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5월 14일 이종호 전 블랙펄 대표가 ‘삼부 내일 체크하고’라는 메시지를 카톡방에 남긴다. 그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인물이다. 김건희 여사 계좌관리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틀 후인 16일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올레나 젤렌스카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을 만났다. 이어 22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참가했다. 삼부토건 관계자가 동행했다. 전쟁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의아한 이벤트였다. 특수 기대가 커지면서 삼부토건 주가가 치솟았다. 5월 코스피시장 상승률 1위였다. 93%나 올랐다. 7월 15일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깜짝 방문하자 주가는 5500원으로 정점을 찍었다. 두 달 새 다섯 배 상승했다.
적자 기업, 우크라 특수로 주가 급등
금융당국 조사 지지부진, 의혹 커져
6월까지 검찰에 안 넘기고 뭉갤 듯
누가 재건 포럼 데려갔는지 밝혀야
결과적으로 정부가 주가 급등을 도운 꼴이 됐다.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다. 삼부토건은 우크라이나 재건에 참여할 형편이 아니었다. 당기순손실이 2022년 927억원, 2023년 1243억원에 달했다. 부실기업 주가가 엉터리 호재에 힘입어 단기간에 급등한 것이다. 전형적인 작전주 행태다. 이종호의 ‘삼부’가 삼부토건을 뜻한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종호 측은 ‘삼부’가 골프장 야간 시간대인 ‘3부’라고 주장했다. 해병대 골프장에는 3부가 없다. 골퍼들은 야간이라고 하지 3부라는 말은 잘 쓰지 않는다.
금융당국의 행보도 석연치 않다. 주식시장 이상 거래 조사는 혐의포착·심리(한국거래소)→조사(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수사(검찰)의 순으로 이어진다. 주가와 거래량이 급변하면 거래소 시장감시체계 시스템에 부정거래 혐의 계좌가 포착된다. 2023년 시장에서 삼부토건 주가조작 의혹이 파다했다. 거래소는 1년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2024년 7월 민주당 의원들이 문제를 삼자 그제야 심리에 착수했다. 결과를 금감원에 넘긴 건 2024년 9월.
다시 6개월이 흘렀다. 사건을 뭉개던 금감원이 최근 면피용 발언을 쏟아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일부 이해관계자가 100억원대 이상의 이익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금감원은 “대주주 시세차익이 이종호 측에 흘러갔는지 자금 추적 중이다. 200여개 계좌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200건의 다른 사건에 앞서 우선 배정해 조사하고 있다고 했다. 2년이나 지난 사건을 조사하면서 ‘우선 배정’이라고 생색을 내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삼부토건 말고도 주가조작 혐의가 있는데 아직 손도 대지 않은 사건이 200건이나 된다는 점도 놀랍다. 이래저래 금융당국은 신뢰를 잃었다.
금감원은 압수수색을 하거나 휴대폰·PC를 포렌식하는 강제적인 수사권이 없다. 조사에 진척이 없으면 사건을 쥐고 있지 말고 검찰로 조속히 넘겨야 한다.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해외로 도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의 해명은 이렇다. “검찰에 넘기려면 어느 정도 증거 수집이 필요한데, 강제 수사권이 없어 증거 수집에 어려움이 있다.” 이런 논리라면 애초에 주가조작은 잡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이 원장은 “제 임기인 6월 초까지 최대한 처리하겠다”고 말했다. 검찰에 당장 넘기지 않고, 6월까지 갖고 있겠다는 건가. 그럴수록 의혹만 커진다.
한국·우크라이나 정부의 이벤트를 누군가 미리 알고 주가조작에 활용했는지 밝히는 게 핵심이다. 어떤 경위로 삼부토건을 우크라이나 재건 포럼에 데려갔는지도 따져야 한다. 200여 개 계좌가 의심스럽다고 한다. 이 정도면 단순히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매매를 한 게 아니다. 시세를 인위적으로 조종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삼부토건 시가총액이 2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늘었다. 8000억원의 단기 차익이 생겼다. 겨우 100억원대 이익 실현이 있었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정부는 그동안 수많은 주가조작 대책을 마련했다. 2013년엔 ‘주가조작 근절 종합대책’이라는 거창한 발표가 있었다. 금융위원회 파견 검사들이 직접 수사해 사건을 신속히 처리한다는 내용이었다. 1년 넘게 끌던 것을 3~4개월로 단축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터무니없는 얘기다. 처벌도 가볍다. 부당이득에 비해 과징금이 적다. 시장에선 ‘재수 없어서 걸려도 남는 장사’라는 말이 나돈다. 증권 범죄자의 90% 이상이 징역형을 면한다. 미국의 증권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는 2009년 징역 150년형을 선고받았다. 가석방이나 사면 없이 2021년 82세로 사망할 때까지 감옥에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이 정부 들어 주가조작에 유리한 여건이 만들어졌다. 2024년 총선을 앞두고 공매도를 금지한 건 명분이 없었다. 공매도는 주가 거품을 빼고 작전을 막는 순기능이 있다. 공매도를 금지하고, 금융투자소득세를 철회하면서 작전세력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작전세력이 부당이익을 내면 누군가 손실을 떠안게 된다. 삼부토건에 물려 있는 소액주주가 13만 명을 넘는다. 주가조작 의혹을 끝까지 추적해 엄벌하기 바란다. 그게 정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