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반지의 제왕들, 절대반지 노린다

2024-10-18

가을야구, 전통 명가들의 귀환

가을야구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야구팬에게 10월은 해마다 찾아와 미련을 남기고 떠나는 단풍처럼 특별하다. 올해는 한국·미국·일본 프로야구가 약속이나 한 듯 전통 명문팀들이 가을야구에 초대 받았다. 그래서 팬들은 더 설렌다.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를 거쳐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사장을 역임한 이태일 프레인 스포티즌 부사장이 3국의 가을야구를 정리했다.

KBO리그는 10월 1일 5,6위 타이브레이커 단판승부로 사실상 가을야구를 시작했다. 정규시즌 1위 KIA 타이거즈가 한국시리즈에서 기다리고, 2위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가 그 상대가 되기 위한 플레이오프(삼성 2승1패·18일 현재)를 치르고 있다.

가을의 고전(Fall Classic)으로 불리는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도 10월 2일 시작해 월드시리즈 챔피언을 가리는 여정이 한창이다. 리그챔피언십에서 전통의 명가 뉴욕 양키스(2승1패)가 클리블랜드 가디언즈에, LA 다저스(3승1패·이상 18일 현재)가 뉴욕 메츠에 앞서 있다.

야구사랑이 둘째 가라면 서럽다는 일본도 그렇다. 지난 12일 포스트시즌이 시작됐고, 일본시리즈 진출 팀을 가리는 파이널스테이지가 진행 중이다. 퍼시픽리그에서는 1위 팀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니혼햄 파이터스에 3연승 중이고, 센트럴리그는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2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스가 2승1패로 앞서 있다.(17일 현재) 그렇게 가을이 무르익고, 야구가 무르익는다. 올해 3개국 가을야구를 관통하는 서사는 ‘명가(名家)의 고색창연한 가을’, 그리고 ‘신인류의 등장’일 것이다.

KIA 타이거즈와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 프로야구의 명가다. 타이거즈는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11회), 한국시리즈 무패(11전 전승)라는 금자탑을 갖고 있다. 타이거즈가 우승 횟수는 가장 많지만 역대 한국시리즈 최다 진출팀은 삼성 라이온즈(18회 진출, 8회 우승)다. 두 팀은 KBO리그 연속 우승(4연패. 타이거즈 1986~89, 라이온즈 2011~ 14)으로 왕조 구축에 성공했다. 두 팀 다음으로는 두산(15회 진출, 6회 우승) 정도가 명가에 이름을 내밀 수 있다. LG 트윈스는 지난해 챔피언으로 역대 3회 우승(7회 진출)팀이다. KBO리그에서 타이거즈 전통의 ‘검빨’(검정 하의, 빨강 상의) 유니폼은 가을 챔피언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메이저리그의 그것은 ‘등에 선수 이름이 없는’ 뉴욕 양키스 유니폼이다. 양키스는 역대 월드시리즈 27회 우승(2위 세인트루이스 11회)에 빛나는 압도적 명문이다. 올 시즌 양키스는 아메리칸리그 전체 승률 1위를 차지했다.

일본에서도 올 시즌 창단 90년을 맞은 전통의 명가 요미우리 자이언츠가 팀 통산 스물세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에 도전 중이다. 요미우리는 4시즌 만에 센트럴리그 1위를 차지했다.

한·미·일에서 역대 최다 우승팀 타이거즈, 양키스, 자이언츠가 같은 해 모두 우승반지를 차지한 적은 딱 한 번(2009년) 있었다. 그 해 양키스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월드시리즈를 벌였다. 그때 필리스 불펜에는 박찬호가 활약했다.

지금까지 ‘야구의 상식’이 있었다면, 그것은 깨졌다. 야구의 두 축을 이루는 운동능력은 크게 스피드와 파워로 나뉘어졌다. 만일 한 사람이 그 두 가지 능력을 최고의 레벨로 가질 수 있다면 그것은 홈런왕 베이브 루스가 빠른 주루를 보인다든가, 이치로처럼 내야 땅볼을 안타로 만드는 교타자가 담장 너머를 가리키며 홈런 시그널을 보내는, 어색한 상상이었다. 지금까지 ‘야구의 상식’은 그랬다.

