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특집] 반구대특집⑦ 대곡리 가가호호(家家戶戶)(6)

2025-07-31

633호부터 10회에 걸쳐 그동안 필자가 보고 듣고 느꼈던 반구대 사람들, 그들의 소망과 욕망을 2020년부터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반구대특집 ⑧, ⑨회는 “대곡리 갑을남녀(甲乙男女) (1), (2)”, ⑩회는 “영화 <반구대 사피엔스> 크랭크-인”으로 마무리합니다.

삼 형제의 논은 이들이 대여섯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지었던 곳이다. 1960년대부터 한 가족의 밥상이었고, 삼 형제가 그때의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은 지금은 삼 형제 각 가족의 밥상이다. 딱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 나온다고 한다. 옛날에는 밥상 위에서 밥의 양이 가장 많고 지금만큼 수확이 좋지 않아서 한 가족이 먹을 수 있는 양이었고, 지금은 가족 수가 더 늘었어도 수확량이 늘고 먹을 게 더 많아져서 딱 맞다.

한실마을에서 위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하는 삼형제의 논은 가장 안전하고 전망이 가장 아름답다

논은 약 800평이고, 모든 작업은 가장 아래쪽에 있는 큰형의 논부터 시작한다. 사촌 형제 한 명이 손을 거든다. 품앗이다. 이곳은 다른 데보다 지대가 높아서 벼가 좀 더 늦게 여물고, 다른 논에 비해 면적이 작고 상대적으로 일손이 넉넉하며 트랙터가 오기에 길이 좋지 않아서 80킬로그램 쌀가마니 하나 반쯤 되는 크기의 소형 트랙터로 추수한다. 그런데 이 트랙터가 하도 고장이 잘 나서 100평쯤 작업하고 나면 손을 봐야 한다.

기계가 고장 나면 둘째가 나서고, 그 사이 사촌 형제와 막내는 낫으로 슬렁슬렁 벼를 벤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첫째는 기획자, 둘째는 행동대장, 셋째는 암행어사, 사촌 형제는 오락 반장 같다. 그들이 느릿느릿 적은 말수로 의사소통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고, 수십 년간 맞춰왔을 손과 눈을 관찰하는 일도 흥미롭다.

김태한 이장의 집에서 300미터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이 집 주인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는 갈 수 없는 멋진 계곡이 있다. 작은 산이 다른 산과 얄팍한 경계를 두는 지점에 물이 흐르면서 소소하게 쉴 수 있는 계곡을 만든 것이다. 이 논 주변에도 소규모의 협곡이 있는데, 그 덕분에 아무리 큰 비와 태풍이 와도 이 논의 벼는 언제나 안전하게 수확될 수 있었다.

이 논에서 내려다보는 한실마을 일부의 풍경과 사연호의 경관은 멋지다. 남향인 덕분에 사계절 내내 햇빛을 다 받아낼 수 있고, 남서쪽의 사연호는 일출부터 일몰까지 어느 장면 하나 놓치기 아깝다.

사연댐과 사연호가 생기기 이전에는 한실마을에서 반구대암각화까지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고, 반구마을보다 거리가 더 가까웠다

반구마을의 대곡경로당에서 반구대암각화까지 가려면 1.2킬로미터쯤 걸어야 하지만 사연댐이 생기기 전 한실마을의 아랫각단에서는 1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그런데 2021년 명승 지정부터 최근 유네스코 등재까지 반구마을의 일부 주민은 한실마을이 반구대암각화와 무관한 곳이라고 주장했고, 되레 반구대안길에 천전리가 걸쳐 있으니 천전리 주민들과 합세하기도 했다.

주민들도 명승 지정 전까지는 그 구역을 따로 선을 그으며 살지 않았고, 반구대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이 일대를 하나의 유적지와 관광지로 보면서 따로 구분하지 않는다. 한 아파트 안에서도 안방은 무슨 구, 거실은 다른 무슨 구라고 하는 판에 행정구역이 뭐가 중요하다고.

이렇게 통상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에는 반드시 개인적 이권 추구가 개입돼 있다. 최소한 밖에서 바라보는 모습이란 게 그렇다. 내부가 그러하니 밖에서도 만만하게 여기저기 아무렇게나 빨대를 꽂아대는 게 아닌가. 아, 목소리 크면 되는구나, 뻔뻔하면 되는구나, 하는 거다.

