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반려동물의 증가와 함께, ‘리얼 베이비돌’ 인형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실제 아기처럼 정교하게 제작된 인형을 통해 불안 완화와 정서적 안정을 얻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형을 통해 외로움과 상실을 치유받는 이들에게 감정과 존재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 위로와 치유의 과정을 보며 자연과 우리의 관계를 질문해 본다.
인간은 문명을 창조했다. 불을 발견하고 바퀴를 만들었으며, 도시를 세우고 산업을 일으켰다. 자연을 정복하고, 기술 발전을 통한 인공지능이 인간의 사고와 노동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은 자연 없이 살 수 있을까.
지난 6월, 강원도 인제에 위치한 DMZ 평화생명동산을 찾았다. 16년째 현장을 가꾸고 있는 정성헌 이사장은 “이곳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 아닙니다. 자연이 만든 삶터입니다. 인간은 그저 머물며 치유와 희망을 얻을 뿐이지요.”라고 말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람과 흙냄새까지 살아 숨 쉬는 동산. 그곳은 단순한 교육장이 아닌 생명과 평화의 성소였다. 자연은 쉼 없이 자신을 회복하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진정한 활력을 되찾고 있었다.

개발이 멈춘 DMZ 생태보존지구는 다양한 야생 동식물이 자생하고,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공간에서 자연은 본래의 질서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기후 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자연이라는 ‘비인간 존재’의 강력한 메시지로, 자연을 지키는 일이 단순한 환경보호를 넘어, 인류의 생존 조건이자 평화의 출발임을 각인시켰다.
도시화와 산업화는 우리 삶을 급격히 바꾸었다. 도시는 과밀과 고립에 시달리고, 농촌은 감소와 소멸의 위기를 겪고 있다. 기술과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점점 자연과 단절되었고, 단절은 고립과 상실을 넘어 불안으로 되돌아오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해야 할 때이다.
우리는 그동안 깨끗한 물, 건강한 흙, 맑은 공기의 가치를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왔다. 그리고 인간의 탐욕과 무분별한 개발은 생태계를 파괴했고, 기후 위기로 인한 폭염과 홍수, 가뭄과 산불의 빈번한 자연재해는 우리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되묻게 한다. 자연은 더 이상 무한정 제공되는 대상이 아니며, 자연을 지키는 일은 곧 우리 자신을 지키는 일인 것이다.

자연은 인간 생명의 지속이다. 그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균형과 공존의 방식을 배워야 한다. 지금 이 시대는 자연과 공존하는 삶을 이끌 지도자 양성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기술 중심이 아닌 생명 중심의 세계관을 가진 이들, 곧 자연 생태의 가치 철학을 갖춘 이들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프랑스 인류학자 브뤼노 라투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간만을 중심에 두는 사고를 넘어, 자연과 비인간 존재들을 ‘행위자(Actant)’로 바라보며 그들과의 평등한 관계를 강조했다. 인간은 자연과 연결된 존재이며, 그 관계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대형 선박은 정교한 기술의 집약체지만, 위기 상황에서 일부가 붕괴되도록 설계된다. 선체 전체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의도된 약점을 도입하는 것이다. 이를 ‘디자인 위크 니스(Design Weakness)’라 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신학적 관점에서 창조주는 인간을 완전한 자립체로 만들지 않았다. 인간은 자연에 의존하도록 디자인되었으며 그 의존성은 계획된 약점이다. 자연과의 연결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이다.
‘비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배제하거나 지배할 대상이 아니다. 자연, 동물, 다양한 생명체들은 인간이 잃어버린 균형을 되찾고, 상처받은 감정을 회복하며,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배우고, 그들과 함께 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의 실험은 DMZ에서 이미 시작되었고, DMZ가 보여주는 공존의 생태는 농촌에도 뿌리내리고 있다. 농촌은 단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자연 생태 공동체의 가능성을 지닌 곳이다.
이것이 또 하나의 ‘농촌유토피아’이며, 지역의 지속 가능한 경제·문화 모델이기도 하다. 전남 곡성과 충북 괴산에 진행되고 있는 ‘농촌유토피아 선도마을’은 이러한 비전을 실천에 옮기는 중요한 기반이다.
자연을 보존하고 되살리는 일은 인간을 구하는 일이다. 자연과 공존하는 삶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자연’을 조성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것이 기후 위기와 지역 소멸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 농촌이 다시 살아나는 길이자 다음 세대를 위한 우리의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