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남인터넷신문]인류는 오랫동안 ‘먹고 사는 일’에 집중해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생존을 위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 많지만, 경제적 안정과 복지 수준이 향상된 선진국에서는 점차 삶의 질, 건강, 심리적 안정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바로 ‘치유농업’이다. 농업을 기반으로 사람들의 심신을 치유하고, 농촌의 새로운 역할과 공익적 기능을 모색하려는 이 흐름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활발히 시도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치유농업은 농업의 다원적 가치를 확장하고, 농가 소득을 다변화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실제로 전국 각지에 치유농장이 조성되고 있으며, 다양한 프로그램과 체험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필요성이 크다”, “미래가 유망하다”는 구호만 무성할 뿐, 그 시스템에 대한 구조적 논의와 실행 기반은 미흡하다. 치유의 기준, 대상자 선정, 비용 부담, 효과 측정 등 핵심 요소들이 불명확한 가운데, 많은 치유농장들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지속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안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특히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Green Care Station)’은 우리나라 치유농업의 한계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과도 같은 존재다.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단순한 농장 체험이나 일회성 프로그램이 아닌, 고령자 복지와 지역농업을 연계한 제도화된 치유 플랫폼이다.
첫째, 운영 방식의 차이가 뚜렷하다. 대만은 이 사업을 중앙정부가 직접 주도하기보다는 지역 농회에 위탁하여 실행하고 있다. 농회는 대만 전역에 걸쳐 존재하는 조직으로, 우리나라의 농협과 유사한 구조를 지닌다. 정부는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고, 농회는 이를 바탕으로 지역 내 치유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한다. 이처럼 민관 협력 기반의 시스템은 치유농업이 민간의 자생적 노력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준다.
둘째, 대상자 설정이 명확하다.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65세 이상 고령자를 주대상으로 한다. 이는 치유농업을 복지 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계시킬 수 있는 구조이며, 사회적 수용성과 정책적 정당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게 한다. 대상자가 명확하니 프로그램의 전문성, 예산의 효율적 분배, 효과의 계량화도 보다 용이해 진다.
셋째, 비용 부담 구조가 안정적이다. 정부의 보조금과 지역 농회의 행정적·재정적 지원이 운영의 기본을 뒷받침하기 때문에, 치유농업의 순조롭게 확장되고 있다. 반면 한국의 치유농업은 당장 치유농장이 수익원을 확보해야 하므로 체험농업·교육농업·복지농업의 경계가 불명확하고, 개별 농장이 콘텐츠 기획부터 마케팅, 수익 창출까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경쟁이 심화되고, 지속 가능성은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또한 국내에서는 치유의 정의와 제공 방식, 적정한 보상의 기준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다. 이는 ‘치유’라는 개념을 추상화시키고, 운영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치유농장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상호 협력보다는 고립과 생존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점에서 대만의 사례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기존에 예산이 확보된 공공복지와 연계된 대상자 설정이 필요하다. 둘째, 치유농장과 공공복지 시스템 간의 제도적 연계가 필수적이다. 특히 이미 편성된 복지 예산의 일부가 치유농장을 통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특혜가 아니라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하나의 경로가 되어야 한다.
셋째, 이러한 제도적 연계를 바탕으로 특정 대상자에 대한 치유 비용의 공공화, 즉 국가나 지자체가 비용을 부담함으로써 치유농장의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65세 이상 고령자를 대상으로 ‘일중독 치유 프로그램’을 복지 차원에서 실시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공공이 부담하는 구조다.
이러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만 치유농업은 단순한 체험 사업을 넘어, 복지와 농업, 공동체 회복이 융합된 공익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이제는 “치유농업이 유망하다”는 막연한 기대에서 벗어나, 치유농장이 생존하고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적 플랫폼과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하고 냉정하게 분석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대만의 그린케어 스테이션은 각자도생에 놓인 우리나라 치유농업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