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가 보는 한국 : 중요하지만 원하진 않는 사정

2024-10-30

지난 기사

1. 동남아는 왜 미국보다 중국에 기울었나

본 연재는 동남아시아 정세를 동남아 국민들의 시각에서 다룬 기사다. 동남아시아가 어떤 지역이냐 묻는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1. 경제 발전기로서 자본주의 시장의 기회가 된 지역

2. 동서 무역의 지리적 의미가 중요한 지역

3. 미·중 패권이 아주 격렬하게 충돌하는 지역

세계 속 동남아

아세안(동남아시아 국가 연합)에 속한 국가들

그러나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국내에서 동남아는 그 존재감이 사라졌다. 여행 갈 때 알아보는 지역 정도로 취급되는 현실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외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할까? 미국과 일본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아바타와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감만 존재할 뿐이다. 특히 일본과의 관계는 정도를 넘어섰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일본 총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더하여 냉전 체제가 끝난 지 30년이 더 지났음에도, 그 시절의 이념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구한말처럼 패권이 충돌하고 세계의 흐름이 급변하는 시기는 지도자의 대처가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런 시기에 문재인 정부 때보다 좁아진 윤 정부의 외교 범위로 인해, “한국인”의 세계관도 좁아졌다고 느껴진다.

본 연재는 좁아진 세계관을 다시금 확장하는 데 의의를 둔다. 우리의 세계관에서 사라진 곳, 동남아시아 정세를 그들의 입장에서 한번 보자는 얘기다. 그걸 알아야 상대방이 원하는 걸 주고 우리가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 것 아닌가.

세상은 그것을 “외교”라고 부른다.

질답으로 푸는 동남아 정세

본 연재는 ‘동남아 정세 분석’에 관해 가장 권위 있는 기관으로 꼽히는 싱가포르 ‘유소프 이삭 동남아시아연구원(ISEAS–Yusof Ishak Institute, ISEAS)’이 동남아 국민의 여론을 직접 물어보고 작성한 보고서(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를 기반으로 작성했다. (해당 보고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지난 기사(링크) 참조)

해당 보고서 표지와 첫 장

지난 기사에서는 동남아에서 첨예하게 부딪치고 있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2024년 현재, 동남아 국민들의 여론은 어디로 쏠려 있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알아봤다.

미·중 패권 전쟁 속에서 동남아 국민들은 고민이 많았다. 이들이 내놓은 답변 중에는 무조건 미국과 중국 중 하나만을 택하기보다 제3세력과 연대하여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슬기롭게 이익을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이 꽤 높은 비율로 나왔다.

ISEAS는 여기서 한층 더 자세히 물어봤다.

Q5. 제3세력과 연대한다면, 어떤 국가를 주요 대상으로 생각하는가?

1. 유럽연합 (37.2%)

2. 일본 (27.7%)

3. 인도 (10.5%)

4. 호주 (9.5%)

5. 영국 (9.2%)

6. 한국 (5.9%)

제3세력 중에서는 유럽연합이 1순위로 뽑혔지만, 작년에 비해서는 큰 폭(5.7%)으로 하락한 수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중동 전쟁까지 연달아 터지며 유럽연합의 외교에서 아세안 이슈가 밀려나며 소외된 면이 있는데, 이로 인한 영향으로 보인다.

한국은 보기에 언급된 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그 이유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다른 질문을 같이 봐야 한다.

Q6. 대화 상대국 중 아세안에 의미 있는 전략적 협력 대상 순위는?

이 질문에서는 아세안에 전통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던 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이 가장 높은 순위로 나왔다. 중국, 미국, 일본, 유럽연합에 이어 5위다. 영국보다도 높은 순위다. 한국은 원래 조사에 대상국으로 보기에도 없다가 2020년부터 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2024년에는 5위까지 했으니, 동남아에서 한국의 영향력이 크게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Q5 질문에서는 최하위로 나왔을까?

한국이 아세안에 중요한 협력 대상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당장 급한 미·중의 전략 경쟁 맥락에서 전략적 협력 대상으로는 그 중요성이 떨어진다고 여기는 것이다.

왜 그렇게 여길까?

가장 큰 이유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국이 미국 일변도의 목소리만 내기 때문이다. 미국이 하라는 대로만 하니 한국이 별도의 전략적 중요성을 가진다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다.

한-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는 동남아 여러 언론에서도 보도된 내용이다.

동남아 언론은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외교 방향을 이렇게 비교한다.

문재인 정부

‘아세안과 주요 강대국 수준으로 외교 하겠다.’

윤석열 정부

‘아세안을 가장 중요한 협력 파트너로 취급하겠다.’

외교의 수준이 문재인 정부 때보다 낮아진 것이다. 동남아 언론은 이렇게 평가한다.

‘한국의 관심이 아세안으로부터 멀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동남아 10개국을 모두 방문한 첫 번째 한국 대통령으로서 광범위하게 아세안 외교를 추진한 반면, 윤석열 대통령은 주로 미국, 일본, 유럽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들에게 더 중점을 두고 있다.’

위와 같은 동남아 언론의 평가를 모아

ISEAS(유소프 이삭 동남아시아연구원)의

Eugene R.L. Tan 연구원이 작성한

기사의 일부

출처- 링크

그 결과 한국의 동남아 외교에 대한 동남아 언론의 관심은 크게 줄었다. 문재인 정부 때와 비교해서 한국이 내는 외교 목소리에 대해 다룬 기사의 수도 현저히 줄었다.

