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불어민주당과 국토교통부가 인천국제공항공사 청사를 불법 점거한 노조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라고 압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노란봉투법(노조법 2ㆍ3조 개정안)’ 통과 이후 불법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가운데, ‘친노동’ 기조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공공기관인 인천공항이 불법 시위에 면죄부를 주는 건 잘못된 선례로 남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인천공항공사 등에 따르면 한국노총 산하 한마음인천공항노동조합은 지난달 4일 오전 청사 로비를 불법 점거한 채 11일간 시위를 진행했다. 공항공사가 방역 업체인 ‘세스코’와 신규 용역 계약을 체결하면서 기존의 명문코리아 소속 위생소독 용역 근로자 20여 명이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 이유였다. 이들은 100% 고용 승계를 요구했고, 공사의 중재 끝에 80%가 재고용됐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노조 시위의 불법성이다. 공항공사 측은 청사 점거를 주도한 한마음노조 위원장을 업무방해, 주거침입 및 퇴거불응으로 지난달 5일 고소했고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 공항공사는 “고용 승계 문제와 별개로 불법 청사 점거행위에 대한 고소는 공공기관이자 시설관리자로서 ‘법과 원칙’에 의거한 것”이라며 “청사가 불법점거 당한 사례는 창사 이래 최초이며, 적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선례로 남아 질서 문란 행위가 반복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당은 물론 인천공항공사의 감독기관인 국토교통부까지 나서서 고소 취하를 압박하고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중앙일보에 “민주당이 약자의 편에 선다며 목소리를 내는 것까진 그렇다 치고, 중립을 지켜야 할 국토부까지 나서서 산하기관에 불법 시위를 용인하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인천공항공사가 국토부에 고소 취하의 근거가 될만한 유권해석이나 지침을 문서화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그건 국토부가 거절했다”고 전했다.
앞서 민주당은 지난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학재 인천공항공사 사장에게 노골적으로 고소 취하를 강요했다. 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불법 파업은) 공사가 잘못해서 발생한 부분도 있는데 노동자에게 사과는 못 할망정 고소를 하느냐”며 “취하할 생각 없냐”고 질타했다. 국토교통위원장인 맹성규 의원도 “고소 취하할 생각 있나” 묻고는 국토부에 “다음 회의 때까지 공항공사를 설득하든 국토부가 입장을 정해서 정리해달라”고 했다.
이학재 사장은 “불법 점거해도 합의만 하면 없었던 일로 한다는 아주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는 것”이라며 “다른 정부종합청사나 국가 공기업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도읍 국민의힘 의원도 “불법적 업무방해는 재발 방지를 해야 한다”며 “고소 취하를 강제하는 건 국회의원의 직권남용”이라고 비판했다.
만약 고소를 취하할 경우 형평성 논란도 불가피하다. 인천공항은 과거 유사한 불법 시위에도 동일하게 고소로 대응해왔다. 지난해 7월에도 자회사 노조원 200여 명이 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파업 집회를 이어가자 공항 운영을 방해한 혐의로 고소했다.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사실상 어려워질 거란 우려가 크다. 정치권은 법 시행 이전임에도 오히려 기업을 상대로 불법 행위에 대한 손배 청구 취하를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 7월 현대차ㆍ현대제철에 과거 파업 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취하하라고 요청했다. 두 회사는 지난달 중순 각각 3억원대, 46억원대 손배소를 취하했다. 민주당은 한화오션에도 2022년 파업 하청노동자를 상대로 제기한 470억원 손배소를 취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가져야 할 기본 원칙은 ‘노사관계의 공정한 해결’인데, 노동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공정성 자체를 무시해선 안 된다”며 “잘못은 분명히 지적해서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향후 법원에서 정상참작을 할 순 있어도 불법 행위에 대해 고소를 취하하라고 하는 건 안 된다”며 “노란봉투법 조차도 불법 행위에 일단 책임은 묻되, 사정이 어려우면 감면을 해주도록 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