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본적으로 충족해야 하는 세 가지 분야는 의식주(衣食住)인데, 옷이 제일 앞에 나온다. 예로부터 세속적인 성공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써 호의호식(好衣好食), 금의환향(錦衣還鄕)이라는 말은 매우 시사적이다. 모든 사람은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한다. 여자는 물론이거니와 남자들도 멋진 옷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 있다.
경제 발전 이전의 시대에는 물자가 풍부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많은 가정에서는 형이 입던 옷을 동생에게 물려주는 일이 허다했다. 이웃끼리도 옷을 물려주는 일이 흔했다. 학교에서는 교복을 후배에게 물려주기도 했다. 어른들은 옷이 열 벌 있으면 많은 편이었다. 옷장에는 여러 사람의 옷이 함께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옷이 너무 많아져서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이 많아졌다. 연예인들이나 웬만한 부잣집에 가보면 옷 방이 따로 있고 사계절 옷이 가득하다. 한번 입고 그냥 버리는 옷도 있다. 아예 한 번도 입지 않고 버리는 옷의 비율이 21%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즉석식품(패스트푸드)이 식(食)생활을 바꾸어 놓았다면 패스트 패션이 의(衣)생활을 크게 변화시켰다. 패스트 패션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유행에 따라 소비자의 기호가 바로바로 반영되어 빨리 바뀌는 패션”이라고 쓰여 있다. 전통적인 의류 생산 방식에 따르면 디자인에서부터 생산까지 수개월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20세기 말 패스트 패션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유형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라(Zara), H&M과 같은 지구촌 상표(글로벌 브랜드) 회사들은 디자인에서 제품 출시까지의 시간을 크게 단축하여 최신 유행을 소비자에게 빠르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의류 신제품이 1년에 두 번 나왔다. 그러나 패스트 패션이 유행하면서 한 달 주기로 신제품이 출시된다.
최근에는 울트라 패스트 패션(Ultra Fast Fashion)이 등장하였다. 2008년에 중국에서 설립된 패션 쇼핑몰 쉬인(Shein)은 온라인 승강장(플랫폼)을 활용하여 실시간으로 소비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이를 즉각적으로 반영한다. 쉬인은 패스트 패션보다 훨씬 짧은 주기로 다품종 소량의 값싼 제품을 개발하여 빠르게 배송함으로써 젊은 소비자층에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지구상에서는 1년에 (2020년 기준) 1,000억 벌의 옷이 생산되고 있다고 한다. 2000년 대비 연간 의류생산량은 2배 이상 증가했다. 패스트 패션의 등장으로 저가의 옷이 공급되면서 중ㆍ고소득 국가에서 의류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1년에 평균 50벌 이상의 옷을 산다. 우리나라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 사람이 1년에 8~16벌의 옷을 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MZ세대에만 국한하면 월평균 10만 원을 옷을 사는데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번 산 옷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버려진다. 우리나라에서 폐의류 발생량은 2017년에 약 7만 톤이었는데, 2021년에는 12만 톤으로 급격하게 늘었다. 유행 따라서 값싼 옷을 쉽게 사는 패스트 패션 문화가 젊은 층에서부터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2030년에는 20만 톤의 헌옷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옷을 너무 많이 사고 쉽게 버린다는 환경적 죄책감을 덜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옷을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지 않고 의류수거함에 넣는다. 입지 않는 옷을 의류수거함에 버리면 환경 문제가 해결될까?
헌옷 수거함은 중앙정부나 지방 정부가 아니고 민간회사 소유다. 전국에 헌옷 수거함은 모두 10만 개가 설치되어 있지만 얼마나 많은 옷이 수거되는지 확인할 통계는 아직 없다.
주간 잡지 한겨레21에서는 새해 특집인 제1545호(2025.1.6) 한 권을 통틀어 버린 옷에 관한 탐사 보도로 채웠다. 의류수거함에 넣은 헌옷이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내기 위하여 2024년 7월에 옷, 모자, 신발을 포함하여 모두 153벌의 옷에 추적기를 박음질하여 단 다음 GPS를 이용하여 행방을 추적하였다. 넉 달이 지나 12월 4일에 집계한 결과 153벌의 20%에 해당하는 31개의 옷은 나라 밖에서 발견되었다. 말레이시아에서 10개, 인도에서 8개, 필리핀에서 6개, 태국과 볼리비아에서 각각 2개, 그리고 인도네시아 페루 일본에서 각각 1개가 추적되었다.
의류 수출업계 관계자들 말에 따르면 수출되어 재판매되는 의류는 전체 중고 의류의 1% 미만이다. 한겨레21에서 추적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나라 밖으로 수출된 옷들은 재활용되는 대신 대부분 매립지나 소각장으로 향한다.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240km 떨어진 아란야쁘라텟시에는 거대한 쓰레기 매립지가 있다. 쓰레기 산의 높이는 10m가 넘고 면적은 5km2(축구장 700개 넓이)나 된다. GPS 신호를 따라 이곳을 방문한 한겨레21 기자는 한글로 ‘00키즈 태권도’라고 쓰인 가방과 한글 상표가 붙은 신발을 발견하였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수출된 헌옷의 종착지는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인도의 수도 델리에서 북쪽으로 90km 떨어진 파니파트는 연간 10만 톤의 옷이 전 세계에서 수입되어 재활용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파니파트는 ‘헌 옷의 수도’라고 불린다. 그러나 옷 대부분은 재활용되지 않고 공터에 쌓아놓고는 밤에 불태워버린다. 한겨레21 취재 결과 인도에서 발견된 옷 8개 가운데 5개가 파니파트에서 발견되었다. 타고 남은 옷들 가운데서 추적기를 발견하였는데, 이 옷에는 Made in Korea 표식이 선명했다. 인도로 수출된 헌옷의 종착지는 노천소각장이었다.
수출되지 않고 국내에 남는 옷들은 대부분 재활용되지 않고 불태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수거업체를 거치면, 헌 옷은 생활폐기물에서 산업폐기물로 바뀌어 소각장에서 소각된다. 산업폐기물은 민간업체가 소각하므로 정확한 실태 파악이 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팔리지 않고 남은 옷들 역시 몰래 불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고가의 재고 의류를 소각하는 것은 의류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기업은 팔지 못한 재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명품 의류 회사가 재고를 너무 헐값에 정리하면 상표드 이미지가 훼손되기 때문에 ‘대외비’ 속에 재고 의류를 소각한다. 팔리지 않고 남은 옷들을 몰래 소각하는 것은 불법이다. 엄청난 자원 낭비이며 환경오염 행위다.
조선 말에 최제우(1824~1864)가 제창한 동학사상은 매우 친환경적인 요소가 있다. 동학사상 중에서 특히 삼경사상(三敬思想)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경이란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을 말한다. 경천과 경인은 다른 종교 사상에도 있다. 그러나 경물은 “물건을 공경하라”는 말로서 매우 독특한 사상이다. 물건을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물건을 낭비하고 함부로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다.
현재와 같은 의생활 방식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유행 따라서 싼 옷을 마구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 마음에 드는 옷을 신중하게 고른 다음 애착을 가지고 오래 입어야 한다. 옷 한 벌을 사서 입을 때에 ‘경물’을 실천한다면 의복으로 인한 지구 환경의 오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