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존경 사라지자 교사들 떠난다…“이젠 보건교사도 담임 맡아요”

2025-05-14

제주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로 3년간 근무한 오모(27)씨는 지난해 감정평가사로 전직했다. 그는 초임 때 바로 담임을 맡아 아이들의 싸움을 중재하다 “왜 다른 아이만 잘 해주고 우리 애는 무시하냐”는 학부모들 항의를 받고서 교직에 회의감이 들었다. 이후 담임은 못 하겠다고 피했는데 교장이 “6학년 담임을 맡아 달라”고 하자 지난해 3월 사직서를 냈다.

오씨는 부동산에 관심이 많아 감정평가사 자격증을 취득했던 터여서 지난해 하반기에 한 감정평가법인에 취업했다. 오씨는 “직업 안정성을 기대하며 교대 4년, 교직 생활 3년을 거쳤지만 개인적인 발전은 없고 일상은 반복됐다”며 “일의 난도는 높아졌지만 훨씬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교사 전직 러시…지난해 중도 퇴직 교사 9194명 역대 최대

15일 제44회 스승의날을 맞았지만 교단을 떠나는 교사들이 최근 급증하고 있다. 백승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교육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2024년 사이 정년 전에 퇴직한 교원은 총 3만 6748명으로 집계됐다. 초등교사가 1만5543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등교사 1만2352명, 고등교사 8853명이 뒤를 이었다. 2020년 6512명부터 매년 꾸준히 증가해 지난해엔 9194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2년간 일했던 한상민(28)씨도 이 중 한 명이다. 그 역시 지난해 교편을 내려놓고 올해 로스쿨에 입학했다. 한씨는 학부모로부터 “우리 아이는 SKY(서울·고려·연세대)에 보낼 건데 담임이 SKY 출신이 아니라 걱정된다”는 말을 들었고, 학생들은 단체 채팅방에서 한씨의 신체 특징을 갖고 놀렸다고 했다.

한씨는 “당시 서이초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을 보고 더는 버틸 자신이 없어 법학적성시험(LEET)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며 “로스쿨 면접에선 교직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 내 분쟁 해결을 돕는 법조인이 되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학교 근처엔 다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고양시 소재 한 고등학교에서 역사교사로 4년간 일하다가 2년 전 증권사에 입사한 김지연(34)씨는 전직을 결심한 이유로 낮은 급여를 꼽았다. 그는 “학교에선 행정 업무와 수업 준비로 거의 매일 야근을 했다”며 “초봉이 연 3000~4000만원 수준이었는데 이대로는 집도 못 사고 결혼도 어려울 것 같았다. 증권사로 옮긴 뒤 연봉이 두 배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담임 기피에 보건교사가 담임 맡아…초등교사 "이직 원한다"

의욕을 잃은 교사들이 퇴직을 비롯해 휴직, 담임 기피 등을 하면서 교사가 부족해 보건교사 등 비교과 교사가 담임을 맡는 경우도 생겼다. 수도권의 한 중학교 3년 차 보건교사인 최모(33)씨는 정교사 자격증이 있어 올해 초 교장의 권유로 담임을 맡았다. 담임을 맡으려는 이가 없어 교장이 수차례 설득했다고 한다. 최씨는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좋은 교사가 되려면 담임을 한 번쯤 해봐야겠다 싶어 수락했는데, 진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기록부 쓰는 일도 낯설고 학부모도 나를 못 믿는 눈치라 전보다 2배는 힘들다”며 “그래도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보람을 느끼면서 견딘다”고 토로했다.

교단을 떠나려는 움직임은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더 두드러진다. 지난해 서울시교육청교육연구정보원이 서울 시내 초·중·고 교사 25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 결과에 따르면, 초등교사의 42.5%가 “기회가 된다면 이직하고자 한다”고 답했다. 중등교사(34.8%), 고등교사(34.7%)의 응답률도 높았다. 특히 이 중 8~13년 차 젊은 초등교사들이 이직을 원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60%가 넘었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2025학년도 일부 교대의 평균 합격선은 수시 일반전형의 경우 6등급, 정시는 4등급까지 하락했다.

14일 블라인드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교사에서 개발자·공무원·회계사 등으로 전직 방법 등을 문의하는 글이 수백여 개 올라와 있었다. “초등교사 10년차인데 현실적으로 이직 가능한가”라거나 “만족하려 노력해봤지만 이 직업의 장점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는 등의 문의였다. 해당 게시글엔 개발자, 자영업, 공기업 등을 추천하는 댓글이 달렸다. 교대나 사범대 학생들은 졸업 후 교직 이외 진로를 묻기도 했다.

교사 ‘전직 러시’ 현상은 공교육 붕괴에 따른 교권 추락과 극심한 학부모 민원 등 교육 환경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지난해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4234건으로, 이 중 3925건이 교육 활동 침해로 인정됐다.

'교권 5법' 실효성은 의문…현장 교사 "대응책 부족"

교원지위법 개정 등 ‘교권 보호 5법’이 대책으로 도입됐지만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크다. 서울 소재 한 중학교 교사 김모(26)씨는 “문제 발생 시 교사와 학생을 분리할 권한을 명시하고 있지만 잠시 위(Wee) 클래스에 데려가는 것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김병찬 경희대 교육학과 교수는 “과도한 민원이나 공격을 당했을 때 교사가 실질적으로 취할 수 있는 대응책이 부족하다”며 “정당한 교육활동에 대해서는 아동학대 적용을 배제하도록 아동복지법을 개정하고, 무분별한 민원이나 허위 신고를 하는 경우엔 업무방해 등의 처벌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원지위법 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낮은 처우도 요인 중 하나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발표한 ‘OECD 교육지표 2024’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공립학교 초임교사의 법정 급여는 3만6639달러로 OECD 평균인 4만2060달러보다 13% 적다. 박주호 한양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사에게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기대는 높은데 처우는 낮고 학부모 민원 등 스트레스 요소는 크다”며 “처우 개선 없이는 문제를 풀 수 없다”고 진단했다.

줄어드는 학생 수만큼 교대 정원을 줄이고 교육 환경 개선에 힘써야 한다는 대안도 나온다. 박주형 경인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2000년대 초반과 같은 교사 부족 사태가 또 나타나지 않게 모집 정원을 전년도 대비 약 12% 감축하기로 합의됐다”며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학급당 학생 수를 줄여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구조도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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