동남아 언론이

문재인 정부의 동남아 정책(파란)과

윤석열 정부의 동남아 정책(빨강)에

대해 보도한 기사 수를 비교한 것

출처- 링크

Q7. (아세안 입장에서 기존 주요 국가인 5개국 미국, 유럽연합, 중국, 일본, 인도를 대상으로) 어느 국가가 세계 평화, 안보, 번영, 거버넌스에 기여하기 위해 가장 올바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5개 국가에 대한 신뢰도 추이

출처-<싱가포르 ISEAS의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결과 분석 보고서,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1위 일본

2위 미국

3위 유럽연합

4위 중국

5위 인도

아세안에 속한 10개국 모두 일본을 가장 신뢰하는 국가로 뽑았다. 그냥 1위도 아니고 압도적인 1위였다.

출처-<싱가포르 ISEAS의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결과 분석 보고서,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미국은 신뢰도 2위를 차지했다. 위 표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을 가장 신뢰하는 국가로 뽑은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1. 미국의 경제적 자원 및 정치적 의지

2. 군사력

다만, 그 추이를 보자면 2023년에 비해 신뢰도가 대폭 하락했다. 이유는 지난 기사에서 언급했듯, 현재 벌어지고 있는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만 드는 미국의 행태에 크게 실망한 탓이다. (더욱 자세한 내용은 지난 기사(링크) 참조)

지난 4월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이스라엘 규탄 시위

일본을 신뢰하는 주요 이유는 이랬다.

1. 국제법 준수에 대한 책임감

2. 일본의 경제적 자원 및 정치적 의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과거사 문제 등으로 인해, 우리에게는 이해 가지 않을 부분이지만, 동남아 국민들은 일본을 이런 시선으로 봤다.

일본을 신뢰하는 주요 이유를 자세히 보면, 직접적으로 행사되는 힘이 아니다. 비물리적, 도덕적, 관습적 영향력을 끼치는 간접적 성격의 힘이다. 즉, 소프트파워라는 것. 이건 일본이 오랜 기간 동남아 국가들과 교류하며 이런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1970년대 이후 동남아를 대상으로 꾸준히 대외 원조와 교류를 진행했는데, 이런 부분이 쌓여 높은 신뢰를 받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 연합도 미국처럼 과거보다 신뢰 지수가 떨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고 또 중동 전쟁이 터지며 유럽 연합의 외교에서 아세안 이슈가 밀려나며 소외된 면이 있는데, 이로 인한 영향으로 보인다.

최하위 신뢰도를 차지한 건 중국, 인도였다. 그 주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중국

1. 중국의 경제적, 군사적 힘이 자국에 위협적일 수 있다.

2. 중국은 믿을만한 혹은 책임 있는 파트너라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

1. (인도는 강한 힘을 갖고 있는 지역 패권국임에도) 세계적 리더십을 위한 정치적 역량과 의지가 없다.

2. 인도 및 지역(남아시아) 문제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즉, 동남아 문제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중국에 대해서는 베트남, 필리핀, 미얀마에서 특히 우려가 컸다. 베트남과 필리핀의 경우는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과 갈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국가들은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중국으로부터 직간접적 경제, 군사적 위협을 받고 있다. 중국 선박 및 공안이 남중국해에서 베트남과 필리핀의 어선 및 해경 등을 공격하는 사례도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 인근에서

중국 해경선들이 필리핀 해경선(가운데)을

물대포로 공격하는 모습

스카버러 암초 위치

출처-<구글 지도>

필리핀군은

지난 6월 남중국해에서

중국 해안경비대가

필리핀군에게 접근하여

흉기로 공격했다고 했다.

이로 인해, 한 필리핀 군인은

엄지손가락이 잘렸다고 했다.

중국은 이에 대해,

사실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출처-<필리핀군이 공개한 영상 캡처>

이들의 갈등은 심각한 수준이다. 3주 전에 열렸던 아세안 정상회의에서는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과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이 문제로 인해 직접적으로 맞붙기까지 했을 정도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끊임없는 괴롭힘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국제법을 위반하는 국가로 인해 긴장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남중국해 문제는 외부 세력들이 블록 간 대치 상황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아시아 내 지정학적 갈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외부 세력은 미국과 미 동맹국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은 일본 NHK와의 인터뷰에서,

‘아세안 국가들이 (본인 국가 문제가 아니라고) 남중국해 상황에 대해 모른 척하고 있다. 국제법 위반행위에 관한 아세안의 침묵은 아세안의 입지를 좁게 만들 것이다.’

라고도 했다.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출처-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출처-

미얀마의 경우는 2021년 2월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지금까지 집권하고 있는데, 중국은 이 군부에 우호적 태도를 보이며 지원하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이런 중국에 행태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국에 특히 많은 우려를 표했다.

이러한 결과가 나오자 ISEAS(유소프 이삭 동남아시아연구원)는 추가로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면 중국이 자국 이미지 개선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복수 답변도 가능합니다.”

<계속>

같이 보면 좋은 기사

1.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편

2. 말레이시아, 베트남 편

3. 태국, 필리핀 편

4. 캄보디아, 라오스 편

(feat.아프리카)

5. 미얀마 편

(feat.러시아에 대한 아세안 각국의 태도)

참고 및 인용 자료

(1)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REPORT

(2) 싱가포르 ISEAS의 THE State of Southeast Asia 2024 Survey 결과 분석 보고서(고려대학교 아세안 센터 / 신재혁 엮음, 김형준, 이재현, 서정인, 정호재 지음)

(3) 아세안주간동향 WEEKLY ASEAN-Mission of the Republic of Korea to ASEAN(주아세안대한민국대표부)

(4) 유튜브 채널 '윤진표교수의 아세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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