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산티아고 순례’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연 책을 생각했다. 그가 가진 인문학적 감성이나 통찰을 미루어 다녀오면 틀림없이 감상을 담아두지만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여기서 그는 최현덕(58)이고 책은 ‘걷다 보면 알게 될 지도’(acc스튜디오 펴냄)로 출판됐다.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순례자를 구도자로 만들고 누구나 그 감흥을 평생 자산으로 삼는 것이기에 소재 자체는 새롭지 않았다.
다만 조그만 포켓 사이즈에 담긴 내용은 눈길을 붙잡았다. 글은 순례길을 이야기하지만 행간은 작가의 올곧은 인생을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순례길 21일 차를 맞아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에서 오 세브르레이로까지 산속 험지를 오르내리는 31km 걷기를 감행했다. 그리곤 묻는다. “당신은 지금 인생길의 오르막과 내리막 중 어디에 계신가요?”라고.
사실 여행에 나서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고 많은 정보를 담아오지만 독자 입장에서 두고두고 생각나는 테제는 1~2가지에 그친다. 필자는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묻는 저자의 질문에 한동안 눈을 멈춰야 했다.
아마도 저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서가에 꽂힌 이 책을 볼 때면 스스로에게 자문(自問)할 것이다.
저자는 고집이 세다. 인생도 편한 것보다는 고단한 삶을 택했다.
그는 행정고시 합격(36회) 후 많은 날을 공무원으로 살았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OECD 등을 거치며 능력이 경륜으로 변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느닷없이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거칠 게 없었다. 고위 공무원으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말리는 이들이 많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또 정치를 하려면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당을 선택하라는 주위의 충고도 듣지 않았다. 정치를 하겠다는 그의 신념은 오랜 소신에서 비롯됐고 그를 고난의 길로 몰았다.
국회의원 선거와 시장 선거에 나섰으나 당내 경선이라는 1차 관문도 통과하지 못했다. 현실은 냉정했고 정치 구도는 암담했다. 하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는 현실이고 살아있는 생물이라며 정당을 바꾸라는 주변의 끈질긴 유혹을 떨쳐냈다.
그래서 인지 글에서 타협하지 않는 신념이 내비치기도 한다.
필자는 산티아고 순례길 29일을 걸은 추동력은 냉혹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으려는 저자의 몸부림이었다고 읽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저자는 생일을 맞았다는데 아마 계획된 것이리라.
얼핏 270여 쪽의 책은 여행 가이드로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꿈을 이루기 위한 거친 여정에 나서며 스스로를 향한 다짐으로 읽히는 건 왜일까.
그는 에필로그에서 “이제 순례는 끝났지만, 인생이라는 가장 긴 순례는 여전히 진행형”이라며 “앞으로 펼쳐질 인생의 순례길은, 그것이 어떤 길일지라도, 어깨펴고 당당하게 걸어가겠다”고 열어놓았다.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