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자기 몸에 항암제 실험한 교수…유죄→무죄 뒤집혔다, 왜

2025-08-13

“피고인은 암 환자에게 투여할 약에 대해 파악할 필요성에 따라 자기실험을 진행했다. 사회 통념상 허용될 만한 상당성이 인정되는 정당행위이며 범죄가 되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울산지법 3-3형사부(재판장 조상민)는 약사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양산부산대병원 임상약리학과 황태호 교수 항소심에서 최근 무죄를 선고하며 이같이 밝혔다. 검사 측이 상고하지 않으면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이례적 ‘자기실험’ 재판, 왜 일어났나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황 교수는 2022년 1월 연구실에서 개발 중이던 항암 백시니아 바이러스(OTS-412)를 자신의 몸에 직접 주사하고, 2주간 혈액을 채취해 면역세포(T세포)의 역동적 기능을 관찰하는 ‘자기실험’을 진행했다가 고발당했다.

항암 백시니아 바이러스는 천연두 백신에 사용된 백시니아 바이러스를 약독화(병원체가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능력을 약하게 제어)하고 유전적으로 변형해, 기존 치료 방법으로는 효과를 못 본 암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도록 개발하는 항암 치료제다. 종양세포만 선택적으로 감염시켜 파괴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당시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OTS-412 임상시험 허가를 준비하던 황 교수는 이 자기시험 결과를 식품의약안전처에 보고했다가 고발됐다. 유효성 입증 등을 위해 사람에게 약물을 투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때 식약처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 약사법을 어긴 혐의로 기소됐다. 의료계에 따르면 임상시험 연구자가 자기실험을 진행했다가 고발되는 건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한다.

처음 약식기소에서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100만원)이 나오자 황 교수는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약사법 위반은 인정된다. 다만 위법성이 중하지 않은 점과 피고인 성행, 동기 등을 참작한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2년간 재범하지 않으면 사실상 무죄에 해당하는 판결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무결하다고 생각한 황 교수는 항소했다. 그는 “OTS-412는 이미 암 환자에게 임상시험으로 투여 가능한 수준이었다. 함께 연구를 진행한 동료 교수와 의논해 안전하게 실험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 자기실험은 식약처에 낸 1상 임상시험계획서 승인이 나기 전 이뤄졌다. 제출한 계획서엔 자기실험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았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황 교수가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는 자기실험을 성급하게 진행한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황 교수는 자기실험 필요성에 대해 “OTS-412 투여 직후 나타나는 면역 반응은 실제 암 환자 임상시험에서 매우 중요한 비교 데이터가 된다”며 “하지만 단기간에 많은 양의 혈액을 뽑아야 해 (이미 쇠약해진) 암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건 어렵다. 이에 건강한 피험자(본인)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예→무죄 뒤집어준 법원, 왜?

이런 주장은 법원에서 받아들여졌다. 항소심에서 황 교수 측은 이 자기실험이 공중위생상의 위험을 발생시키지 않았고, 개인적 이득을 추구하지도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형사처벌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1심과 마찬가지로 2심 법원 또한 황 교수 자기실험을 ‘약사법 규제를 받아야 하는 임상시험’으로 봤다. 다만 이 자기실험 자체의 위법성보다는 “규제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자기실험이 계속 이루어지게 둔다면, 다수를 위해 소수의 신체적 완전성 훼손을 감수ㆍ용인하는 풍조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나아가 2심 법원은 황 교수 자기실험의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판단했다. 조상민 판사는 “피고인이 개인적 목적, 혹은 약사법 규제를 회피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자기실험은 공익상 위해나 중대한 안전ㆍ윤리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며 “피고인은 연구 책임자로서 윤리적 고찰을 거쳐 스스로 자기실험을 결정했다. 이에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한ㆍ미 임상시험 통해 치료제 개발 집중”

황 교수가 자기실험을 진행한 OTS-412는 소송이 진행중이던 2023년 9월 미국 FDA의 임상시험 승인(1상)을 받았고, 최근엔 국내 식약처에서도 승인(1상)을 받았다. 황 교수는 “법원과 식약처 등의 이해를 얻어 연구를 진행할 수 있게 된 점을 감사히 여긴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OTS-412는 치료에 실패한 유방ㆍ피부암 등 고형성종양 환자 치료제로 개발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부산대병원과 동아대병원에서 약 20명 규모로 1상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미국과 한국 모두 승인이 난 만큼 임상시험은 두 나라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될 것”이라며 “법원에서는 무죄를 인정받았지만 판결 내용이 윤리적으로도 무결함을 뜻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면역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신약 허가를 받기 위한 임상시험은 엄격한 규정에 따른 승인 과정 등을 거쳐야 한다. 임상시험 의뢰자가 임상시험계획서를 작성한 뒤 식약처와 시험 실시기관 내 임상시험심사위원회(IRB)에 승인 신청을 하게 된다. 식약처와 IRB에서 이를 검토한 뒤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1상 기준으로는 30일 내 승인 여부가 나오는 게 원칙인데, 자료 보완 등에 따라 그보다 길어질 수 있다.

만약 승인을 못 받았는데 임상시험을 강행하거나 계획서와 다르게 진행해 시험 대상자에 건강상 문제 등이 발생하면 사법 조치가 이뤄질 수 있다. 다만 황 교수처럼 임상시험 목적으로 연구자 본인 몸에 스스로 투약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어 법적 판단이 어려울 여지가 있다.

이명진 의료윤리연구회 초대 회장은 ”(황 교수 자기실험은) 예외적인 상황이고 바람직한 건 아니지만, 법적으로 유ㆍ무죄를 따질 사항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다른 이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았고, 도움을 주기 위해 자기 스스로 결정을 내린 만큼 의료 윤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사법부 판단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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