2024년 시즌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54홈런-59도루를 기록했다. 홈런-도루에서 50-50을 동시에 기록한 것은 메이저리그 최초다. 오타니는 지난해까지 투수-타자를 겸업하는 ‘이도류’로 이전까지의 상식을 깬 뒤 올해는 타자로만 전념하면서 ‘파워 & 스피드’의 신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런 오타니가 마운드에서, 타석에서 그리고 누상에서 이제까지 없던 신인류의 모습을 ‘만화스럽게’ 현실로 만들면서도 아직 오르지 못한 고지가 있다. 월드시리즈 챔피언 자리다. 2018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오타니에게 가을야구는 이번이 처음이다.

폭발적인 파워와 스피드를 모두 갖춘 야구 신인류는 올해 KBO리그에도 등장했다. 김도영(KIA)이다. 김도영은 올 시즌 141경기에 나서 타율 0.347, 38홈런, 40도루, 109타점, 143득점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162경기)보다 18경기가 적은 KBO리그 기록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로운 지평이다.

그 동안 파워 & 스피드의 상징이라면 프로야구 첫 30-30을 기록한 박재홍, 호타준족의 대명사 이종범, KBO리그 최초 40-40 클럽 주인공 에릭 테임즈 등이 있었다. 그 가운데 김도영이 보다 파워풀한 인상을 주는 것은 경기에 대한 지배력, 관심을 점유하는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이승엽(두산 감독)이후 등장한 전 국민 레벨의 야구 아이콘 김도영이 이번 한국시리즈를 그의 대관식 무대로 장식할 지 관심거리다. 이범호 감독은 “현재 컨디션이 가장 좋은 선수를 꼽으라면 김도영이다”라며 팬들의 기대를 부추기고 있다.

메이저리그와 KBO에서 그라운드의 신인류가 등장했다면 일본 가을야구의 신인류는 덕아웃에 있다. 홋카이도 니혼햄 파이터스의 신조 츠요시(52) 감독이다. 1990년대 한신 타이거즈, 2000년 이후 MLB 뉴욕 메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등을 거친 신조는 현역 시절부터 쇼맨십과 스타기질을 발휘하며 괴짜로 불렸다. 은퇴 후 연예계 활동, 크리에이터, 경마 마주 등을 하다가 2022년 니혼햄 감독으로 야구계로 돌아왔다. 취임 때부터 자신을 감독 대신 ‘빅 보스’‘라는 이름으로 자칭하는 등 ’지금까지 없는‘ 캐릭터를 선보였다.

감독으로서 지난 2년 숙성 기간을 거친 신조는 올해 퍼시픽리그 2위를 차지, 팀을 6년 만의 가을야구로 이끌었다. 니혼햄은 퍼스트스테이지에서 일본의 간판 사사키 로키가 속한 치바 롯데를 따돌리고 파이널스테이지까지 올랐다. 신조의 리더십은 게임의 전략, 작전 등에 있지 않다. 선수들과 팀의 정신·자세·분위기 등을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오타니·김도영·신조 등은 야구의 기술, 기량을 바꾼 게 아니다. 그들은 야구의 개념을 바꾸었다. 그리고 자신들의 가을야구를 수놓고 있다.

가을은 이처럼 끝없는 야구의 서사를 만든다. 그 야구의 전설은 광주와 대구에서, 도쿄에서, 뉴욕과 LA에서 붉고 푸른 유니폼의 색깔로, 단풍처럼 짙게 우리 가슴에 스며든다. 그리고 그 도시의 서사는 챔피언 반지의 전설을 남기고 또 한 번 우리 곁을 떠날 것이다. 가을처럼.

이태일 프레인 스포티즌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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