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서 온 주지스님 "지혜없는 보시, 상대 망가뜨린다" [더 인터뷰]

2025-10-09

첫 외국인 주지 인공 스님

경기도 양주시 천보산 아래에 자리한 천년 고찰 회암사(檜巖寺)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스승인 무학대사가 머물렀고, 이성계도 퇴위 후에 수도 생활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5월 회암사에 큰 경사가 있었다. 미국 보스턴미술관이 소장 중이던 성물(聖物) 사리가 약 100년 만에 기증 형태로 돌아온 것. 그 중엔 고려 말 회암사의 두 주역인 지공(指空·?~1363) 선사와 그의 제자 나옹(懶翁·1320∼1376) 선사의 사리도 있다. 인도 출신 지공은 1326년 고려로 와서 2년7개월간 불법을 가르쳤고, 무학의 스승인 나옹이 지공의 뜻을 받들어 회암사를 중창했다. 회암사는 이를 기려 부도탑을 짓고 두 선사의 사리를 모셨는데, 일제 강점기 때 유출돼 미국까지 흘러갔다가 돌아왔다.

억겁(億劫)의 인연이란 이런 걸까. '모든 존재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還至本處)'는 불교 용어처럼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 사리를 받들어 모신 이도 인도 출신 회암사 스님이었다. 2009년 한국으로 온 인공(印空·33) 스님이 바로 그다. 사리가 대웅전에 안치되고 한 달 뒤 한국 국적을 취득하며 귀화했다. 그해 9월 주지대행에서 주지로 승격됐다. 조계종 공찰(법인단체 소유자의 등록 사찰)에 외국인 출신 주지가 임명된 최초 사례다.

인공 스님을 만나러 회암사에 간 시점은 추석 연휴 직전이었다. 옛 설법전을 개조한 다실에 들어서자 젊은 스님이 “어서 오세요”라며 한국어로 반갑게 맞아줬다. 인도 북동부 타왕에서 1992년에 태어났지만, 인생의 절반가량을 한국에서 보내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티베트어·힌디어·영어 등 모두 5개 언어를 구사한다. 몽골 혈통이 섞여서 그런지 한국인과 비슷한 외모였다. “한국인이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일이 흔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지공·나옹 선사 사리가 돌아올 때 감회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인연이라 생각한다. 사리 반환을 위해 (불교계가) 10여 년을 노력했는데, 마침 회암사에서 주지 대행을 맡고 있을 때 들어왔다. 주변 스님들이 ‘주인이 제대로 온 것’이라 덕담했다. 외국인, 특히 종교인이 한국 국적 따기가 쉽지 않은데 사리 반환 덕분에 귀화도 가능했다. 이 모든 걸 돌아보면 ‘나는 전생에 100% 한국인이었겠다’ 싶다.”

-인도에서 한국까지 오시게 된 계기는.

“일곱 살 때 겔룩파 계열 티베트 사원에서 출가해 수행 중이었는데, 그곳에 한국인 스님이 유학을 왔다. 한국으로 가서 불교 공부를 해보라 권유했다. 사실 2002년 월드컵 축구 전까지 한국이란 나라를 몰랐다. 사원에선 ‘한국에 가면 행자(출가했으나 계를 받기 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며 말렸지만, 다른 나라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어머니는 ‘네 선택에 맡긴다’고 했다.”

다실 출입문 위쪽엔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어머니 사진이 걸려 있었다. 가끔 통화하며 안부를 나눈다고 했다. 고향의 고아 후원 사업도 하고 있다. 한국 경험을 바탕으로 인도 승려들에게 한국 불교를 권해 벌써 4명이 한국에 왔다. 이들을 포함해 회암사 전체 승려 9명 중 7명이 외국인 출신이다.

“공찰은 주지의 성향에 많이 좌우되는데, 인도 출신이 주지로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인도·네팔·스리랑카 등 다양한 외국 출신 승려들이 하나둘 합류했다”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한국어로 대화하지만, 가끔 막히면 티베트어로 소통한다. 그래도 법회나 예식 등은 모두 한국 불교 전통대로 한다.

-외국 출신 주지라 더 힘든 점은.

“어디든 기본을 잘 지킨다면 책임지고 사찰을 운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은 어른 공경과 어려운 이웃 돕기다. 불교에서 기본은 부처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으로 공물을 바치고, 불자들에게 불법을 잘 전달하며 본인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것이다. 밤 10시까지 보고받고 새벽 예불을 위해 4시 반에 일어나는데 각종 행사에다 학교 공부(동국대 불교대학원)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다.”

-티베트 불교와 한국 불교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승복 색깔과 문화 차이일 뿐 부처님 가르침에 큰 차이는 없다. 티베트 불교 겔룩파는 토론과 논쟁을 우선한 뒤 참선 공부로 나아간다. 반면에 조계종은 선(禪)을 중시하고 선과 교리를 동시에 닦아 수행한다. 깨달음을 구하는 것과 반야부(般若部) 경전에 나오는 공(空) 사상을 중시하면서 청정한 승가를 지켜나가는 것은 공통점이다."

