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결단과 쇄신만이 난국 푸는 열쇠

2024-10-30

김건희 여사 논란 속 맞는 임기반환점

영원불변한 건 세상에 없다. 나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운명을 비껴가지 못한다. 성자필쇠(盛者必衰)다. 한때의 제국들도 예외 없이 굴기와 쇠퇴를 겪었다. 스페인·영국·러시아 등 9개 국가의 흥망을 연구한 『강대국의 흥망성쇠』의 저자 저우둥라이(朱東來) 교수(난징 정치학원)는 ‘장수하는 강대국’의 비결이 내부 통합과 단결에 있다고 단언한다. “통합이 밑바탕 돼야 종합 국력의 역량을 집중해 과학기술의 진보와 제도 혁신을 실현하고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2차대전 패망 후 독일이 강국이 된 건 ‘통일 독일’이 됐기 때문이고, 미국도 내전을 매듭짓고 분열의 위험을 타파하고 나서 비로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준내전 상태에 접어든 갈등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충고 같다.

리더가 조롱받으면 국정운영 못해

“김 여사 수사, 공적 활동 중단해야”

안팎의 쓰나미 리스크 돌파하려면

실종된 정치 회복 실기하지 말아야

세계는 한국을 전쟁과 굶주림을 딛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K컬처의 나라로 기억한다. 그 대한민국이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북한의 러시아전 파병,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의 재집권 가능성,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확전, 대만 해협의 위기 고조, 불확실성이 높아진 일본 정치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동시다발로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내부도 어수선하다. 고물가·고금리로 인한 민생 악화와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간판 기업 ‘삼성 위기론’이 나돌 정도로 산업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국가 리더십은 거의 작동하지 않는다. 대통령 부인 문제로 추락하는 정권의 지지율과 대통령실-여당의 갈등, 내전 수준의 진영 충돌이 상황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윤여준 전 의원은 “외생변수는 항상 있었던 것이지만, 대비가 잘 안 이뤄진 상태에서 내외적 위기가 한꺼번에 닥치고 있어 아주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권의 중견 정치인은 “과거 같으면 물가나 가계부채 같은 문제 하나만 터져도 당정이다, 긴급 대책이다 해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3중, 4중의 위기가 한꺼번에 몰려오는데 용산도, 여의도도 고요하기만 하다. 다들 체념해선 그런지 정말 이해가 안 간다”고 탄식했다. 여태껏 겪어보지 못했던 동시다발적 전방위 위기에서 우리는 다시 헤어날 수 있을까.

부인 위해 나라 버리는 형국 돼선 안 돼

지난 2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주간 여론조사 결과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20%였다. 집권 후 최저치다. 진앙은 김건희 여사. 부정 평가의 1위가 김 여사(15%), 2위가 민생 경제(14%)였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과 주고받은 ‘철없이 떠드는 우리 오빠’ 같은 수준 이하의 카톡 문구가 공개되고, ‘툭하면 화내고 90% 이상 자기 말만 한다’는 윤 대통령의 내밀한 일상이 한때 참모였다는 사람의 발언으로 외부에 알려지면서 지지층마저 떠나고 있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필요하면 특검을 받든지, 검찰에 가든지 김 여사 문제를 해소하지 않고선 국정 운영이 어렵다. 부인을 위해 나라를 버리는 형국이 돼선 안 된다. 설사 감옥에 보내더라도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했다. 이명박 정부 운영에 깊숙이 관여했던 백용호 전 정책실장도 “윤 대통령이 늘 시장을 중시하라고 했는데, 시장이 민심이고 민심이 시장이다. 지금 민심은 김 여사가 투명하게 조사를 받고 문제 있으면 응당 책임지라는 것이다.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객관적 조사가 이뤄지고 정당한 처벌을 받아야 공정한 사회가 된다”고 강조했다. 결국 윤 대통령의 결단이 열쇠란 얘기다. 백 전 실장은 또 “리더가 가십과 조롱거리가 되면 정부의 영(令)이 안 선다. 마키아벨리도 군주가 조롱의 대상이 돼선 안 된다, 차라리 무서운 존재가 되라고 하지 않았나. 시대가 다르다지만 김 여사 문제가 대통령의 결정적인 하자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윤여준 전 의원은 “대통령이 사과하고 김건희 여사도 사과와 함께 공적 역할을 안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 한 번 속았지만 그래도 한 번은 더 참아줄 것”이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 운영에 참여했던 김성재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지금 대통령이 안 보인다”며 “윤 대통령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했는지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대통령은 정당의 대표도, 김건희의 남편도 아니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므로 대통령직에 충실히 하는 게 소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사과도, 특별감찰관도 지금은 무의미해진 것 아닌가 본다. 더 실기하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물가·집값 상승은 정책의 실패

이명박 정부에서 공정거래위원장·국세청장을 지낸 백용호 전 실장은 민생이 위협받는 상황도 위험 요소로 봤다. 자칫 자본주의 체제를 흔들 수 있는 쓰나미로 돌변할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같은 물가·집값 상승은 거시 정책의 실패다. 서민들이 이런 집값·물가 상승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나. 먼저 세수 추계부터 제대로 해라. 세수 추계의 문제, 국가 채무의 증가가 결과적으로 통화량 증가로 이어진다. MB 때 재정 운용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강북 자사고 지원해 학군 수요를 분산하는 등의 노력으로 아파트값을 떨어뜨렸다.

