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알받이’에서 ‘강군’으로 거듭난 북한군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2025-04-30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를 돕기 위해 북한이 대규모 군대를 보낸 사실이 처음 확인된 것은 지난 2024년 10월이다. 당시 우리 국가정보원은 “북한이 러시아 파병을 위한 특수부대 병력 이동을 시작했다”며 그 규모가 1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2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뒤 엄청난 인명피해가 발생함에 따라 병사 보충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서방 언론은 우크라이나군과 비교해 러시아군 전사자가 훨씬 많은 이유로 이른바 ‘고기 분쇄기’ 전술을 지목했다. 이는 사상자가 얼마나 많이 발생하든 개의치 않고 무리한 공격을 계속하는 것으로 ‘인해전술’로 불린다. 분쇄기에 들어간 고깃덩어리가 투입과 거의 동시에 잘게 잘려져 나오는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보라.

러시아군 일원으로 참전한 북한군도 초반에는 마치 분쇄기에 넣어진 고깃덩어리처럼 속수무책으로 우크라이나군에게 당했다. 현대전에 익숙치 않은 북한군 장병들은 특히 우크라이나군의 드론(무인기) 공격에 극도로 취약했다. 주변에 사람은 안 보이는데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드론이 총을 쏘고 폭탄을 투하하니 혼비백산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정원은 지난 2024년 12월 “북한군이 전선 돌격대 역할로 소모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군이 사실상 러시아군을 위한 총알받이로 전락했다는 뜻이다. 30일 국정원이 국회에 보고한 최신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군 장병 1만5000명 가운데 사망자 600명을 포함해 총 470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참으로 끔찍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지난 2월 국내 언론이 러시아군 소속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됐다가 포로로 붙잡힌 북한군 병사 리모(26)씨와 인터뷰한 뒤 이를 보도했다. 리씨는 파병 과정에 대해 “유학생으로 훈련한다고 (러시아에 왔으며) 전투에 참가할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북한) 군대 안에서 포로는 변절이나 같다”고도 했다. 그가 북한에 돌아간다면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울 것임을 짐작케 한다. 최근 북한군이 러시아군 일원으로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싸운 사실을 북한과 러시아 둘 다 공식 인정함에 따라 전후 리씨는 포로 교환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다. 자국 청년들을 이역만리 사지에 몰아넣고 그렇게 해서 번 외화로 핵무기·미사일 개발에만 열을 올리는 김정은 체제의 비인간성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다.

약 6개월간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전투에 참여하며 북한군은 상당한 수준의 실전 경험을 쌓았다. 러시아가 자국군의 승리에 북한군이 기여한 점을 높이 평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적국인 우크라이나조차 북한군의 용기와 능력을 인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정원 역시 “북한군은 파병 초기의 미숙함이 줄고 무인기 등 신형 장비에 익숙해지면서 전투력이 상당히 향상됐다”고 지적했다. 그간 병력 규모는 북한군보다 훨씬 작지만 첨단 무기 보유와 운용 등 현대전에 요구되는 역량은 우리가 더 낫다고 자부해 온 한국군이 위기감을 느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실전에 뛰어들 수 없다면 실전을 방불케 하는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북한의 어떤 도발에도 맞설 수 있는 강군(强軍)을 만들어야 한다.

김태훈 논설위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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