티끌 하나 없이 닦은 방에 놓인 길이 1m가량의 족자가 눈에 띄었다. 검은색 바탕에 금가루로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을 행서체로 썼다. 통도사 승가대학(4년제) 졸업 기념으로 직접 쓴 글씨다. “입학 당시 서예 스승이 산문(山門)을 나갈 때 품고 갈 구절을 쓰라고 해서 4년 내내 연습했고, 정토사상을 중시하는 아미타불 이름을 썼다”고 했다.

-신도들은 주로 무슨 고민을 토로하나.

“대부분 자식 걱정이고, 누가 아픈데 어떻게 하면 나아질까 묻는 경우가 많다. 다리가 아플 땐 다리를 고치는 의사한테 가면 된다고 현실적으로 답해 주는 편이다. 마음이 아프다면 방법을 알려준다.”

-어떤 방법을 알려주나.

“분노 조절이 안 되고 화가 많은 사람에겐 상대방을 이해하는 마음, 이타심을 강조한다. 가만히 지켜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그걸 살펴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불교에서 세상은 인다라망(因陀羅網·Indra's Net)으로 모두 연결돼 있다. 그 속에서 괴로움이냐, 즐거움이냐를 선택하는 것은 내 몫이다. 불교에서 나라는 존재에 불성(佛性)이 있다고 하는데,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괴로움을 선택하면 잘못된 거다. 한없이 줄일 수도, 넓힐 수도 있는 게 마음이다.”

-참기만 하면 ‘호구’가 되지 않을까.

“불교 철학에선 받아들이는 것을 자비라 하는데, 자비 속에 늘 지혜가 있어야 한다.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에게 빵 10개를 주면 행복할 테지만 아이가 고마움을 모르고 다음 날에도 왜 10개를 안 주냐고 할 것 같으면 1개씩 주는 게 좋다. 판단엔 지혜가 필요하고 지혜는 깨달음에서 온다. 지혜와 자비는 새의 양 날개 같아서 둘 다 있어야 인생의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지혜 없는 보시는 오히려 상대를 망가뜨릴 수 있고 호구가 될 수 있다.”

-주지스님도 화낼 때가 있나.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손발이 안 맞을 때 화가 난다. 화를 내고 나면 부끄럽다. 잘 안될수록 연습이 필요하다. 한발 물러서서 생각한다. 저 사람은 왜 이걸 안 했을까, 생각하며 찾다 보면 답이 나온다. 불교 수행의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모든 것을 해체해서 보는 거다. 해체해서 바라보면 이해가 된다. 내가 감정의 주인 노릇을 하는가, 감정의 노예가 됐는가. 내가 정말 아끼는 잔을 누가 깨뜨렸을 때 ‘어차피 깨질 속성이었는데 인연이 여기까지구나’ 하고 받아들이고 상대에게 괜찮은가 물어보는 식이다. 그러면서 내 수행의 상태를 가늠한다. 그전까지는 교학(공부)에 치중했다면 주지가 되면서 수행의 범위가 달라졌다.”

스님과 함께 대웅전으로 향했다. 사리에 염원을 담아 오는 2027년 6월까지 천일기도를 봉행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각양각색 연등에 소원을 비는 꼬리표가 달려 있었다. 고속 경제 성장으로 한국은 세계가 놀랄 정도로 풍요로워졌는데 각자가 갈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만큼 많고 다양하다. 인도에서 온 스님은 한국의 저출산과 높은 자살률을 어떻게 볼까.

“한국 사회가 겪는 저출산과 고령화, 그리고 높은 자살률은 개인이 아닌 사회적 과제다. 치열한 교육 현실과 자본주의가 만든 불안정 속에서 신뢰와 이타심이 약해지고 아이를 낳으려는 마음마저 줄어들고 있다. 물질적 풍요 이면에 고립과 외로움이 깊어지면서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이럴 때 불교는 ‘마음의 치유’를 강조한다. 명상과 마음챙김(Mindfulness)은 스스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하고, 지금은 다시 없는 삶의 기회임을 깨닫게 해준다. 사회적으로는 복지와 안정, 신뢰 회복이 뒷받침돼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마음을 돌보며 자비와 이타심을 세워야 한다. 그래야 한국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

-한국 젊은이들에게 들려줄 말씀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비슷하겠지만 한국에선 특히 미래에 대한 걱정이 너무 많은 것 같다. 주지까지 해야겠다고 설계한 적도 없는데 자연스러운 인연으로 이렇게 됐다. 부처님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야 좋은 삶이다. 가르침도 그렇고 수행도 그렇고 인간이 사는 삶도 그렇다’고 설파했다. 부모님 덕에 처음을 잘 시작했으니 중간과 끝은 내가 만들어가야 한다. 티베트에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진다면 걱정할 이유가 뭐 있나’ 하는 속담이 있다. 『반야심경』을 보면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 수 있다'고 가르친다. 지금을 잘 활용해 공부하고 준비하다 보면 미래는 어느새 완벽해질 거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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