한실마을에는 반구마을처럼 주택이 몰려 있지 않고, 면적에 비해 가구 수도 적다. 신축한 모양새로 보이는 집들은 대개 집주인이 거주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런 집에만 대문이 있다. 지난번 많은 비가 왔을 때 마을에 낯선 차들이 여럿 보였고, 그 집들 대문이 그제야 열렸다.

경계가 없던 곳에 선을 긋는 것은 누군가의 개인적 이권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국보 마을 주민들에게 경계선이 필요 없다

한실길이 끝나기 100미터 남짓 전쯤에도 이름 없는 다리가 하나 있다. 이 안쪽에도 서너 가구가 살고 있는데, 상주하는 건 아닌 것 같다. 2021년 1월 30일, 두 번째 한실마을 회의가 끝난 오후 2시 남짓 됐을 때쯤 주민들이 함께 염소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다. 염소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지만 따라나선 이유는 한 달 전인 2020년 12월 29일 화요일 오후 2시가 좀 못 된 시간에 아주 그로테스크한 광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반구마을 초입에 반구대안길과 붙은 자연 습지의 긴 변이 끝나는 지점부터 반구대안길로 100미터쯤 가면 남쪽으로 진입하는 농로가 있다. 150미터쯤 되는 농로는 자연 습지의 꺾인 다른 한 변과 그 아래의 산까지 연결돼 있다. 북쪽에 가로로 뻗은 반구대안길을 하나의 변으로 하고, 남쪽으로 난 농로를 한 변으로 하며, 습지의 테두리 일부를 하나의 변으로 해서 삼각형 ‘비스무리한’ 논이 있다.

1200평쯤 되는 이 논은 반구대안길보다 지면이 평균 1미터가량 낮고, 반구대안길과 농로가 만나는 꼭짓점의 지면 차는 2미터에 가깝다. 대곡경로당 가는 방향으로 섰을 때 반구대안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300평쯤 되는 맹지가 있고, 오른쪽은 삼각형 비스무리한 논이다. 당시엔 맹지의 허술한 울타리 안쪽에 염소가 너덧 마리가 있었는데 지금은 안 보인다.

그 꼭짓점 바로 아래의 마른 논 위에 검은색 털뭉치가 있어서 촬영했다. 통째로 벗겨낸 염소 털이었다.

한실길이 끝나는 지점에 세 가구가 있는데, 이름 없는 다리와 가장 가까운 집에서 염소 파티가 열렸고, 나는 한 점을 입에 댔다가 영 입맛에 맞지 않아 슬쩍 뱉고 촬영만 했다. 고기가 붙어 있는 뼈는 콱 씹으면 부러질 듯 가늘었고, 질긴 것도 아니고 부드러운 것도 아닌 낯선 식감이었으며, 무엇보다 비릿한 군내가 영 비위에 맞지 않았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들은 모든 장소의 상세함을 꿰고 있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아는 것을 드러낼 수 있게 하라

지난번 드론을 되찾도록 도와준 삼식 아저씨가 다음 날 연락이 와서 반고사(寺) 터에 가봤냐고 물어왔다. 주민들이 그 위치를 두 군데로 예측하던데, 멀리서 몇 컷 찍고 드론으로 확인해 봤지만 특정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더니 본인이 잘 알고 있다면서, 이 동네를 기록하는 거라면 당연히 거기도 가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촬영하면서 정말 반가운 것은 종이나 디지털 매체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정보를 제공받을 때이다. 그 지역을 잘 아는 이들의 모호한 정보는 대체로 훌륭한 실마리거나 엄청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어디라고 설명을 해줬는데 도무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산 이름, 다리 이름, 이런저런 장소들과 사물들에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지도에 없는 동매산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 5년이 걸렸으니까. 유네스코 등재로 이 일대의 개발과 정비에 속도가 붙을 것이다. 내년에 지방선거가 있으니 이쪽이든 저쪽이든 더 경쟁적일 것이다. 대통령 공약에도 있기 때문에 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 기왕이면 이 일대를 정비하면서 각기 이름을 갖다 붙이는 작업도 함께 겸할 필요가 있다. 작년, 오목교에 이름표를 달아줬듯이.

어쨌든 반고사 터는 산 타는 데 익숙한 사람이 20분 정도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고 했다. 장비까지 들고 오르려면 얼마나 걸리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나무와 풀이 울창해서 익숙한 사람이 아니면 다니기도 힘들고, 가봐야 화면으로 잡아낼 게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낙엽이 다 지고 난 다음에 올라가기로 했다. 잘 됐다.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때가 12월 중순쯤이니 여유롭게 다녀올 수 있겠다.

