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만 쫓는 사회가 실패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2024-11-19

“정작 교수님은 실패해 본 적이 별로 없지 않나요?”

조성호 카이스트(KAIST) 실패연구소 소장(전산학부 교수)이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는 “유학 중 뜻하지 않게 전공을 바꾸기도 했고 교수가 되는 과정에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다”며 “세상 일이 뜻대로만 되지 않고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지만 그걸 어떻게 극복해 내느냐가 다른 결과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는 최근 학내에서 ‘제2회 실패학회’를 열었다. 학생들이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열고, 반려·불합격 인증 사진 등을 모아 콜라주 형태의 작품을 만들어 전시했다. 실패학회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과 혁신을 장려한다는 취지로 지난해 처음 시작된 행사다.

이공계 최고 인재들이 모인다는 카이스트는 왜 이런 행사를 열게 된 것일까. 카이스트는 과학기술 특성화대학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는 학습·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2021년 실패연구소를 만들었다. 조 소장이 지난해 2대 소장을 맡으면서 처음 기획한 행사가 바로 실패학회였다.

지난 13일 대전 유성구 어은동 카이스트 캠퍼스에서 만난 조 소장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아무리 떠들어봐야 소용 없고, 전문가들의 강연도 학생들에게는 와닿지 않는다”며 “스스로 실패 경험을 용기있게 이야기하고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것이 회복과 극복의 출발점이라는 생각에 그런 장을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학회는 실패를 극복한 성공스토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실패 경험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조 소장은 “우리는 어릴 때부터 실패하면 안되는 것처럼 배운다. 연구도 마찬가지고 결과물은 다 성공한 것만 세상에 나온다”며 “연구를 하다보면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기 마련인데 밖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과정이 왜곡되고 실패하면 큰 일 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카이스트 학생 상당수는 주변의 큰 기대를 받고 자라다보니 뭔가를 실패했다는 얘기를 꺼내기가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행사를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다보면 나만 실패하고 외로운 게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끼며 위안을 받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실패학회는 학내 행사로 기획됐지만 외부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조 소장은 “지난해 생각보다 큰 관심에 놀랐고, 외부 기관이나 기업에서 비슷한 행사를 열고 싶다는 문의도 있었다”며 “올해도 외부에서 찾아오는 분들이 많은데 이게 카이스트만의 문제가 아니고, 그만큼 행사 취지와 주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있다는 의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패연구소는 올해 행사에 앞서 실패에 관한 대국민 인식조사도 진행했다. 조사에서는 우리 사회가 실패를 성장과 학습의 기회로 여기기보다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았다. 젊은 세대일수록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을 두려워하고, 스스로 ‘도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비율도 높았다. 기성세대가 성공에 필요한 요소로 노력이나 도전 정신을 중시하는 반면 젊은 세대는 타고난 재능이나 배경 등 외적 요소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조 소장은 효율성을 쫓는 사회적 분위기를 그 원인으로 분석한다.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라 일컫는 성공 신화를 갖고 있어요. 단기간의 고속성장은 효율성에 기반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려면 시행착오나 실패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그런 성공 방식과 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익숙한 방식으로 젊은 세대를 교육하죠. 경제적 효율성만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인문사회학적 관점이나 정신 역량을 키우기 어렵고,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인재도 나오기 어려운 법입니다.”

조 소장은 실패학회가 일종의 ‘나비효과’를 일으키길 기대한다. 그는 “행사 한두 번으로 많은 걸 바꿀순 없겠지만 누군가 1명이라도 새롭게 도전할 에너지와 희망을 얻는다면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며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려는 노력이 다른 대학, 나아가 국가적 프로젝트로 확대된다면 사회 전반의 변화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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