벌레의 목소리를 빌려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렇게 일주일이 되던 무렵, 둘째 딸이 잠을 자고 있는 나에게 뽀뽀를 해주었다.
대개 자동차 뒷유리에는 초보운전 알림이나 사고 발생 시 아이들을 구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연히 찾은 해남 대흥사에서 발견한 자동차 뒷유리에는 ‘위급 상황 발생 시 엄마를 먼저 구해주세요’ 문구를 발견했고,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저 차를 따라오는 수많은 차들이 같은 마음이길 바랐다. 그렇게 대흥사는 오래전 이야기에서 경험보다 현재 주어진 가족과의 소중함을 잊지 말라는 깨달음을 전해주는 듯했다.
아이들은 제주도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아빠를 서운하게 했던 둘째는 틈만 나면 주위를 맴돌다가 목마를 타고 배시시 웃으며, 장난을 친다. 보름 살기 이후 필자는 주변 지인들에게 놀러 가지 말고 살러 가라고 적극 권유한다. 유럽인들이 한 달 동안 가족들과 긴 휴가를 가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며, 가능한 긴 시간을 만들어 가족과 일상을 함께 하라고 말한다. 물론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는 지인도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일 중독에 빠져 소중한 삶을 송두리째 빼앗길 수 있다. 바쁜 일상은 잠시 멈춰야 한다. 서로 마주하고 소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일상에서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특별한 것은 필요하지 않다. 알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얼굴과 입을 통해 전달된다.
더 늦기 전에 아이들처럼 부모님에게 말할 때가 된 것 같다.
“엄마 아빠, 더 늦기 전에 우리도 같이 살러 가자.”
김지훈<문화통신사협동조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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