그만큼 많이 오르내렸는데도 여전히 내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 그 모든 곳을 다 가보려면 내 두 다리가 건강해야 하고, 특별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 있기에 부지런 떨어야 한다.

반구대암각화부터 천전리각석까지 아우르는 공간의 면적이 퉁 쳐서 12만 평쯤 된다. 언양읍 전체 면적의 6퍼센트 정도밖에 안 된다. 대부분이 산이지만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동안 미발굴된 수많은 유적이 잠재된 곳이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과 말을 통해 학자들이 국보를 발견해 냈고, 주민들이 주장하는 많은 시간과 보물들은 공표될 자격이 없는 자의 것이라고 해서 폄하하고 또 폄훼되고 있다.

8월 1일 유에코의 타운홀미팅 행사 계획서에는 주민을 위한 배려가 보이지 않는다. 누구를 위한 잔치인고?

8월 1일 유에코(UECO,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앞으로의 지원 방향과 지역 경제 활성화 방안 발표회가 있다고 한다. 1시간 동안 내빈을 중심으로 한 울산시와 국가유산청 중심의 행사가 진행되고, 1시간 10분 동안 사전에 선발한 시민과 시민 단체의 발언 및 질의응답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시간 내에 기념 촬영이 있단다.

2021년 3월 8일 월요일 오후 2시, 언양읍사무소에서 개최된 공청회에서 주민들이 답답해서 소리치는 일들이 있었다. 답답하니까 목소리를 낸 것이다. 다만 그 방식이 점잖지 못했고 세련되지 않아서 무식하고 미개한 사람 취급을 당했다. 가끔 접하는 드라마의 몇몇 장면에서 재벌가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세상 사람들이 대곡리 주민들을 태도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주민들이 현 이장의 소극적 태도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이러한 장(場)에서 주민들이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자리만 채우는 객체로 취급하게 하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무책임함, 주민들의 각자도생, 그들을 한데 묶어줄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외면하는 사이 주민들은 노쇠하고 마음이 떠나버린다

주민들은 통보만 받았다. 이 소식을 필자에게 전해 온 이유는 이 답답한 순간들을 촬영해 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만 5년이 지나는 동안 당시에 그럭저럭 성성했던 주민들이 나이를 더 먹었고, 노인의 시간은 더 급하게 쇠락하면서 건강이 안 좋아졌고, 마음이 상해서 외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고작 2년 반 남짓 시간 동안 무책임해졌고 무심해지면서 각자도생하고 있다.

지금 대곡리 주민들은 이곳에 살면서 이곳을 더 잘 알고 더 책임감 있게 보존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명승 지정될 때처럼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지만 실망하고 주저하는 사람들 때문에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지 않기를 원하고 있지만 주민들로부터 소외될까 봐 겁이 나서 서로 등을 돌리고 있다. 누군가 용기 내서 이러한 요구를 관철해 주길 바라지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인 양 고개를 외로 꼬고 있다.

세련되지 못하고 점잖지 못하다고 그들을 무시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그래서 늬들이 안 되는 거야, 라며 이들을 무시하는 외부인이 있고, 그렇게 무시하니 이들이 평생 누려왔던 이 마을의 자연 혜택과 자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도둑질해 간다. 당연히 이 사람들이 가져야 할 책무와 그에 따른 보상을 탐내고 있다.

6년 동안 대곡리 가가호호를 돌아다니고 대곡리 갑을남녀를 만나면서 전사(戰士)가 된 것 같다. 농담 삼아 차차차기 이장이 될 거라고 호언(豪言)하고 다니는데, 아마도 내 환갑과 고희는 반구대에서 맞이하게 되지 않을까 한다. 그만큼 이곳이 내 고향이 돼버렸다. 그래서 주민들의 마음이 다치고 마을이 훼손되는 게 속이 상한 모양이다.

8월 1일의 타운홀미팅은 아무래도 대곡리 주민들이 소외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부디 주민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공청회를 진행해 주길 바란다.

그런데 한동안 ‘브라운백미팅’이라는 말을 그렇게 써대더니 요즘엔 ‘타운홀미팅’이란 말을 많이 쓴다. 그냥 ‘도시락 회의’, ‘공청회’, ‘시민과의 대화’, ‘주민과의 대화’, 이렇게 쓰면 안 되나? 거부감이 든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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