통화 증발 요인을 원천적으로 타이트하게 관리하면 물가는 잡힌다. 리더의 지혜와 용기란 밀어붙이고, 야당과 싸우고, 국민에게 각인시키는 게 아니다. 의대 증원 2000명을 발표하는 게 용기가 아니고, 정교하고 세심하게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어 2000명 증원 정책을 성공시키는 게 용기다.

인간이 빈곤해지고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 어떤 체제인가는 중요하지 않게 된다. 임계점을 넘어가기 전에 대통령 이하 관료들, 가진 자들이 각성해야 한다. 정책 기조를 서민경제에 맞추는 자세가 필요하다. 서민 이익을 대표했던 로마 시대 호민관의 자세를 갖지 않으면 양극화 문제는 풀 수 없다.”

탄핵의 일상화, 공멸 자초할 뿐

취재 과정에서 만나 정치 원로들은 한결같이 탄핵이라는 파국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탄핵이 또 다른 탄핵을 부르는, 탄핵의 일상화는 공멸을 자초할 뿐이란 이유에서다. 황금 거위의 배를 가르는 이판사판식 방식은 정권의 실패를 넘어 국가의 생존마저 위협할 수 있다.

윤여준 전 의원은 ‘탄핵’을 만능키인 양 외치는 야당을 비판했다. “저 사람한테 나라를 맡기면 잘할 것이라는 신뢰를 줘야지 싸움이나 해서는 희망이 없다”며 “김정은·시진핑이 볼 때 (현 정권이) 국가 운영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찔하다”고 말했다. 백용호 전 실장은 “IMF 위기 때 결혼반지, 돌반지 내놓았던 금 모으기는 대한민국 역사를 상징적으로 바꾼 사건이었다”며 “그런 국민이 있다는 걸 믿고 민심에 부응한다면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임계점을 넘어서면 그 어떤 해법도 소용없지 않겠나”며 정치 회복을 주문했다.

다음 달 10일이면 대통령 임기의 절반이 되는 임기 반환점이다. 이를 계기로 대대적 쇄신책을 내놔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권 내에서도 모이고 있다. 정치가 실종된 이 시점이 오히려 정치를 되살려 작동케 하는 시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개헌 주장도 그중 하나다. 김성재 전 장관은 “윤 대통령이 결단해 임기를 단축하고 국민통합 차원에서 여야 합의의 개헌을 제안한다면 수습책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비정치적 지도자, 멍청하다는 뜻”

성자필쇠라고는 하나 수십 년 만에 무너지는 나라도 있고 수백 년 번영을 구가한 국가도 있다. 희비를 가르는 게 리더십이다. 윤 대통령은 그간 ‘정치적 타협’과는 선을 그었다. 형사 피의자라는 이유로 2년여 야당 대표를 냉대했고, 자신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은 우군이라도 자리를 빼앗거나 당 밖으로 내쳤다. 야당의 노골적인 대통령 망신주기에 반발해 국회 개원식(9월 2일)에 불참한 데 이어 11월 초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도 건너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건희 논란엔 “힘든 상황이지만 업보로 생각하고 좌고우면하지 않겠다” “돌을 던져도 맞고 가겠다”며 ‘마이 웨이’를 부르고 있다. 수사 검사로는 훌륭한 덕목일지 모르나 대통령이 취할 태도는 아니다. 대통령 권력이란 선거를 통해 국민이 일시적으로 맡겨놓은 것이기 때문에, 국민은 언제든지 위임했던 권한을 회수할 권리가 있다. 대통령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는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국익의 명령을 실행해야 하는 책무다. “하고 싶은 말을 하기보다 해야 할 일이 뭐냐를 찾아야 한다”(한광옥 전 민주당 대표)는 고언도 같은 맥락이다.

헨리 키신저는 저서 『리더십』에서 “리더는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각하고 행동한다. 첫째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축이고, 둘째는 불변의 가치와 리더를 따르는 사람의 열망을 잇는 축”이라고 강조했다. 전후 현대 독일의 기초를 놓은 콘래드 아데나워를 인용해 이런 말도 했다. “정치 지도자가 비정치적이라는 것이야말로 멍청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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