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치료중단, 연명의료결정법 따라야

2025-08-13

지난 9일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존엄사를 선택한 국민이 300만 명을 넘었다.

미국 법원은 자살 기계를 만들어 환자 스스로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의사가 자살 기계조차 작동할 수 없는 환자에게 직접 약물을 주입, 사망케 한 사건에 대해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하자 사회적 합의를 거쳐 존엄사법을 만들어 말기 환자의 생명권과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호하기 시작하였다.

소생술포기동의서는 불법

치료받을 권리, 헌법상 기본권

치매·만성신부전 끝까지 치료

말기암도 사전의향서 있어야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뇌출혈 수술 후 기관삽관치료를 받고 있던 남편에 대해 간병 부담을 이유로 아내가 치료중단을 요구하고, 이에 따라 기관 튜브를 발관하여 호흡부전으로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들에게 대법원이 살인방조죄를 선고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수십 년간 의료진은 가족의 치료중단 요구에 따랐으나, 의료 관행에 반하는 판결이 나오자 살인누명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령이나 말기 중환자가 입원하면 “심정지 시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를 원하지 않는 경우 치료를 중단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의사에게 묻지 않겠다”는 이른바 치료중단 및 소생술포기(DNR) 동의서를 받기 시작했다. 이 동의서는 소생술 포기 대상 질환, 환자의 의사 확인방법, 치료중단 절차 및 방법 등 법적 근거 없이 의료인 임시로 만들어 사용되어 왔다.

그러던 중 2009년 대법원은 심한 저산소성 뇌손상으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에서 인공호흡기를 낀 채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던 환자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달라”고 제기한 사건에 대하여 “생명권은 헌법상 기본권 중의 기본권으로서 진료행위를 중단할 것인지 여부는 극히 제한적으로 신중하게 판단하여야 한다”고 전제하고 다만 “회복 불가능하고 짧은 시간 내 사망이 명백하고 오로지 종기(終期)를 인위적으로 연장시키는 치료에 불과하고, 환자 스스로 미리 연명의료 거부 내지 중단 의사를 밝힌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를 계기로 국회는 사회적 협의체를 구성하여 논의 끝에 2016년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이 법의 제정목적은 소외되고 버림받을 위험에 노출된 ‘임종 과정에 있는 말기 환자’의 생명과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 모든 환자는 마지막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 적극적으로 치료받을 헌법상 기본권을 보장받고, 의료인은 무의미한 치료라도 치료중단 의사를 표시하지 않은 경우 치료를 중단하거나 거절할 수 없도록 치료의무를 적극적으로 지우고 있다. 이 법은 치료 중단할 수 있는 대상 환자를 사망이 임박한 임종과정 환자, 암, 후천성면역결핍증, 천식, 진폐증 등 만성폐쇄성호흡기질환, 만성 간경화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 뇌경색·뇌출혈에 의한 식물인간, 치매·만성신부전 등은 말기상태라도 끝까지 치료하도록 하여 오남용을 방지하였다. 무엇보다 이 법에서는 연명의료중단 결정을 환자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명문화하였다는 점이다. 치료중단은 원칙적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미리 작성하거나 연명의료중단을 추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한다. 다만 예외적으로 환자의 의사를 모를 경우 가족 전원이 동의하여야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가족 일부가 동의하지 않거나 고아의 경우는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소생술도 중단하지 못한다. 주치의사는 입원 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확인과 별도로 환자별로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여 설명하고 환자의 동의를 받아 연명의료를 시행함으로써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2중으로 보호하고 있다.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연명의료를 거절하거나 중단한 의료인은 형사처벌과 동시에 의료인 자격정지·취소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적지 않은 의료기관에서 연명의료 결정법이 없을 때 책임회피용으로 만든 ‘소생술포기동의서’를 관행적으로 받고 있다. 그 경우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개 가족 일부로부터만 동의를 받은 채 치매, 뇌경색, 심장질환, 지속적 식물인간 등 연명치료중단 대상이 아닌 환자까지 불법으로 치료중단, 소생술 포기를 하고 있다. 사망 당시 소생술을 받았다면 생존 가능성이 있는 경우 소생술 포기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에 해당될 수 있어 금지되어야 한다.

최근 정부는 노인진료비가 50조원을 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 노인들은 평생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냈고, 헌법상 치료받을 기본권자이다. 노인들이 건강보험 재정부담의 주범이라는 발표는 연명의료결정법을 무시하고 일부 가족에 의해 적극적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는 잘못된 관행을 합법화시킬 수 위험이 있다. 국가가 필요한 이유는 임종 과정의 말기 환자도 끝까지 치료해 주고 보호하는 데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지켜지고, 소생술 포기 동의서만으로 치료를 중단하지 못하게 감시할 책임은 국가에 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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