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레이쇼 넬슨, 잔 다르크, 조지 워싱턴, 모차르트, 칭기즈칸, 레닌…. 동상(銅像)으로 부활해 도시의 관광자산이 된 역사 인물이다. 이들 동상은 해당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조형물로도 유명하다. 그런데 이렇게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어도 어느 순간 해당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바뀌면 대우는 확 달라진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계기로 특정 인물의 동상이 수난을 당한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동상은 서울 광화문광장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이다. 매번 조사할 때마다 ‘한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 2위로 꼽히는 위인이니 논란의 여지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동상을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대표적 인물을 꼽자면 단연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사회적 평가가 크게 엇갈려서다. 전쟁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인 1956년, 서울 남산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인 25m 높이로 건립된 이승만 동상은 4·19혁명 때 성난 시민들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여기저기서 이승만 동상 건립사업이 추진됐고, 그 때마다 논란이 반복됐다.
최근 대선 정국에서 다시 ‘동상 논란’이 불거져 나왔다.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의 입에서 서울 광화문광장에 박정희·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자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사실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하는 공공 조형물을 둘러싼 논란은 오래전부터 전국 곳곳에서 이어져 왔다. 최근 사례로는 대구광역시 달성공원 앞 ‘순종황제 동상’, 동대구역 앞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 경주 관광역사공원 박근혜 전 대통령 동상, 대전광역시 서대전광장의 ‘오월걸상’ 논란을 꼽을 수 있다.
그런데 천년 전통도시 전주에서는 여태껏 동상·조형물을 둘러싼 이렇다 할 논란이 없었다. 사실 전주에는 내세울 만한 동상이나 공공 조형물이 아예 없다. 세간에 전주를 대표할 수 있는 동상 인물로 태조 이성계, 정여립, 견훤왕, 전봉준 장군 등이 거론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논의 과정은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런 조형물을 세울 만한 지역 대표 광장이나 상징적 공간이 없다.
광장(廣場)은 글자 그대로 ‘넓은 마당’이다. 유서 깊은 지구촌 도시들이 이 빈 공간에 시민의 목소리, 그리고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차곡차곡 채워왔다. 전주에도 광장이라 불리는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광장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다. 심지어 어떤 곳은 광장이라 불리는 이유조차 알 수 없다. 민선 8기 전주시가 ‘전주 대변혁’을 내세워 야심찬 도시개발 청사진을 내놓았지만 역시 광장은 없다. 앞으로도 암울하다. 빚더미에 앉아 있는 전주시가 도시 중심에 공터를 만들기 위해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동상을 세우기 위해 광장을 조성하자는 게 아니다. 전주를 대표하는 광장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이고, 동상이나 지역을 상징할만한 조형물 건립 제안도 나올 수 있다. 전통도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활력공간이 필요하다.
/ 김종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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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표 kimjp@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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